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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이유 없이 우울한 거라 다행이야."
Level 3   조회수 147
2019-08-30 11:09:20

불면증과 집중력 저하, 의욕 상실 등의 모습으로 우울증은 나를 다시 찾아왔다. ‘난 드디어 우울증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쯤이었다. 움직이지도 않고 책이랑 휴대폰만 보고 있으니까 잠이 안 오지, 의지력이 약해서 집중을 못 하는 거지, 걱정거리 없이 용돈 타 쓰니까 뭘 하겠단 의지가 안 생기지. 부모님은 말했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반박할 의욕조차 안 생겨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반박할 거리도 없었고. 객관적으로 내 상황이 우울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잠을 못 잔다고 하니까 졸피뎀을, 집중을 못 하겠다고 하니까 더 많은 콘서타를 의사는 줬다. 의욕 상실에는, “사람이 어떻게 맨날 의욕이 넘쳐요. 처지는 날도 있고 우울한 날도 있는 거지. 감정 변화를 너무 두려워하지 마요라는 말을 처방했다. 잠을 잘 수는 있게 됐고 집중을 할 수는 있게 됐지만, 의욕 저하에 처방된 말은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병은 주위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약값 때문에, 병간호 때문에, 때로는 가까운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꽤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봤다. 이러면 안 되는데,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도 행하게 되는 상처 주는 행동들. 어쩌면 우울증은 핑계일지도 모른다. 내제된 날카로움이, 우울증 때문에 사회성이란 포장지를 못 얻어 그대로 노출된 것일지도. 무엇이 됐건 이를 숨겨야 한다는 건 여전하지만.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병원을 바꿔서일까, 약을 바꿔서일까, S의 조언대로 매일 달리기를 해서일까, 아니면 그저 일시적 우울함이 평소보다 오래 갔던 것일 뿐일까. 그 누구도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한다. 나도, 의사도, 주위 사람들도. 그렇기에 우울증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무 이유 없이 우울한 거라 다행이야. 단순히 뇌의 문제라는 거잖아? 약을 먹으면 고칠 수 있는 것이고.”

 

우울할 이유 없이 우울하다는 내 말에, 그녀는 이렇게 얘기했다. 사실 아직은 완전히 이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노력해보려고 한다. 약을 꾸준히 먹으면, 언젠가는 괜찮아지겠지. 언젠가는 완전히 나을 수 있겠지. 언젠가는 우울하지 않음을 낯설게 느끼지 않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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