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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기록
Level 2   조회수 79
2020-12-16 07:59:17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큰아버지 집에 누워게셨던 간암 말기 할머니 병문안. 누워 계셔서 밥도 거의 못드셨지만 우리 가족이 가면 항상 몸을 일으키셔서 반겨주셨다. 아빠한테 할머니가 왜 병원에 안가냐고 물어봤는데 할머니가 가기 싫어한다고 하셨다고 했다.

시한부라서 얼마 남은 시간이 없다고 하셨는데 모든 가족들은 덤덤해 보였다. 나는 8살쯤 되는 꼬맹이라 사람이 죽는다는 개념이 없어서 할머니가 안아주면 그 품이 따뜻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행복했다. 

얼마 후 할머니꼐서 돌아가시고 집에 관을 들고 온 상여꾼들이 왔고 상여꾼들이랑 묘가 있는 선산에 올랐던 기억이 행복하다. 꼬맹이인 나는 그 상여꾼들의 움직임과 노래들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래서 졸졸 따라다니면서 상여꾼들을 따라했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맡겨져서 3살부터 5살 정도까지 부모님이랑 떨어져 살았는데 한달에 한 번인가 엄마 아빠가 면회(?)를 오면 너무 행복했던 나머지 달려가는 자동차를 따라가겠다고 울부짖었다. 엄마 아빠가 오면 왜이렇게 행복했을까.

초등학교 시절 베프 민석이네 생일파티는 항상 1박2일이였는데 민석이 집에서 친구들 여려명이 모여서 잠자고 게임하고 운동하고 밥먹고 그 분위기가 아직도 행복했던 기억이다.

우리집은 어렷을 때 암사동 반지하에서 살았는데 그 동네 분위기는 세탁소집 아들 비디도가게집 아들 떡볶이 분식집 딸 이렇게 집 앞 놀이터에서 뛰어 놀았다. 동네 가운데는 지금 생각해보면 나머지 집들이랑은 이질감이 있는 부자집이 있었고 나머지는 우리집같은 반지하가 딸린 빌라이거나 주택집이였는데 그 친구들이랑 뛰어놀던때가 그립다. 별명으로 불렀었는데 기억이 안난다.
부모님이랑 살면서 가끔씩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찾아갔는데 항상 밤 12시 새벽에 도착했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밥이랑 깍두기랑 여러 반찬을 내어주셨는데 깍두기가 너무 맛잇었다.  매콤한데 끝에 살짝 단맛이 나는데 깍두기 국물까지 비벼서 밥을먹었던 기억이 있다.

아빠는 비디오가게를 접고 중국집을 시작했는데 초등학교 떄 나쁜 무리 애들이 나를 짱꺠아들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나는 누가 물어보면 아빠 직업을 숨겼다. 그냥 회사다닌다고 거짓말을 했다. 어느날 학교에서 부모님 소개하기 시간을 가졌는데 난 처음으로 용기내서 우리 아버지는 중국집을 운영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다닌다고 했다. 박수를 받았는데 감동이 차올랐다. 집에가서 자랑을 하고싶었지만 그 동안 아빠 직업을 숨기고 다닌게 부끄러워서 그냥 아무말도 안했다. 난 어려서부터 지는걸 되게 싫어했는데 어느날 학원에서 영어단어 암기 시험을 본다고 한다. 나는 며칠을 밤새서 학교 공부도 내팽겨치고 영어 단어만 외웠다. 학원에서 1등하니깐 너무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또, 학교에서 독서 골든벨이라는 것도 했는데 책을 읽고 퀴즈를 맞추는 게임이였다. 전교생들이 나와서 참여했는데 난 이것도 이기고 싶어서 며칠동안 공부도 안하고 책만 읽었다. 결국 2등을 했는데 반에 돌아오니 박수를 받았다.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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