(연세대 4수 최초합 합격글) : https://a-app.co.kr/%eb%b0%a9%eb%aa%85%eb%a1%9d-2-2/?vid=12920
(약속드린 수기입니다. 업로드를 끝까지 고민하다가 업로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 )
[+ 이번에 연세대 입학성적 1% 안에 들게 되어,교수진의 심사를 통과하여 일정 조건 하에 4년 전장을 보장받는 것이 확정되었습니다 :) 장학증서를 업로드하고 싶은데, 제가 이번에 신입학하자마자 군휴학계를 내서.... 장학을 아직 받은 내용이 없어 증서는 안나오네요! 추후 인증할 수 있을 때 꼭 인증하도록 하겠습니다 :)]
초등/중학교 때 저는 전교 10등 안에 드는.... 나름 우등생이었습니다.
선도부장과 학교 학생회 임원도 겸임하는 등.... 운동도 열심히 한, 흔히 말하는 "공부 잘하는 인싸"였습니다.
가끔 감정조절이 안되고.... 충동적으로 독단적 결정도 내리는 등, 이런 행동과 성격 덕에 저를 싫어하는 이들도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의 저에 대한 선생님들의 신임, 선도부장과 임원이라는 위치, 그리고 좋은 성적, 이 3가지 요소가 작용해 그 당시 저에게 이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당시 저는 이들을 어린 생각에 "나를 질투하고 시기하는 세력"이라고 생각했죠.
그러고 나서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저희 고등학교는 특이하게도 입학 배치고사를 치뤘는데, 당시 전교 23등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실 전교 23등이라는 숫자는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라, 당시엔 굉장히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 때까지의 저는 저 잘난 맛에 사는 아이였고,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은 하늘을 찌르던 아이였기에.... 납득이 안가는 점수였죠. 3월에 치루는 모의고사에서 설욕하기로 이를 갈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고1 첫 모의고사 때 전교 11등을 했습니다. 등급도 1등급이 3개였죠. 하지만 이게 비극의 서막이었습니다.
당시 저의 공부법은 "무조건적인 암기"였습니다. 여기서 눈치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갈 때 성적이 급락하는 아이들의 특징이 중학교 때 무조건 통하는 "무조건 암기법"을 고등학교에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이 공부법은 ADHD의 자각은 없었지만, 오랫동안 사고를 지속하지 못하는 점, 깊은 사고력을 지속적으로 발휘를 못한다는 점,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제가 아는 저의 한계를 잘 "감춰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공부법은 유효했죠.
하지만 이게 고1 첫 모고에서 먹히자, 저는 이 공부법이 고등학교에서도 먹힌다는.... 제 3년을 망치는 신념을 가지게 됩니다. 고3 끝나갈 때 쯤이야 이 착각의 눈가리개를 벗고 본질을 흐릿하게나마 깨닳을 수 있었죠.
(고등학교 교육은 기본적으로 수능 시험의 지향성을 따릅니다. 수능의 지향성은 "논리적 사고력/추론력과 그에 기반한 문제 해결 능력"입니다. 어느 정도의 암기는 물론 필요합니다만, 훨씬 많고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오랫동안 집중, 몰입해서 논리적 사고력을 기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입니다. )
첫 모의고사는 모의고사의 유형들을 모조리 "외워서" 푸는 것으로 커버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2학기가 되면서, 저의 성적은 급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극상위권 아이들과의 차이는 엄청나게 벌어지기 시작했죠.
아마도 그 때부터였습니다. 저의 정신적 암흑기가 시작된 것은....
슬럼프에 빠져서 결국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야자도 도망치다가 결국 학교 야자에서 쫓겨나고, 학교의 입시 유망주였던 저에 대한 선생님들의 기대는 점점 사라졌습니다.
자신감의 원천이 성적이었던 저는 자신감이 급격하게 위축되고, 이가 대인 관계로 이어져 남들에 대한 열등감과 피해의식, 피해망상이 저의 머릿속을 점철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혼자서 급식을 먹는게 일상이 되었고, 친구는 없었으며, 1학기 때 사귀었던 친구들조차 제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니 저를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철저히 학교의 소사회에서 고립되어 갔죠.
(이 땐 제가 그들을 따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ㅋㅋ)
그 때서야 저는 제가 내세울게 공부밖에 없고, 자존감은 하나도 없으면서도 지기는 죽도록 싫어하는, 자존심만 매우 강한 성격이라는 것을 깨닳았습니다.
성적은 2학년 때는 급기야 100등을 넘어갔고, 2학기 때는 180등이 되었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적응을 못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나가는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머릿속은 패배의식으로, 가슴은 열등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하교하고 집에 오면 유튜브, 영화, 애니, 미드, 음란물 등을 탐닉했습니다. 꼴에 부모님에겐 공부한다고 하고 책상엔 책을 펼치고, 실제론 핸드폰과 컴퓨터, 만화책만 보았었죠. 지금 제가 생각해도 너무 한심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찬란했던 과거를 뒤로 하고, 저는 어렸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적어도 타인들이 보기엔 완벽한 "유망주의 몰락"이었습니다.
그렇게 고3이 되고, 부랴부랴 상황을 타계하고자 했으나.... 본질적인 문제(ADHD + a)에 접근하는 것에는 실패했던 저는 수능도 평균 4등급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위권 지거국 기계공학과에 간신히 합격한 점수였죠.
그렇게 고3이 마무리되고.... 저는 더이상 살아가는 것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전 자살에 대해 무서울 정도로 덤덤했습니다. 그냥 살 이유를 못느꼈습니다. 매우 건조하게요.
막 갑자기 엄청 우울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몇 년 동안 우울 상태가 만성적으로 진행되니 죽음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살아갈 가치가 전혀 못느껴져서 당연히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머릿속과 마음속은 내일에 대한 기대는 커녕 그 때 순간순간이 그냥 "무(無)"의 상태였습니다. 그 때의 저에게 "미래를 꿈꾼다"는 의욕은 동화 속의 허울좋은 허상이었죠.
그런데 자살 시도를 하려고 할 때, 막상 하려고 하니 갑자기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어렸을 때의, 가족들과의 추억이 담긴 과거 아날로그 사진 앨범을 찾아보았습니다.
사진들을 보니 저는 너무 해맑았습니다. 눈에 총기도 있었고, 총명해보였고, 모두가 웃고 있고, 행복해보였습니다. 저는 어머니 품에 안겨서 어머니를 보며 웃고 있었죠.
잊고 있었습니다. 제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울다가 실신할 정도로 운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습니다.
나는 어쩌다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지.
그냥 인정받고 싶었던 것 뿐인데....
남들보다 조금 더 돋보이고 싶었던 것 뿐인데...
울다가 결국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온 에너지를 토해 울다가 잠자고 나니.... 조금은 의지가 생기더라구요.
그리고 그 작은 의지가 제 모든 변화의, 현재진행중인 저의 모든 변화의, 점화였습니다.
몇년만에 든 작은 의지로, 저는 당장 정신과에 예약을 했습니다.
"우울증이 심한 것 같아요. 상담을 받고 싶습니다. 이대로 죽고 싶지는 않아요. "
+ 많은 분들이 쪽지와 관심을 보내주시고,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답변해드리고 싶으나....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정확하게 전달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핵심내용을 수정에 수정을 거치고, 답 보내드리는 것을 미루고 있습니다ㅠ 2부 또한 마찬가지이네요....
아무래도 자칫하다간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내용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많은 조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완벽을 가하려다 보니 시간이 너무 지연되었네요...; 그래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니 조만간 러프하게라도 간결하게 수기를 작성하고, 쪽지에 답을 보내드릴 생각입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