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교... 미치도록 가고 싶었습니다. 지옥같은 나날 보내며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둔한 일머리 때문에 혹여나 책잡힐까 두려워 누구보다 성실히 일했습니다. 결국에 그 날이 왔건만, 저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다시 쓰러졌습니다. 할머니의 알츠하이머 증세가 악화되었습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할머니의 행동에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할머니의 이상증세가 심한 날엔 공부가 되지 않았습니다. 심하지 않은 날에도 스트레스를 핑계 삼아 현실을 도피했습니다. 결국 학과장님께 부탁드려 도중에 휴학을 했습니다. 이럴꺼면 휴학을 더하지, 부질없는 후회를 해 봅니다.
2. 휴학이 승인된 뒤, 2주일 가량 폐인처럼 지냈습니다. 잊고 싶었습니다.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 삶이고 현실이었습니다. 저의 휴학 사실을 아신 고모께서 저를 불러 훈계하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했습니다. 너무 분해서 뭐라 말씀드리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탓은 잠시 마음 한 켠에 밀어두라 하셨습니다. 아버지 탓은 네가 다 커서 밥벌이한 후에 해도 늦지 않다고, 지금은 한 번이라도 부딪혀 본 다음에 원망이라도 하라 하셨습니다.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부끄러움에 눈물을 흘렸고 고모는 말 없이 제 등을 두드리셨습니다.
3. 병원을 다시 갔습니다. 폐인 생활 동안 살이 많이 불어서 의사 선생님께서 많이 놀라셨습니다. 많은 말을 나누고 싶었지만, 예약을 하지 않아 인사만 드리고 나왔습니다. 나왔더니 문장완성 검사를 하라고 방을 내주셨습니다. 저는 최근 느낀 기분을 마음껏 종이에 풀었습니다. 다음주에 다시 갔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한동안 말이 없으셨습니다. 제가 처음 정신과를 갔을 때와 같이, 저를 타이르셨습니다. 아직 할머니께서 검사를 안받으셨다는 얘기를 들으시고 할머니를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다음주에 모셔갈 생각입니다.
4. 다시 약을 먹으니 한결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역시 약은 중요했습니다. 이제 후회없이 살겠다고, 도망치는 일은 없을거라 호언장담 했던 1월의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이제 어엿한 백수(?)가 되어보니 정말 잉여가 된 기분이군요. 요 며칠 나가서 걷기도 하고, 조금씩 책을 읽으며 소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설명할 수 없는 이 씁쓸한 기분은 떨쳐내기 어렵습니다. 다음을 더욱 다잡아야 하는지, 아니면 여유를 둬야 하는지 아직은 모르는 하루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