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확진을 받기 전후 대부분의 시간은 내 생활의 문제점을 발견하는데 집중하게 됐던 것 같다. (사실은 아직도 그렇다.) 평생 그러고 살아서 문제인 줄 몰랐던 점들도 오히려 adhd를 공부하면서 이게 증상이었다는 걸 인식하게 되니 더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다.
근데 사실 살면서 adhd가 꼭 문제가 되었냐 그건 아니었다. adhd가 오히려 내 삶에 도움이 되었던 경우도 많았다.
1.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 용기가 있다. 한가지 일에 집중을 못하는 것은 평생에 걸쳐 나의 큰 단점이라고 생각했다. 20대 초반까지 나는 내내 꾸준하지 못한 성격 덕에 주변 사람에게 문제아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나의 성격을 고치려고 할 때는 늘 남들보다 부족하니까 괴롭기만 했었다. 그러나 이걸 장점으로 받아들이고 나자 이제는 주변 사람들이 나를 '누구보다 용기 있는 사람' '모험하는 사람' '늘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2. 초반 실행력이 매우 강하다. 나는 뭐든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바로 해야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전에 많은 생각과 준비를 필요로 하고, 그러다 보면 망설이거나 계획이 엎어지기도 한다.
망설임이 없는 성격덕에 나는 많은 일들을 앞장서서 할 수 있었고, 그게 팀으로 일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초반 실행력은 약하지만 후반 실행력이 강한 친구, 지속과 마무리에 강한 팀원과 함께 할때 시너지 효과가 매우 좋다!)
3. 좋아하는 일이라면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 게임을 하든, 업무를 하든 동기부여만 되면 미친듯이 일을 했다. 즉 동기부여가 되는 환경만 잘 설계하면 남들보다 같은 일도 훨씬 더 열심히, 빠른 시간 내에 해낼 수 있다.
4. 경험과 관심의 폭이 넓다. 새로운 일에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도전하다보니 하다 못해 알바를 해도 다양한 알바를 하게되고, 재밌는 기회가 있으면 이것 저것 시도하다보니 경험한 분야, 알고 있는 분야가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5.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즐긴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다. 보통 평범한 일상에 만족하는 사람들과 다르게 계속해서 새로운 자극을 필요로 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즐기고, 룰을 파괴하는 내 성격덕에 주변 사람들은 늘 나를 신기해하고 재밌어했다. 실제로 내 인생도 이런 성향덕분에 훨씬 더 스펙타클하고 재미있었다.
여행을 떠났다가도 충동적으로 현지에서 만난 친구를 따라 계획에도 없던 여행지로 가기도 하고, 비행기를 취소하고 현지에 살면서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했으며, 새벽 3시에 친구들과 함께 정돈진으로 향하기도 하는 등 재밌는 일이 참 많았다.
6. 말을 잘한다. 어렸을 때 부터 늘 많이 많고 목소리가 컸다. 목소리가 큰 이유는 타고난 성량도 있지만 흥분하면 그 상황에 과몰입해서 멈추지 못하고 계속 떠든다던가, 주변이 조용해진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거나 하는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점이 나중에 남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서로 말없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에 나서서 초반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었으며, 남들 앞에서 오랜 시간 말을 해야하는 직업을 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
하지만 이 모든 장점에는 늘 한계가 따랐다. 새로운 일에 도전을 잘하지만, 꾸준함이 필요한 단계에 들어서면 늘 고꾸라졌고, 한분야에 정착하지 못했다. 흥미를 잃으면 실행력이 바닥으로 떨어졌으며, 사회에서 요구하는 '해야하는 일'은 정말 못했다. 에너지가 넘쳐 온갖 일에 도전하며 날뛰다가도 어느새 보면 몇개월, 몇년을 방구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처박혀 있기도 했다. 그런 탓에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고, 스스로도 위축되었다.
adhd는 양날의 검이다. 그 검으로 나를 밸 수도 있지만 눈 앞의 장애물을 밸수도 있다. adhd는 나를 오래도록 괴롭혔지만, 돌이켜 보면 덕분에 경험 해볼 수 있었던 재밌는 일들도 참 많았다.
이제 내가 나아갈 길은 adhd 진단을 받으면서 알게된 사실들을 바탕으로 단점은 보안하되, 장점은 살릴 수 있는 조건을 설계하는 것인 것 같다.
사람마다 adhd로 인해 발현되는 증상도, 성향도 매우 다르기 때문에 모두에게 적용되는 얘기는 아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글이 내가 나여서 좋은 점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