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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이란 시간
Level 8   조회수 128
2021-05-16 11:02:53

요즘 어떻게 지내? 


오랜만에 보거나 연락이 닿았을때 빠지지 않는 단골멘트다. 

그러면 난 요즘 음식 해 라고 말하곤 한다. 

보통은 요리 한다고 말한텐데 난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아서 그렇게 말하게 된다. 


한창 공부할 때도 주변에서는 요리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그랬지만 

난 항상 에이 내가 무슨 요리야, 이 나이에 무슨, 그런 생활패턴은 싫다는 둥 

이런 말들을 늘어놓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렇지만 처음 일을 하게 된 건 누군가의 권유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난 이런 저런 큰 사건을 겪고 갈피를 못 잡으며 바에서 술이나 늘어놓으며 지낼 때였고, 

거기엔 친하게 지낸 바텐더 중에 동갑의 직원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시간 보내지 말고 알바라도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했다. 

지나가듯이 말했지만 그는 진심이었을 거다. 


처음엔 좀 그랬다. 그래도 난 당시 다시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마음에 작은 반발심이 있었던 거 같다. 

하지만 당장 공부를 시작하기도 힘들고 남은 한 해를 버티려면 일이 필요하긴 했다. 

그래서 집 주변 알바 자리를 찾았다. 


몇 일 지나지 않아 일을 구하게 되었고 거긴 샐러드나 샌드위치 같은 음식을 파는 카페였다. 

거길 선택한 이유는 하나였다. 손님이 적은 것 같아서. 

하지만 들어가보니 업무량은 정말 대단했다. 파트로 들어갔지만 퇴근을 할 때면 기가 쭉 빨렸다.


난 오후타임을 하고 있었는데 오전타임을 맡던 직원이 

갑자기 그만두게 되고 난 잠시 풀타임으로 일을 도와주게 됐다. 

그런데 대표님은 계속 빈 자리를 채우려 하지 않는 듯 했고 그렇게 겨울이 왔다.


겨울은 정말 힘들었다. 

추워서가 아니고 대표님과 나와의 사이에 정말 찬기가 흘렀다. 

일을 시작하고 3-4개월이 넘었으니 일은 익숙해져가는데 실수는 오히려 그전보다 심했고 

그 일로 작고 큰 사건들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래서 난 이곳과 맞지 않는 걸까 하며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아무튼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강했다.


그러다 미국에 계신 부사장님이 한 달 간 가게에 오시게 되었는데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다. 

개인적으로도 잘 챙겨주시고 요리에 관한 것도 많이 알려주시면서 

대표님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나아지도록 분위기를 잘 이끄셨다. 

그러면서 이 가게가 좋아졌다.


사실 일 자체가 힘들긴 했지만 싫지 않았다. 

요식업에서 일한 경험은 많지만 대부분 홀파트였지 주방파트도 같이 경험한 적은 없었다. 

해봐야 안주 손질 정도. 처음 주방을 경험해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리고 재밌었다.


그동안은 어떤 일을 해도, 나름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강사일을 해도 

시간이 너무 가지 않아 괴로운 일이 많았다. 하지만 이 일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배로 힘들 때도 많지만 못하겠다고 생각이 든 적은 잘 없었다. 

시간이 가지 않아 괴롭지도 않았다. 


부사장님은 크리스마스 전에 다시 미국으로 가셨고 

우리는 다시 조금은 서먹했지만 나도 약을 증량함과 동시에 더 긴장하고 

일을 했던 덕인지 일은 더 수월해졌고 실수도 많이 줄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의 관계도 조금씩 나아졌다. 


원래 이번 봄이 되기 전에 그만두고 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계속 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시험도 치지 않았다. 그렇게 일한 지도 이제 일 년을 곧 앞두고 있다.


이제는 매니저가 되기 위해 업무를 더 배우고 경험하는 과정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과정이 긴 것 같아서 답답하긴 하지만 

언젠가 이 관문도 통과해서 새로운 단계로 올라설거라 믿는다.


우리는 때로 내가 항상 제자리에 있는 거 같고 나아가지 못하는 거 같아서 

스스로를 한심하게 볼 때도 있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이것은 남과 비교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나아간만큼 누군가도 나아갈텐데 그와의 거리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제자리이거나 뒤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하려 하고 

그래서 이렇게 힘을 들이며 살아가는데 우리가 과연 제자리일까 생각한다. 

남과 비교하기보다 내가 목표한 바에 얼마나 내가 다가가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내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다른 요식업들이 그렇겠지만 특히나 우리처럼 작은 회사는 일반 기업처럼 

개인이 성장하거나 승진할 있는 길이 그리 길거나 선명하지 않는 편이다

그게 많이 막막한 환경이긴 하지만 내가 성장하는 만큼 회사도 성장할 있다고 믿고 있다

믿음에 어떤 어려움들이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은 해보려고 한다

그러면 어디론가 앞으로는 나아가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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