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확진 이후 나는 달라졌다. 이제는 확신할 수 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수동적에서 능동적으로 바뀌었달까. 흔히들 말하는 약을 먹은 직후의 고양감을 잘 이용한 케이스인 것 같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행동력이 극적으로 변화하는 시점에 나는 나를 바꾸기 위한 습관 형성에 최선을 다했다. 결국 고양감은 일시적이고 어느 순간 약을 먹은 나에게 익숙해질 것이기 때문에 그때까지도 작동할 습관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였다. 매일매일 학교를 나가며 도서관에 출석도장을 찍으니 많은 것이 달라졌다. 공부를 비효율적이라도 하다 보니 나에게 맞는 공부법과 효율성 증대를 위한 여러 도구들이 그제서야 보였다. 할 수 있는데 안했던 거였구나. 약 일주일정도 도서관에 나가다 보니, 대인관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나 자신이 떳떳했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다가갔다. 훨씬 더 사람이 긍정적이 되었다. 예전에는 다가올 불행한 미래에 대한 회피였다면, 다가올 미래에 희망이 있는 상태에서의 낙천성은 회피가 아닌 긍정적 에너지가 되어 내게 다가왔다.
2~3주일차, 중간고사 시즌이였다. 1~4주차에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음에도 약 10~14일간의 공부로 평균보다 10점정도 밑의 성적을 받아냈다. 학사경고 2번을 받았던 나였는데, 3학년 과목을 이 정도 성적을 받는다는 것은 내게 큰 자신감이 되었다. 나도 따라잡을 수 있고 나도 공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6시에 일어나 12시에 자는 일상이 반복되자 자연스럽게 일상속에서 도파민 디톡스가 진행되었다. 일상 속의 강력한 도파민들, 게임이나 커뮤니티를 통한 강한 도파민이 줄어들자 일상 속 행복이나 나 자신에 대한 통찰을 하는 시간이 늘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을 그렇게나 해왔는데 지난 4주간 있었던 나에 대한 이해도 진척이 지난 2년간의 이해도 진척보다 큰 것 같다. 나의 강점, 나의 약점,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성 설정이 되었다. 그에 따른 랩인턴 신청도 하였고 면담도 진행했으며 시험 기회도 얻었다. 긍정적인 교수님의 반응이 의외였다. 나의 학점은 2.4인데, 예전같았으면 랩인턴을 한다는 시도조차 안했을 나였지만 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일단 시도했고, 노력하고 있다.
4주차, 예상치 못한 코로나에 걸렸다. 어쩌면 당연하다. 매일 2시간 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점심 저녁을 학식당 또는 근처 식당에서 해결했으니, 하루 16시간 이상을 밖에 있었으니까. 공교롭게도 코로나 격리해제일 바로 다음날이 교수님과의 심층 면담 및 랩인턴 개인 시험이였다. 원래 랩에 있는 선배님과 점심 약속도 잡아놨었는데, 코로나의 영향으로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질문들이 많았는데 아쉬웠다.
집에서 공부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코로나는 훨씬 더 아팠다. 콘서타를 먹고 공부하려 했지만 공부할 수 있는 몸상태가 아니였다. 방 온도 29도, 내복에 패딩까지 껴입어도 오한이 드는 내 몸을 보며 이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콘서타 복용을 포기하고 회복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게 5일간 콘서타 미복용과 함께 과거 나태했던 나의 모습을 체험했다. 정말 오랫만에 게임을 재설치했다. 사실 게임을 삭제한건 아니였고 노트북 문제로 한번 초기화를 했는데 초기화 이후 설치를 안했었던 거였다. 사실상 확진 후 3일간은 누워서 폰보다 자고의 반복이였지만 약 4일차부터 책상에 앉아 게임을 할 힘이 생겼다. 9시 이후 기상, 낮잠 한 4시간 자고 새벽 3~4시 취침. 남는 시간은 유튜브 시청과 게임. 당장 2개월 전 나의 모습이였다. 나 원래 이렇게 살았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꽤 정겨웠다. 꽤 기분좋지는 않았다. 찝찝했다. 해야 할 일이 이렇게나 많은데 어떻게 이렇게 매일을 보냈을까 하는 생각이 6일차 오전, 오늘 들었다. 비교를 통해 더욱 확실해진 것은, 나는 예전에 이런 나태한 삶보다는 매일 생산적으로 발전하며 보내는 삶이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코로나 확진 6일차, 오늘이다. 오전 7시에 일어나서 콘서타를 복용하고 일상으로 복귀할 준비를 했다. 오늘은 오전 10시에 학교에서 진행하는 뇌인지행동유형검사 워크샵이 있었다. 적성검사같은 것이고 예전부터 받고 싶던 검사였어서 기대감이 있었다. 검사 결과에 대해 맞춤형 설명을 듣고, 나의 미래 계획을 말씀드리면 그 미래 계획과 나의 적성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보완할 점은 있는지, 다른 추천 직업이 있는지를 피드백해주는 그런 워크샵이였다. 나의 경우는 나의 적성과 미래 계획이 잘 일치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나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 미래 진로 설계를 재확인받는 느낌이여서 좋았다. 그런데 신기한 점이 하나 있었다. 사실 나는 1년 전에도 이 검사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데이터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과가 나왔기 떄문이다.
1년 전의 나는 ADHD의 주 특징인 할 일 미루기로 인해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하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던 사람이였다. 따라서 사람들 만나는걸 기피했고 우울증 또한 가지고 있었어서,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바닥을 치던 암울한 시기에 받았던 검사 결과가 아래에 있다. 그리고 2번째 사진이 ADHD확진 이후 약을 먹으며 자신감을 얻은 상태에서 수행한 검사 결과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래프의 모양 자체는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모든 항목의 값이 5~8정도 증가했다는 특이점이 있었다. 이에 대해 상담사분께 질문드렸는데, 상황에 따라 저 그래프의 모양이 위 아래로 흔들릴 수 있지만 저 모양새 자체가 나의 아이덴티티라고 하시더라. 신기했다. 우울증에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랐던 상태의 나, 그리고 지금 능동적으로 행동하며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나가는 나의 모습에 저런 아이덴티티가 동일했다니. 현재 나의 모습이 만족스럽다면, 지금의 검사 결과대로 삶의 태도를 유지하면 된다고 하셨다. 현재의 검사 결과는 내가 바라는 나의 직업과 삶의 방향성대로 살아갔을 때 행복하고 적성에 잘 맞을 확률이 높다고 하시니까.
내가 바뀌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예전의 나, 지금의 나 모두 나라는 것을 알았다. 예전의 나를 바꿔버리겠어, 예전의 나는 틀렸어! 가 아니다. 예전의 나의 특성들은 그대로 존재한다. 다만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능동적이 되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며 예전의 나의 특성들이 바람직하게 개화하여 내가 행복한 형태로 바뀌어 나가는 것이다. 내 인생 최대 암흑기때의 검사 결과와 현재, 꽤 만족스러운 나의 모습의 검사 결과의 모양이 비슷하다는 것은 내게 이런 통찰을 주었다. 결국 태어난 대로 사는거니까. 모든 사람의 뇌는 다르고 그에 맞는 인생이 있는 거니까. 나는 내가 타고난 나의 뇌와 특성에 맞는 인생을 찾고, 그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거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검사 결과였다.
오늘 남은 하루를 열심히 보내고, 내일부터는 다시 나의 바람직한 루틴을 시작하려 한다. 나태한 나보다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열정적인 내가 나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