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더라. 어제 이모네 집에서 쿠우쿠우 얻어 먹고 밤 늦게까지 토익 문제집하고 책 읽기를 했구나. <곰브리치 세계사>와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라는 책을 읽었다.
<곰브리치 세계사>는 청소년을 위해 <서양 미술사>를 집필한 곰브리치라는 학자가 쓴 세계사 책이다. 세계사 책이라 하기 부끄럽다. 주로 95%의 유럽과 5%의 유럽 이외의 역사를 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곰브리치의 역사 이야기 : 서양과 나머지>라는 제목으로 나왔어야 한다. 그는 오스트리아 요제프 황제가 살아있던 시절에 태어난 구시대의 역사학자이지만, 인종, 성별 등에서 비롯된 차별과 파시즘, 전체주의 등의 위험한 사상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매우 위험함을 강조하고 있으며, 앞으로 청소년들이 살아가게 될 세상에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과학 기술을 인류 문명의 번영에 올바르게 사용하기를 바라는 꽤나 ‘균형 잡힌’ 역사학자로서 글을 썼다. 아시아와 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역사도 비중 있게 서술했다면 훨씬 더 좋은 책이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청소년들이 이해하기 쉽게 시각적인 비유와 풍부한 시각 자료, 어렵지 않은 단어를 활용한 스토리텔링은 정말로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훌륭했다. 내가 만일 사학과에 진학하여 역사학자가 되고자 했다면 이런 책을 한 번쯤은 써보고 싶었을 것이다.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라는 책은 뉴욕 타임즈의 전설적인 저널리스트 미치코 카쿠타니의 최신 서적이다.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을 매우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며 미국 사회를 지탱해왔던 아메리칸 드림,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 등의 붕괴되고 파괴되어 구조적으로 망가진 미국을 비판함과 동시에 세계화의 희생양이 된 백인 노동 계층들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보내는 무한한 찬사를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다. ‘가짜 뉴스’로 대표되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SNS 시대에 사람들은 아무런 대책 없이 놓여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SNS가 빚어낸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끼리만의 정보 공유가 ‘진실 왜곡’과 기존 서구 사회가 지켜왔던 명백한 사실에 대한 믿음마저 상실하게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도 <워싱턴 포스트> 저널리스트답게 미국 진보 진영에 대한 비판은 말을 아끼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난 2016 미국 대선은 정체성 정치를 이용해 사람들을 규범화하고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들을 몰상식한 사람(멍청한 인간들)로 몰아 그들을 비방하고 경멸하는 데 시간을 쏟아 부은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그저 트럼프의 기행적인 행동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을 것이 아니라, 지난 민주당 진영에서 대선 패배 이후 그들이 무엇을 놓쳤는지, 분열된 사회의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지, 왜곡된 뉴스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식에 맞지 않는 말을 뱉어내는 ‘무능한 인간’들이 대통령을 갈아 치운 것에 대해서 아직도 반성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아직까지도 정치적 올바름을 고집하며 타협하려 들지 않는 것일까? 이 책은 카쿠나니가 만든 작은 트럼프 욕설집이라 생각이 든다. 나름 미국 대중들도 공감할 수 있는 참신한 예시를 끌어다 와서 쉽게 설명하려고 하는 눈물겨운 노력이 돋보이기는 하나, 시민 공동체 회복, 민주주의의 재건, 사법 질서의 회복 등 진부한 해답을 마지막에 내놓은 점은 정말로 한숨 밖에 나오지 않았다. 부디 미국 리버럴들은 트럼프의 ‘기행’에 욕할 것이 아니라 미국 시민들의 분열과 거짓 선동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카쿠타니처럼 펜대가 아닌 적극적인 참여로 말이다.
쓰다 보니 서평이 되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거침없이 글을 썼다. 보람있는 일이다. 가끔 글이 쓰고 싶을 때 이렇게 글을 써보는 것이 어떨까? 하루에 한 줄이라도, 내용과 문법이 어설플지라도 꾸준하게 한번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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