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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진단받은건 아니지만 add 자각 후 2개월동안의 나
Level 3   조회수 319
2020-02-27 14:17:17

* 짤은 제가 느끼는 adhd의 대뇌피질(무지)와 나머지 신체기관(콘) ㅋㅋㅋㅋ 입니다​

심리학 복수전공을 하고 19살때부터 정신분석책을 혼자 뒤적여보고 지금껏 읽고 탐구한 심리학 관련 책, 마음챙김, 명상 오만 지식, 지혜를 합치면 아마 이정도로 뒤져본 사람도 손에 꼽을 것 같지만 그 속에 adhd는 없었다

임상심리 교과서에서 분명 adhd라는 개념을 봤지만 불과 몇년전 교과서인데도 성인 adhd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아서 당연히 의심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adhd를 일종의 심리장애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나를 이만큼 들여다보고 판 이력을 보면 짐작하시겠지만 자아가 생기고 지금까지 계속 나 자신이 버겁고 이해가 안갔다

내가 나 자신이 이해가 안가는데 남에게 이해받는 건 더더욱 힘들었다

비슷한 친구가 거듭 말해줘서 그때서야 처음 제대로 들여보았고, 나머지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과 비슷한 양상이었다. (충격, 허망함, 분노, 허무함 이런거에 저는 개인적으로 어이없음 까지 낀 것 같아요. 차라리 이런 쪽으로 잘 몰랐으면 모를까)

바로 관련 서적들을 독파하고, 영상들도 독파하고 이곳도 알게 되었다.

비슷한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빠르게 증상이나 현실적응법 등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삶에 적용시켜나가며 병원을 물색했다.


아직 확진을 받은건 아니고, 스스로도 약간 학자적인 성향이 있어서 계속해서 나를 관찰하고 탐구했다.


일단 가장 힘들었던 10대 후반 인생의 중요한 정신적 사건 이후 결심한대로 내 인생 모토는 '노스트레스'였기에, 20대에 한 선택들은 조금 아쉬운 부분은 있어도

나 라는 사람을 대입하고 보면 충분히 납득하고 좋은 선택들을 많이 했다. (더 나은 결정, 나의 한계치를 끌어내는 도전도 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말자'고 결심하게 된 것이 10대의 교훈이었고, 지금도 나를 살릴 수 있는건 나뿐이라는 느낌이 든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에게 안좋은 사람을 멀리 했고, 진로나 목표설정도 나를 괴롭히지 않고 내 결에 맞는 방향으로 해왔다

덕분에 물경력이긴 해도 편안한 개인주의 분위기의 회사에서 1년에 1,2번 정도 스트레스 받을까말까하게 살며 돈도 착실하게 모으고 결혼도 했다

(배우자에게 add 얘기를 했을 때, '너가 궁금해하던 것에 대한 답을 얻어서 잘 됐어'라는 말 외에는 달라지는 게 없을거라고 지지해준 것도 좋았다. adhd외에 스스로 의심했던 많은 동반장애들 때문에 연애도 쉽게 하지 않았고, 연애 후에는 내 개인적인 문제 대부분을 정신과 내원없이 혼자서 많은 책들과 조언을 참고하여 극복했는데, adhd까지 인생의 범주에 넣고 나자 스스로와 싸우던 정체불명의 것이 이제는 정체를 아는 상태에서 싸우게 되니까 훨씬 효율적으로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를 가혹하게 정상의 범주에 넣으려고 노력했던 흔적들 덕분에 웬만한 사람들보다 더 강박적으로 완벽하게 일을 한다. 그래도 여전히 실수는 생기지만, 이럴 때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입버릇이었던 '어쩔 것이냐~'하는 조금 장난스럽고 진지하지 않은 말을 생각하며 일단 벌어진 일이니 더이상 스스로를 공격하지 않고 매뉴얼을 만든다. (남들이 실수 안하는건 이런 매뉴얼이 다 있어선줄 알았는데 아니란걸 안 것도 최근 ㅋㅋ)

주변사람들과의 이질감이 느껴지고 아무리 깊게 대화하려 해도 되지 않을 때부터 온라인 생활을 했고, 그때부터 일기를 써서 벌써 20년 가까이 일기를 쓴다 (매일은 절대 아님. 안쓸때는 1년에 1,2개 쓸 때도 있었음)

침착한 배우자(10년 가까이 함께 했기 때문에 습관이나 성격도 닮아감) 덕분에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뒤돌아보는 습관이 생겨서 물건도 많이 안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adhd 의심되는 부분이나, 노력과 의지로도 확실하게 '안된다'고 느끼는 부분은


- 감각, 정보가 중첩될 때 정보처리가 잘 안되는걸 느낌. 둘중 하나를 확실하게 포기해서 하나에 집중하는 게 잘 안됨 (동시에 두 사람 이상이 말하고 있는 상황에 두 사람 말 다 못들음. 근데 이때까지 그냥 안듣고 마지막에 들리는 말로 추측해서 리액션을 잘해서 전혀 문제 없이 살아왔는데 집중해서 들어보려고 하니깐 하나도 못들은게 충격이었음) 어릴때 뭐 잔소리 해도 못듣거나 듣고도 못한 것 여전하고 두가지 작업상황이 중첩되어있을 때 위험하다는걸 인지하면서도 중간에 낀걸 잘 못피하는 것 같은것 (설거지 물 틀어놓고 수세미에 세제 짤때마다 중간에 틀어놓은 물을 꼭 맞고 세제를 짠다든지;)


- 작업기억 취약함을 확실하게 느낌. 일하면서 메모는 습관인데 음성언어를 정확히 적으려고 하면 의미가 해석이 안되서 시간이 걸리고 의미 위주로 들으면 몇초차 적는 순서차이로 갑자기 날아가서 다시 묻게 됨


- 재미있고 집중해있을 때 뇌가 팽팽 돌아가서 약간 골이 울릴 정도 느낌, 커피 마시기 전까지 머엉~하고 아무리 정보를 넣어도 소화가 안되는 멍청한 느낌의 확연한 차이. 머리가 잘 돌아갈 때는 따로 생각을 안하고 머리에 정보만 넣어도 갑자기 뿅 하고 나오는 경험을 자주 해서 약간 머리 믿고 깝치며 살아옴 (..)


- 눈에 보이고 흥미가 생기면 갑자기 그걸 함. 배우자 말로는 옆에서 관찰하고 있으면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뭘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함. 그냥 해도 되는데 꼭 '벌떡' 일어난다함 ㅋㅋㅋ.....ㅇㅈ 그렇게 일어나서 그 대상으로 가는 도중에 자각을 해도 엄청 강력하게 뜨앗!!! 이렇게 폭발적인 반대쪽 힘을 내지 않는 이상 주의 전환이 잘 안됨. 정말 한손으로 다른 손 잡아서 멈춰야할 정도로;;; 대뇌는 일 안하고 소뇌가 막아주는 느낌


- 스몰토크 진짜 잘 안됨... 저차원 개그 티키타카가 안됨.. 그냥 고장난 기계처럼 뚝딱거리다 웃지도 못함. 반사적인 사회적 리액션조차 안나오고 아이컨택도 안됨. 저거보다 좀더 고차원 유머나 뇌가 따라갈 수 있다는 느낌이 드는 대화에서는 날라다니고 사교성 최고 수준, 공감능력 최상수준인데 유독 저런 대화맥락에서는 사회성 바닥인 사람처럼 뚝딱거려서 이해가 안갈지경


- (성격이라고만 생각했던) 서열, 위계, 복종, 맹목적인 정보습득이 안되는 부분. 이건 평생 바뀌고 싶지도 않다


- 꼼질꼼질거리는 것. 손이 작은데 이것저것 계속 움직여서 하는 소린줄 알았는데 정말 회의시간에 나만 혼자 의자라도 흔들고 손가락 꺾고 팔 안마하고 연필 돌리고 메모지에 낙서하고 아주 난리굿


- 감정전환 휙휙 잘되는 것. 괴로운 심리상황을 오래 끌지 않음. 빨리 전환되서 나옴.


- 거대한 꿈, 목표를 어떻게 현실적으로 이루는지에 대한 감이 하나도 안옴. 사장자아와 직원자아를 나누라는 말도 봤는데 사장이 가만히 있질 못하고 자꾸 말하고 까먹고 다른거에 또 꽂혀서 텨나가니 직원자아도 하다가 '이거 하는거 맞나' 하면서 자꾸 방황하는 인생 반복 -> adhd 치료, 정신과 상담으로 가장 극복하고 싶은 부분. (참고로 자기계발서, ted 이런류 처돌이라 웬만한건 다 봤고 개념 이론은 완벽함 ㅋㅋ)





그리고 일상과 일생 관련해서 얻은 힌트는


adhd는 습관이 보호해준다 (잘 설계된 습관이 나의 비서이고 보호자이고 항우울제임)

작업기억 보조수단이 반드시 필요하다

뭐든 쪼개서 단계단계를 나눠서 접근해야한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어도 안다치려면 끊어서 해야되는데 뇌가 항상 더 빠름)


좀더 구체적으로 느낀건



- 중요한건 무조건 눈에 보이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 어릴때 알림장을 가방에 넣고 와도 안꺼내서 안쓰고, 어쩌다 꺼내 써도 가방에 넣고 가방을 절대 집에가서 다시 안열어보고, 알림장을 썼다는 사실부터 내용까지 전부 말끔하게 삭제됨 (당연히 알림사항 얘기할 때 들은 기억도 없지만 운좋게 듣고 썼을 때조차도) 성인되서도 메모, 플래너 오지게 썼지만 하나도 효과 없었던 이유. 다이어리 맨 첫장에 맨날 쓰는 말 '다이어리를 펴는 습관부터'


- 메모, 기억 보조수단은 필수인데다가 그걸 계속 체크하는 습관까지 넣어줘야한다. 예를 들면 나는 매일 내일 업무계획을 보고해놓고, 다음날 그걸 본 적이 5년동안 10회 미만이다. 어떻게 이게 습관이 안됐을 수 있나 싶지만 출근해서 이걸 확인하는 습관만 넣으면 자아비판까지 갈것도 없이 그냥 한단계 넘는것이다. 메모도 많이 쓰지만 어디에 취합해둘것인가를 정하지 않아서 그 메모가 어디있는지 모른다. '메모지는 모두 여기에 붙인다' 이런 규칙이 있으면 좀더 나아진다.


- 충동성이 큰 편이라면, 평상시에 도파민부족상태인지 파악해서 건전하고 선순환구조의 활동을 껴넣기 -> 나는 특히 천천히 걷는(중요) 산책이 진짜 잘 맞고 도움되는걸 느꼈음. 실제 명상법이나 우울증 극복법이기도 하고, 머리는 ktx처럼 날라댕겨도 몸이 천천히 걸으면 내면에 집중하면서 몸은 서서히 지치게 해서 뇌가 무궁화호가 되는 것을 느낀다. 특히 안좋은 감정상태일 때 천천히 걷기 하면 가뜩이나 안좋은 기분에서 드는 생각들은 부정적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기분만 조절 잘 해도 adhd는 뇌 폭주를 막을 수 있고, 그럼 인생의 충동적인 실수들 많이 막음. 진짜 우스꽝스럽더라도 갑자기 폭주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박수를 친다든지 걸레질을 한다든지;;; 이런식의 충동성을 부정적인 방향이 아니라 긍정적인 방향으로 우선 해소하면 그 자체로 우습고 가벼워지기도 하고 스스로를 해치는 일을(저는 정말 호르몬 영향으로 자해를 했었습니다.) 줄일 수 있다. 배우자에게 갑자기 화가 폭발할 때도 갑자기 다른 방에 가서 불도 안켜고 일단 앉아서 숨만 쉰다든지 하니까 큰 실수할 일이 줄었음.


- 생각보다 어떤 행동, 프로젝트를 실행하는데 가장 많은 에너지를 들여야할 부분이 '계획을 더 세분화 해서 짜기' 같음. 왜냐면 계획을 짠다는게 비adhd도 마찬가지지만 adhd한텐 더더욱 그냥 희망사항 염불외기 하고 끝날 확률이 아주 높음. 정말 하찮을 정도로 심리적인 장벽을 낮춰서 차근차근 깨가야되는데 문제는 빨리 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우다다 하느라 쪼개기를 잘 안함 ㅋ 하지만 정말로 중요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해내야 하고 해내고 싶은 일이라면 의지나 다른 오만것이 아니라 '쪼개기'가 관건일 수 있음. 공들여 계획을 짜고 나서는 더이상 계획짜기로 다시 돌아갈 일 없이 '그냥 하기'를 해야한다. 그냥 하기가 잘 안되는 이유중에 하나는 계획 점검, 목표 재설정, 자원 확인 같은 삽질을 해야될 것 같은 불안때문인 경우가 많음. 불안을 달래고 싶을 수록 계획을 쪼개고 눈에 보일 정도로 생생하게 나눈 다음에, 그 다음에는 더이상 생각 말고 그냥 하자.




현재는 여기까지고 3월 후반쯤 예약을 잡아서 병원에 가기로 결정한 후 평온하게 지내고 있다.

요즘은 일기는 거의 맨날 쓰는데 주로 adhd 관련해서 관찰기처럼 쓰고 있다.


진단시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어렸을 때부터 증상을 보이는 것이라고 해서 나도 궁금해져서 나이스 가서 초,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뒤져봤다 (중학교는 뭔 사진이 안뜬다 어쩐다 해서 발급안됨)


놀라울 정도로 칭찬과 장점 투성이인 생활기록부였다.

분야별로 수상도 두루두루 하고 전과목 성적 우수하며 활발하고 리더십이 있고 어쩌구저쩌구..

너무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많이 노력했더니 아무도 내가 대놓고 직접적으로 내 자신이 이상하다고, 집중이 잘 안되고 너무 불안하다고 할 때도 귀기울여 듣지 않은 덕에 내 그런 목소리는 하나도 담기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길게 돌아왔겠지.



너무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adhd가 아니라고 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은 나도 여전히 든다.


그럼 그냥 이제 마음 편히 '멍청하고 이상하지만 가끔 비상하고 그래서 이상한 모두를 포용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이 건강하고 따뜻한 사람' 이라고 할래.






블로그로 써야하나 자유게시판에 써야하나 고민하다가 일단 썼는데 긴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누군가에게 소소한 공감이 되었기를..

첨부파일adhd.png (12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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