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에이앱 블로그 글을 써봅니다. 4월 8일에 마지막으로 '공부는 유전자인가?' 게시글을 작성했으니 2개월만이군요. 현생을 사느라 바빠서 블로그에 차마 신경을 쓰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4월에는 본과 중간고사 시즌을 견뎌내느라 죽는 줄 알았습니다. 안 그래도 부족한 전전두엽에 살인적인 양의 공부량이 흡수되는데 이해도 못하는 거 습득하고 뱉어내고 반복하느라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한 과목은 성적 부족으로 재시험에 걸려 남들 다 쉬는 휴일동안 재시 걸린 동기들과 재시험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유급은 면해야지요. 5월 달은 본과 4년 중 유일하게 널널한 달입니다. 그래서 시험의 압박에서 벗어나 여유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동기들은 여유롭게 5월을 만끽했을 지 모르지만 저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긴 바쁨 뒤에 찾아온 오랜만의 여유가 어색해서 였을까요. 겉으로 내색하려 하지는 않았지만 첫 주는 불안에 미쳐 살았습니다. 콘서타 18mg에서 27mg으로 증량하여 콘서타의 부작용인 불안 증세가 심해진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약물은 약효와 부작용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게 나타납니다. 저의 경우 적은 용량의 콘서타로도 주의 집중력과 차분함에 큰 효과가 있었지만 불안 증세가 유독 심했습니다. 18mg을 계속 복용하다보니 나름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27mg으로 증량하며 매우 심해졌습니다. 27mg은 성인 남자 기준 매우 적은 용량으로 알고 있었는데 신기한 노릇입니다. 약 부작용으로 불안 증세가 심해진데다 특유의 대인 기피증까지 더해져 5월 첫 주는 공황발작도 재발해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불안 증세도 심해지고, 콘서타의 약효인 12시간이 생활 루틴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메디키넷으로 바꾸었습니다. 메디키넷은 콘서타와 동일하게 노르에피네프린과 도파민의 재흡수를 방지하는 메틸페니데이트 계열의 약물입니다. 다만 유효한 약효 시간이 4시간이어서 하루 2회 나누어 복용한다는 차이점이 있지요. 메디키넷은 콘서타보다 더욱 더 저와 잘 맞는 약물이었습니다.
첫째로, 불안 증세가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콘서타를 복용하며 저를 가장 괴롭힌 문제가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둘째로, 4시간의 짧은 약효입니다. 공부로 승부를 봐야 하는 ADHD 본과생의 특성상 약효가 지속되는 동안 공부에 매진해야 합니다. 하지만 중간에 사람과 약속을 잡아 밥을 먹고, 운동을 하면서 약효 유지 시간동안 공부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을 날리는 것이 싫었습니다. 하지만 메디키넷의 경우 지금 3-4시간 정도 공부해야지! 굳게 다짐하고 약을 먹으면 그 시간 동안 오로지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메틸페니데이트 물질이 체내에 적게 분포할 즈음에는 운동 등을 하면서 쉴 수 있었고요.
하지만 메디키넷의 부작용은 약물 효과가 끝난 이후의 피로감이었습니다. 저의 경우 보통 오전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쭉 수업이 있습니다. 저녁 이후에는 수업 내용을 복습해야 하고요.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침, 점심 각 한 번 약을 복용하라고 하셨지만 (공식 지침입니다) 오전 9시에 한 번, 오후 4시 즈음에 한 번 먹었습니다. 피곤한 아침 시간에 약물의 힘을 받고, 자습하는 시간에도 약물의 힘을 받기 위해서요. 그러니 중간 12-3시 즈음에 극심한 피로감이 밀려왔습니다. ADHD 약물은 결국 각성제여서 미래의 체력을 지금 끌어다 쓰는 격인데 그걸 또 제 임의 대로 약물 복용 시간을 이상하게 했으니 탈이 날 수 밖에요. 부족한 작업 기억 공간을 가진 ADHD가 결국 제대로 번 아웃이 봐버렸습니다.
메디키넷에 의한 무기력증과 피로감이 너무 심해 약을 한 동안 중단했습니다. 하지만 약을 먹었을 때의 공부와 큰 간극이 느껴집니다. 약물을 복용할 때는 공부 전략이 제일 효율적이고 재미있는 방향으로 개선되며 집중도도 나아지고 공부 내용의 구조화도 용이하빈다. 약을 먹지 않을 때 공부는 고초처럼 느껴집니다.
점차 지쳐가기 시작합니다 나는 언제까지 약물에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나 평생 약물을 복용해야 하는 것인지 약물이 없이는 하등의 쓸모없는 인간인 것인지 회의가 듭니다
ADHD 약물은 그 특성 상 반드시 복용해야 할 필요가 없을 수 있습니다. 부족한 그대로 나를 수용하면서 느긋하게 살아가려면 약물을 꼭 복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100 만큼의 장점이 있는 만큼 60 정도의 분명한 단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본과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약물이 어쩔 수 없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두뇌를 가진 사람들도 본과 공부로 버거워하고 힘들어 합니다. 약에 의존하는 것이 무조건 이롭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좋은 성적은 거두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해하고 따라가려면 약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죠.
하지만 콘서타로 인해 불안 증세가 심해져 일상 생활과 공부에 지장을 받게 되고
메디키넷으로 바꾸니 심한 피로감에 시달립니다.
공부를 위해 약을 먹는 것조차 무섭습니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발전하고 성장하려는 시도 매 순간 마다 내가 원치도 않은 유전적 결함으로 무너지는 것이 내 운명인 것인지 슬픔이 밀려옵니다. 쳇바퀴처럼 반복될까봐 더 무섭습니다.
그러나 다시 책을 피고 펜을 듭니다. 80%는 이해되지 않는 수업을 천천히 다시 들어봅니다. 대뇌에서 정리되지 않은 채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생각들을 에이앱 블로그에 글로 써내려갑니다. 메디키넷을 다시 먹습니다. 독서실에 와 의자에 앉아 공부를 합니다. 석가모니는 고통의 바다에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녕, 정정진, 정정의 '8정도'를 제시했습니다. 바르게 보기, 바르게 생각하기 바르게 말하기... 뭐 그런 겁니다. 사실 이것 외에 더 나은 방법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오늘 하루 바르게 살아가려고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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