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먹어도 나는 계속 멍청이였다. 마법같이 증상이 다 사라지길 바란것도 아닌데
전날 잘 자고 와서도 강의시간에 픽 쓰러져 자버려서 지적받는것도 여전했고 사람을 대하는것도 무섭고, 감정을 표현하는것도 어렵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것도 너무 힘들었다.
몸도 무겁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속도 메스껍고 배도 고프지않아. 부작용이 오는걸 보니 복용량은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진 않았을텐데,
난 항상 부적절한 사람인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괴감의 연속이였고, 초반의 긍정적이였던 생각들도 사라져버렸다.
Ⅰ. 이별 남자친구한테도 내 주변 남자관계가 너무 번잡하다는 이유로 차였다. 아무리 내가 친구라고 말해도 그냥 성별이 남자인게 거슬렸던 거겠지. 헤어진건 비단 그 이유뿐은 아니다. 그 동안 그는 나에게 쌓인게 많았으니. 왜 학교에서만 만나주고 데이트 따로 안해주냐, 연락 왜 자주 안해주냐 등등
진짜 나빴지만, 고백을 받던 날부터 난 그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다. 그는 내가 너무 좋다고 했지만,난 나를 향해 구애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고마웠을 뿐. 사랑하진 않았다. 불공정하게 시작한 이런 연애가 좋게 끝날리 없었다. 더군다나 캠퍼스커플이라면 더더욱.
한번 만나보면 만나다보면 좋아지지 않을까 싶어 연애를 시작했고, 만다나보니 일개 19학번 새내기였으면 친해질 기회조차 없었을 선배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실무 위주라 인맥이 중요한 과 특성상 난 그가 좋다기 보다는 '아무개여자친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하는 학교생활이 마음에 들었다.
교제중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우리 천천히 정리해보자고 했을때, 그는 나를 붙잡으며 노력해보자고 했다. 그래서 나도 좋아해보려고 열심히 해봤다. 애칭도 바꾸고, 살갑게 대해주려고 했고, 그가 싫어하는 남자인 친구들과 연락은 자제했고, 사랑한다고도 자주 말해줬다. 그래도 많이 모자랐나보다. 결국 그는 나를 떠났다.
헤어지고 처음 학교사람들 마주할 개강이 얼마 안남았는데 누가 요즘 잘 만나고 있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있으면 대응을 어찌할지 무섭다.
Ⅱ. 어쩌면 나는 @가 아닐지도 모른다. 할머니께 정신과에 다니는걸 들켰다. 분명 허리아파서 정형외과 다닌다고 말해뒀었는데, 표가 난 모양이다. 그런데 다니는거 아니라며, 네가 초등학교때까지 얼마나 똑부러지고 야무졌는지 아냐며 절대 그럴 애 아니라고 공부하는 습관이 안들어서 그런거지, 집중 좀 안된다고 가서 약 타먹는게 가당키나 하냐고 나를 나무라셨다.
할머니는 내가 학업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면 내 기억속에 남아있지도 않는 오래전 초등학교 3학년때 공개수업일을 이야기 해 주시곤 했다. 가족구성원에 대해 번쩍 손을 들고 발표하던, 그때의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하지만 남들에게 자랑거리였던 똑똑한 그 손녀는 이제 여기 없다.
스스로를 @라고 믿는 중증우울증 멍청이만 남았을 뿐
할머니 말씀대로 가진거 다 가지고 부모도 멀쩡히 살아있고, 가난하게 살지도 않아놓고 가진거 다 가져놓고 왜 나는 이모양이 됬는지. 더 죄스럽기도 하다.
나도 목표를 정해놓고 끝까지 좀 성취해 보고 싶다. 약 먹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노력하면 될 줄 알았는데, 노력이 부족했던 걸까.
아니 어쩌면
난 정상인데 괜히 병으로 엮어 자신에게 프레임을 씌운걸까 전날 잠을 푹 잤더라도시험같은 중요한 상황에서도 픽 쓰러지듯 조는것도 난 기면증일거라 의심했는데 교수님은 그냥 네가 잠이 많아 그런거라고 하셨다.
역시 모두 내가 게을러서, 평소 생활습관이 망가져있어서, 의지가 부족해서 그런걸까
여지껏 병원을 네군데 옮겨 다니면서 @라고 확진해준곳은 두군데 뿐이였다. 그것도 @전문병원을 갔을때만이지, 전에 콘서타가 다 떨어져 급하게 약봉투를 들고 1년간 다녔던 동네 병원을 찾아갔었을때 오랜만에 뵌 의사선생님은 기겁을 하며, 이걸 처방해줬냐고 "물론 이거 진단해준 의사분은 존중하지만, 내가보아온 너는 @아니다. 나는 이 약 못주겠다." 하며 돌려보내셨다.
가는 병원마다 말이 달라진다. 나는 도대체 뭘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