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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치료 일대기 -2- (K2- Dead or alive)

이제부터 난 물러설 곳도 돌아갈 내 자리도 없어.

하지만 이제부터 난 달라질거야.

지금보다 더 강해질거야.

(K2 4집 ‘Sweet storm’ – Dead or alive)

 

난 다른 군인들과 다르게 ‘국군양주병원’ 에 입대하여 행정병으로 복무했다.

다행히 야전이 아니었지만, 사무직이어서 그랬을까? 나에겐 정말 힘들기도 하였다.

신체적으론 야전보다 덜 힘들겠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는 정말 심했다.

당연히 국군병원 행정병이다 보니 사무적 지시가 많았다. 지시이행과 말귀를 잘 알아듣는게 너무나 힘겨운 게 ADHD다.

 

난 항상 처음엔 이미지가 좋았다. 잘 웃는 상이었고, 목소리도 작지 않았고, 말도 잘 듣는 순응적인 편이고, 스스로 말하긴 그렇지만 예의가 바른 편이었다. 갈수록 ADHD 증세가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날 피하게 되고, 날 무시하게 되고, 내 평가는 안좋게 되는게 내 인생었다.

역시나 군생활도 그랬다.

공통사가 없으면 사람들과 잘 친하게 지내지 못해 생활관 사람들과 두루 잘 지내지 못했고, 생활관 사람들 13명 중 2명하고만 친하고 나머지 11명은 정말 안친하고 사이가 안좋기도 했다. 인사행정과에서 근무했지만 너무도 일을 못했다. 선임들한테 맨날 혼나고 털리고 그랬다. 잘 까먹기도 하여 청소당번이었는데 출석하지 않아 내 위에 선임들까지도 불려다 혼나기도 하였다. 경계근무 서다가 근무요령을 실수하기도 했다.

난 ADHD라는걸 드러내기 싫었으나 결국 견디지 못하여 ADHD라는걸 분대장에게 먼저 보고하고, 그다음 중대장에게도 보고하게 됐다. 끔찍하고 부끄러웠다. 역시나 중대에서 내가 ADHD라는게 알려지게 됐고 그들의 눈초리는… 나중에는 ‘정신병자’ 라는 소리도 듣기도 했다.

ADHD라는게 보고되고, 업무를 잘 하지 못하는 난 인사행정 업무에서 교환대(행정병에서 통신병)로 부서이동 됐다.

그나마 통신병은 문제없이 하게됐다.

 

군생활을 하게 되면서 내 ADHD 때문에 무시받고 멸시받고 인정받지 못하고 혼나고 갈굼받고 하다보니 내 자존심과 자존감은 바닥이었다.

그러면서, 난 ADHD를 반드시 극복하고 싶었고 내 ADHD가 너무도 무서워 다른 면에서 인정받고자 노력했다.

돋보이는 내 장애를 숨기기 위해서 내 스펙을 올려야 했고, 좋은 데 취업하고 성공해서 명예도 올리고, 돈도 많이 벌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난 사실 결혼을 하는 거에도 걱정이 됐다. 그 당시의 자존감은 아주 바닥이었던 나는 ADHD인 날 누가 결혼해줄까 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런 것을 덮기 위해선 외적인 내 모습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군대에서부터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 자기성찰을 많이 하게 되고, 내 진로를 모색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새벽에 불침번 근무나 경계근무를 설 때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뭐 먹고 살지 항상 생각을 했고 전공이 맞지 않은 컴공과를 그만두고 어떤 학과를 가야할지도…

 

군대에서는 대부분 TV보거나 놀거나 시간 때우는 사람들이 많다. 흔히들 군대가면 2년동안의 시간이 아깝다고 하지 않나? 난 그 2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진취적인 사람은 운동을 한다. 거기다 더 진취적인 사람은 책을 많이 읽는다. 거기다 더 진취적인 사람은 공부를 한다.

평일에는 22시에 점호가 끝나고 취침시간에 2시간씩 공부(점호 이후 ‘연등’ 이라고 0시까지 휴게실에 공부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를 했고, 주말에는 쉬기도 했지만 거의 공부했다.

평일이나 주말같은 경우 불침번이나 경계근무가 새벽에 배정될 때에는 공부를 한 후 바로 근무나가기도 했고, 좀 피곤할 때는 공부를 안하기도 했다.

연등을 하게되면 중대 100명 중에 자주 보는 사람은 10명도 채 안됐다.

 

군대에서 40권의 책을 읽고, 영어기초를 다지고(부끄럽게도 군입대 전에 명사, 동사 이런거도 몰랐고 문법기초가 아예 없었다), 자격증 2개를 취득하고, 새로 입학할 학교를 찾고, 진로를 찾았다.

공부를 하면서 울기도 했다. 같은 페이지를 여러번 봐도 이해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 멍청했고 화가 났다. 그리고, 이렇게 각박하고 빡빡하게 공부를 해야하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난 성공해야 했다.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으로 가득차 있던 나는 이대로 살다가는 세상에서 쓰레기가 될 것만 같았다. 더구나 난 ADHD 였으니 말이다. (자극적인 말이긴 하지만 저의 심리를 드러내고자 표현했습니다.)

약도 하나도 맞지 않아 없는 의지를 끌어내기가 정말 너무 힘들었다…

난 성인@ 카페에 2011년에에도 가입을 했었어서 게시글들을 보면 약이 맞는 사람들이 정말 부러웠고 축복이라 생각했다.

약이라는 아주 좋은 것이 있는데도 약을 안먹고 치료하는 방법이 없냐고 게시글들이 올라오면 화가나고 울화통이 터진다.

약이 맞긴 하나, 부작용이 심해서 괴로워서 안먹으려는 글들도.

난 약이 안맞으면서 부작용이 심한데 말이다. 약이라도 맞으면 부작용이 심하더라도 효과는 나는거니까!

게시글에서 약물효과를 본 후기들을 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깨어나는 느낌이에요!’. ‘머리가 쌩쌩해져요!’, ‘까먹는게 눈에 띄게 줄어들었어요!’, 정말 너무 부러웠다..

난 왜 그런 느낌을 단 한번도…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말이다.

부작용이 심한 약(콘서타) 이었어도 난 구역질과 속이 안좋은걸 참아가면서도 난 약물용량을 줄이는걸 최대한 안하려 했다. 내 몸이 감당할만큼 최대용량까지 올리면 혹시나 약이 효과를 발휘하지 않을까? 약물효과가 아직 내 몸에 도달하지 못한건 내 몸에 있어서는 약물용량이 적었던걸까? 부작용이 심해도 54mg까지 올려 복용해봤지만 효과는 없었다…

54mg 이상 복용하기에는 정말 내 몸이 거덜날거 같고 미칠거 같아 결국 콘서타 증량은 포기했고 내 몸에 적응을 시키려고 했다. 그렇게 계속 먹다 결국 콘서타 복용은 포기를 했다.

일병 때부터 국군수도병원 가서 나의 두번째 약인 ‘콘서타’ 를 처방받았다.

그다음으로 세번째 약인 ‘웰부트린’ 을 처방받았다. ADHD 2차 치료제란다.

부작용은 덜했지만 역시나 효과는 없었다.

 

 

-3- 편 이어서 씁니다.

 

 

“나의 치료 일대기 -2- (K2- Dead or alive)”의 2개의 댓글

  1. 우소님 에이앱 단독 연재인가요….*^~^*
    긍정적 고군분투 항상 응원합니다
    군대가 에이디에게는 정말 힘든환경인것같네요 견뎌내신것 대단해요

  2. 하 군대ㅜㅜㅜ 저도 군대 갔으면 비슷했을 듯요ㅠ
    정말 고군분투셨네요. 우소님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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