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사이트를 알게 된 지 꽤나 시간이 지났는데 이제야 글을 올리네요. 입사한 지 3주차의 수습 사원입니다.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프로젝트 경험도 많이 없는 저를 채용해 준 회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다니고 있습니다. 물론 최종 합격을 한 게 처음이라서 또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제 실력에 대한 인식은 아주 강력했지만, 그것을 드러내었음에도 회사가 저를 받아줬다는 사실에 감격해서 거의 이 회사를 종교처럼 받아들였습니다. 회사가 이익 집단이라는 걸 잊고 말이죠. 어떻게든 성과 있는 일을 하고 싶고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얼른 성장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부족한 저를 받아준 회사에 보답을 하고 싶었으니 말이죠. 개발자는 경력없는 사람이 채용되기가 매우 힘들고, 만약 경험없는 사람을 뽑은 경우에는 노가다적 작업이 크다거나 생활을 지키기 힘들 정도의 업무가 부여됩니다. 물론 스트레스는 더 말할 필요도 없구요. 이게 사람 취급인가 싶은 게 많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취업한 회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감사한 마음이 컸고 의욕과 성장 욕구가 컸습니다. 그래서 작은 일을 맡겨도 깊게 파고들어 앞으로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을 세세하게 짚고, 어떻게든 제가 만족하는 최고의 결과를 내고 싶어서 일에 엄청나게 몰입했습니다. 그게 회사가 저에게 바라는 방향인지 아닌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회사에 도움되는 내용이면 언제든 사용될 수 있으니 어디까지 심화된 내용을 하든 사용은 의사결정권자들이 알아서 하겠지, 했어서 저에게 주어진 과제를 하고싶은대로 진행했습니다. 그 과제가 저를 평가하기 위함이고 업무를 하는 방식을 알아보기 위함을 알기 전까지 저는 회사에 악영향이나 큰 문제를 불러오지 않는 일이면 그냥 뭐든 해도 될 줄 알았습니다. 저에게 맡겨진 일을 해내는 건 저였으므로 진행하는 방식이든 내용이든 상관이 없을 거란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평가 대상이었고 회사와 시키는 사람이 보고싶은 것을 보여줘야 하는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엄청나게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 저와 너무나도 달랐고, 그런 표면적인 것만 하기에는 제 욕심과 의욕이 너무 컸습니다. 빨리 성장하고 싶어서 목표치를 찾고 하고 싶었던 부분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게 다른 사람들 눈에 건방지고 나대는 것으로 보일 줄이야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팀원들을 만나게 되어서 다들 피드백과 충고를 한 번씩 주고 있기는 하는데, 이걸 언제까지 해줄 수 있을지 본인들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1차 피드백에서부터 고치려 한 노력을 보이거나 어쨌든 나아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저는 이제 치료 3개월차 정도 되었고 아직 저에게 맞는 콘서타 용량을 찾지 못했습니다. 가장 급했던 우울, 불안장애를 걷어냈더니 이 병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이제야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회사에 처음으로 들어와 일을 시작했더니 의욕만 앞서고 일은 똑바로 못하는 사람으로 찍힌 거 같습니다. 이제 증량한 콘서타 72mg가 저에게 어떤 도움을 줄 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거처럼 확연히 달라지는 약효를 아직 못 느끼고 있습니다. 이 은은한 집중력으로 일을 하고 나면 결과물은 시킨 사람이 원하던 것과 아주 다른 방향에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3주차인데 저를 받아들이기로 했던 분 역시 회의감과 고민을 하고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고용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하시면서요. 타전공으로 시작하여 소프트웨어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로 이렇게 커뮤니티도 이루어지고 누군가의 정신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어렵고 성과도 없던 프로그래밍을 제가 직업으로 선택하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고 늘 새로운 걸 알게되는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이제 이걸 일로 생각하라 합니다. 저의 재미를 위해 존재하는 회사가 아닌 것도 알고는 있지만, 회사가 생각하는 서비스와 제가 생각하는 서비스는 너무나도 다른 것 같습니다. 제 상태가 이 정도로 엉망임을 알고 있음에도 입사를 결심한 저 역시 책임이 크겠죠. 이 중구난방의 제멋대로 하는 일처리 방식이 부디 이 병 때문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이걸 멈출 수 있는 약물과 그 용량을 가급적 빨리 찾을 수 있길 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남의 일이지만 우리한테는 내 인생이잖아요. 하루종일 그들의 타자화에 머물러 있으려니 정말 힘들고 외롭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