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글을 한 편 써봐야지 하면서 몇 달 째 미루는지 모르겠다.
기억이 닿는 어린 시절부터 나는 공상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어른이 무섭고 혼나는 것이 무서운 소심한 아이였다. 게임 등에 쉽게 중독되는 아이였다. 엄마는 내가 게임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이 보기 싫다고 했다. 나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표현만 달리할 뿐 모두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하는 것 치고는 게임을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좋아하던 게임도 이제는 재미 없어서 안 하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사회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가르쳤다. 쉬운 일이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니까. 그렇지만 항상 지루했다. 지루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티가 나면 혼나니까. 나는 혼나는 것이 너무나 싫고 무서웠다.
멍 때리고 수업을 듣지 않아도 괜찮았다. 어느 순간까지는. 언제부터인가 괜찮지 않았다. 좋아하는 과목과 싫어하는 과목 사이의 편차가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이것이 입시에서도 내 발목을 잡았고 끝끝내 해결하지 못했다. 내 인생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중간이 없는.
학교에서 나와 밖에서 나는 180도 달랐다. 마치 지킬과 하이드처럼. 적당히를 모르고 하루 종일 밖에서 뛰어다니고 온 동네를 소리 지르며 쏘다니는 아이였다. 아마도 모험을 떠나고 싶었나보다.
나는 길에 있는 돌부리를 조심하지 못하는 아이였고 툭 튀어나온 기둥 따위를 잘 피하지 못했다. 늘 몸에 멍이나 까진 상처가 있었고, 이해할 수 없는 기행을 벌이다 크게 다치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즐거웠다. 부모님께 크게 혼나기 전까지는. 아직까지도 무릎에 새겨진 흉터를 보며 그 일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엄마는 내가 아프면 크게 속상해하셨다. 정확히는 화를 내셨다.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느냐고. 생각해보니 그렇다. 너는 조심성이 없냐는 이야기를 유독 많이 들었다. 넘어져서, 깜빡해서, 실수로 답을 잘못 마킹해서, 문제를 잘못 읽어서, 미처 생각지 못해서, 생각 없이 행동해서. 수없이 혼나며 나는 한없이 작아졌고, 혼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나는 성격이 급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한 아이였다. 늘 튀지 않으려 노력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했다. 그 말을 항상 명심했다. 그러나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충동적인 생각은 나를 힘들게 했다. 어떤 합리적 사고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크게 문제되지 않을 정도 선에서 교묘하게 드러냈다.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은 결국에는 내 사회성이 좀 더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내 생활기록부에 기어이 쓰고야 마셨다. 내 지도 교수는 내가 대학원 생활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나는 납득이 되지 않는 규칙은 따르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납득이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었고, 비합리적이었다. 아마도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엄마의 부단한 노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나는 철 없고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나는 늘 지각의 문턱에서 마음 졸이며 급하게 등교하곤 했다. 지각을 하면 혼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혼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지각하지 않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것은 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대학에 가서 문제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곳은 나를 혼내지 않는다. 성인이니까 자기 책임인 것이다. 나는 내가 질 수 없을 정도까지 내 책임을 무겁게 만들었다.
나는 20분 이상 집중하지 못한다. 20분 즈음에 내 흥미를 유발하지 못하면 딴 생각 혹은 딴 짓을 하기 시작한다. 좋아하는 것에는 푹 빠졌다. 흥미 없는 것은 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흥미 없는 것도 해야만 했을 때는 30분 안에 끝내기 위해 노력했다. 내게 자유가 부여된 때는 미룰 수 있는 극한까지 미루곤 했다.
나는 무언가를 시작하면 동시에 여러 개의 일을 한다. 가령 인터넷을 보다가 폰 게임을 하며 강의를 듣다가 대출의 이자 납부일을 생각하고 갑자기 책상 위의 먼지를 닦으며 로또에 당첨되는 나를 상상하며 복권을 산다. 이 모든 일 중 집중해서 하는 일은 단 하나도 없다. 나는 내가 멀티태스킹의 달인인 줄 알았다.
나는 말귀를 한 번에 잘 알아듣는 경우가 많지 않았고 스스로 정리정돈을 잘 하지 못했다. 앞에서 순서대로 알려주는 것을 잘 따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배우는 데 오래 걸렸지만 단순한 작업은 굉장히 빠르게 잘 했다 잔 실수가 잦았지만 빠르니까 그만큼 검토할 시간도 충분했다. 결과만 좋으면 된 것 아닌가? 아마도 나를 설명하는 단어에 꼼꼼함과 성실함은 없을 것이다. 다만 꼼꼼해 '보이거나' 성실해 '보이게'는 할 수 있었다. 세상은 결과만 대충 보고도 성실하다고 쳐주었다. 무엇이든 빠르게 대충 쳐내고 싶고, 어딜 가도 빠르게 가고 싶고 누군가 길을 막고 있으면 화가 난다.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제일 싫었다. 그러나 그렇게 일을 빨리 쳐내고 목적지에 빨리 가도 남는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투리 시간을 잘 쓰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게 뭔가를 시키면 열심히는 하는데 조금씩 어설프거나 성의가 없어보였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는 않았다. 관심 있거나 좋아하는 일은 기가 막히게 잘 했다. 사람들이 내게 보내는 찬사는 나를 기쁘게 했다. 다만 내가 관심 갖거나 좋아하는 일이 그렇게 내게 생산적인 일은 아니었다는 사실. 나는 남들 보다 소리가 크게 들렸고 냄새를 잘 맡았다. 성격이 예민하고 도서관에만 가면 작은 소리에도 미어캣처럼 반응했다. 매사에 늘 귀찮고 지겨웠다. 시간이 지날 수록 흥미로운 일은 줄어들었으며 더 자극적인 일을 찾아 나서야 했다.
나는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대화 중에도 딴 생각을 하거나 주변의 다른 소리에 더 집중하곤 했다. 다만 듣는 척은 잘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말도 잘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게으르고 의지가 박약하고 이기적이고 모순적이며 무책임하다. 생각 없이 말하고 생각 없이 행동하며 거의 모든 결정은 충동적이다. 나는 튀고 싶지 않아서 입을 닫았고 몸을 경직시켰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대신 나 자신에게 피해를 주었다.
누구나 다 하기 싫은데 견디고 산다는 말을 굳게 믿었다. 지금도 믿는다. 그러나 인생의 중대한 기로에 서서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극한의 상황에 몰린 그 순간에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는 일이 없었다. 굳은 의지를 갖고 하면 못 할 일이 없다는 말을 수 없이 들었다. 이 말은 나를 미치게 했다. 온갖 동기부여 방법, 자기계발법을 동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십 여 년 넘게 방황하고 나서야 내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만든 습관들이 그나마 내 삶을 지탱하고 있다. 사실은 아직도 믿기 어렵고, 지금도 부정하고 싶다. 아닐 것이라는 확신을 받고 싶어서 갔던 병원에서 이 정도면 약을 처방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의외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화가 나지도, 슬프지도, 괴롭지도 않았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나의 흥미를 끌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 비록 검사 결과에서 저하가 다수 나왔지만, 집중해서 다시 검사하면 모두 정상이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의사 선생님께 하나는 문제를 잘못 이해해서 그런 것이라 변명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근데 진짜 잘못 이해한 것은 맞다. 약간 억울했다.
지금 심경은 복잡 미묘하다. 수용하는 마음으로 더 나아지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면서도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지금껏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뭘 어쩌라고? 싶은 마음도 든다. 좀 더 일찍 알았으면 모를까 싶은 부정적인 마음. 가장 중요한 시기에 나에 대해 잘 몰랐던 것이 슬펐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살면서 늘 했던 생각은 '남들은 어떻게 사나'였다. 남들도 나와 같은지가 항상 궁금했다. 이유는 모른다. 두서 없이 써서 어떻게 마무리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