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경쟁률 높은 시험 몇개를 어찌어찌 잘 통과하고 그덕에 먹고살게 된 후에야 제게 ADHD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고군분투하며 공부하는 분들을 위해 제 경험을 나누려고 합니다. 1편은 앞에 있습니다.
오늘은 암기 얘길 할게요.
저는 작업기억력에서 저하 떴습니다. 그건 뭐, 그럴줄 알았어요. 검사할때 이미 헐 이걸 어떻게 하냐 싶었거든요. 평소에도 ‘나 기억력 없엌ㅋㅋ 암기 안해못햌ㅋㅋ’라고 말하고 다녔었을 정도로, 기억력에 자신이 없었고요. 아무도 안믿어줬지만. 다른 사람들은 제가 문과이고 하필 딱 사회과목 그것도 역사 잘하고 좋아하고, 큰 시험들을 봤고 합격을 했으니 제가 암기를 못할리가 없다고 생각했던거죠. 저는 제가 저걸 다 한걸 보면 저런걸 하는데 암기가 필요없는게 분명하다고 주장해왔고요.
그래서 이것은 ADHD여도 암기를 잘 하는 방법에 대한 글이 아닙니다. 어차피 우리는 암기는 좀 힘드니까, 암기 없이 어떻게 잘 헤쳐나가는 방법에 대한 글입니다.
암기 되신다구요? 우와 부럽다...
저는 영어를 그럭저럭 합니다. 말은 안되고 읽기만인데, 어렵지 않은 소설이나 기사 정도는 느리지만 영어로 읽을 수 있고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토익 성적이 괜찮은 정도이니 스스로는 대충 만족하고 있습니다. 근데 사실은 단어를 외워본 적이 없어요. 최근에 한 친구가 물어보더라구요. ‘너 단어를 안외우면 그럼 영어는 어떻게 했는데?’ 제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어...한국어를 배운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실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친구가 물어봐서 생각해보니 그랬더라구요. 그러고보니 제 영어읽기 능력은 프로젝트 구텐베르크와 대학 도서관에서 영문 원서를 입수할 수 있게 된 이후로 꾸준히 상승해 왔네요...단점으로는 영문을 읽으면 뭔소린진 아는데 한국어 뜻을 몰라서 번역을 하고 싶으면 중간중간 사전을 찾아야 합니다.ㅋㅋ
제가 자신없는 과목을 딱 하나 꼽으라면 수학입니다. 고1때 성적이 뚝 떨어진 이후로 돌아오질 않아서 고민하다가, 고2 여름무렵에 친구에게 도움을 받았어요. 저는 그때 처음 알았답니다, 공식을 외워야 한다는 사실을. 그 전까지 마지막으로 일부러 ‘암기’라는 걸 했던 수학 관련 내용은 구구단이었다구요ㅠㅠ 그때 뒤늦게 인수분해 공식 몇개를 아둥바둥 외워서 써먹긴 했었네요. 그때 어떻게 외웠더라? 저는 기억력이 정말 없어서 기억은 잘 안나지만...그냥 많이 써보고 문제를 많이 풀었던 것 같아요. 자주 나오는 거 몇개만 외우고 자주 안나오는건 버렸던 것 같거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사회, 그중에서도 역사였어요. 당시 한과목 고를 수 있었던 사탐 선택과목을 세계사로 정했을만큼, 좋아하고 잘했어요. 사회과목을 보통 암기과목이라고 하잖아요, 특히 역사를. 항상 그 말이 이해가 안됐던게 저는 뭘 외워본적이 없었거든요. 이 얘길 하니까 친구가 사건이 발생한 연도를 외우지 않냐고 물어보더라구요. 저는 연도 외워본 적 없고, 순서만 기억했습니다. 아주 간단하고 너무 당연한 예로, 천주교가 조선에 안 들어왔는데 천주교인을 박해할수는 없잖아요(..)
제가 공부하던 당시엔 ‘두문자’라는 것이 있어서 다들 외웠답니다. 제가 본 시험은 참고자료를 주는데 그 참고자료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그걸 찾아볼 시간을 절약해서 문제를 풀 시간을 벌기 위해서이기도 하고요. 아마 두문자라는 개념 자체는 다른 시험을 준비하는 분들에게도 익숙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혹시 모르신다면 그냥 머릿글자 따서 외우는거예요. 머릿글자의 조합에 불과하기 때문에 말 자체에는 의미가 없고 각 글자에 해당하는 원래 개념이 각각 있습니다. 예컨대 ‘별다줄’ 같은거죠ㅋㅋ 이쯤되면 예상하셨겠지만 저는 두문자를 외우지 않았어요. 두문자를 외우는게 더 고통이고, 요행히 입에 붙더라도, 저는 각 글자에 해당하는 원래 말이 뭔지 생각나지 않아요. 그러니 두문자를 외우는게 더 효율이 떨어진다고 생각해 깨끗이 포기하고, 참고자료를 뒤졌지요. 참고자료 안 주는 시험이더라도 마찬가지로 두문자 같은걸 외우지는 않았어요. 어차피 외워봤자 소용이 없으니까요.
옛날얘길 하다보니 글이 길어졌네요. 저는 유독 남들이 보통 외워서 하는걸 안 외우고 했었다는 것이 요지이니 길어서 혹시 내용이 혼란스럽고 이해가 잘 안됐더라도 다시 돌아가 읽으실 필요 없습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저는 뭘 잘 못 외웁니다. 닥치고 외워서 암기과목 시험을 해결해 본 적이 있는 분이라면 저보다 암기력 훨씬 좋은거예요, 전 그거 안해봤거든요.
그래서 저는 안 외웠어요. 그대신, 배우고 기억했어요. 암기사항을 추려서 외우는 것과 배운 것을 기억하는 것은 다릅니다. 어떤 면에선 되게 무식한 방법이고, 어떻게 보면 공부의 참뜻에 맞는다고(뭐래;;) 자뻑을 잔뜩 불어넣어서 주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방법은 간단합니다. 님은 뭘 배웠고 배운 것에 관한 시험을 볼 예정입니다. 그 배운 것에 관심을 가지고, 중요한 사건 또는 개념들의 관계와 맥락을 생각해보세요. 수학공식이나 단어처럼 도구가 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많이 사용해 보세요. 어느새 그것이 눈에 익고, 따로 외우지 않아도 기억이 나게 됩니다.
참 쉽죠?
라고 말하고 싶지만, 실행은 안 쉬운거 압니다. 그래서 제가 무식한 방법이라고 했잖아요. 하지만 암기사항 추려서 외웠다가 대부분 까먹고 좌절하는 것에 비하면 효율적일수도 있겠죠. 제겐 그랬거든요. 이 방법으로 배운 걸 다 기억할 수는 없고, 완벽하게 암기하는 사람들처럼은 못합니다. 당연히 빈틈이 있어요. 하지만 객관식 시험을 보기엔 부족함이 없을겁니다. 배운것을 이렇게 기억해 두면 꽤 높은 확률로 정답을 찍을 수 있습니다. 이건 제가 몇번이나 해봤으니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단답형까진 괜찮아요. 정답이 있는 서술이나 구술시험이라면 정확히 기억해서 쓰거나 말해야 할테니 좀더 어렵고, 아마도 운도 따라야 하는 것 같지만...하지만 할수 있습니다. 여기 경험자가 있어요.
저는 제가 해본 얘기들을 했는데, 제가 안해봐서 모르는, 정말 닥치고 외우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것들도 있겠죠. 하지만 외우는 것에 자신이 없고 항상 다 까먹어서 좌절하신다면, 닥치고 외우기 전에 먼저 한번쯤 생각해 보세요, 이걸 안 외우고 기억나게 할수 있을만한 맥락이나 관계가 정말로 전혀 없을까?
마지막으로, 정말진짜 외워야 할 때 어떻게든 하기 위한 팁을 공유합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뒤늦게 진단을 받았었지만 그 전후로 여러 외국어를 공부하고 수많은 단어들을 외웠던 지인에게 조언을 구했어요. 그분은 한자의 경우는 그냥 굉장히 많이 반복해 써내려가면서 외우셨다고 하고, 기타 외국어 단어를 위한 것으로는 ‘멤라이즈’라는 유료 어플을 추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신청해, 단기목표와 벼락치기의 힘을 이용하셨다고 해요. 많이 쓰는 것과 단기목표가 핵심인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