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설거지가 몸에 배기 시작했다. 크기가 다른 식기들이 얼기설기 있는 모양새나 저마다 담고있던 음식물의 잔해물이 남아있는 것을 보는 것이 싫었던 나였는데 말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이가 들었고, 더 이상 부모님 집에 머무르는 것이 편하기만 하지 않은 때가 온 것이다. 당장에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하려고 했다.
늦었지만, 내가 먼저 나서서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설거지 거리가 나오면, 부모님이 처리하기 전에 재빨리 설거지를 했다. 내 설거지가 또 다른 일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꼼꼼히 설거지를 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 설거지하는 내 모습이 답답하셨는지, 엄마께서는 본인이 할 테니 그냥 내비두라는 말을 하셨다. 하지만 뭔지 모를 확신이 있었다. 이 설거지 만큼은 내 몫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매일같이 하는 설거지가 시간이 흐르니, 나름의 방식도 생겼고, 시간은 단축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설거지하는 시간, 그 시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오롯이 그릇을 닦는 데 집중해야했고, 마지막으로 싱크대를 정리해주는 것으로 마치는 일이었다. 익숙한 일이 돼버렸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정말 편안함을 느낀다. 내 목표가 눈 앞에 있고, 어디가 끝인지도 알 수 있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불안하거나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했다는 성취감을 심어주는 것은 덤이다.
그렇게 설거지를 마치면 다시 물에 젖은 손을 닦고, 또 다시 '설거지 하지 않는 시간'으로 돌아간다. 아쉽지만, 또 다시 무엇을 해야할 지 결단을 내리지 못하며, 불안을 벗어날 궁리만 하는 나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음 날 또 다시 설거지를 한다. 그렇게 조금씩 숨통을 트이다보면 온전한 나로 살아가게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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