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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후 7개월 동안의 이야기
Level 3   조회수 1398
2020-02-23 20:32:33

가끔 어떤 책을 읽게 되는 게 운명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별 의도 없이 집어든 책에 그 시기에 필요하던 위로나 정보 또는 철학 같은 게 있을 때 그런 생각을 하곤 해요.

살면서 ADHD에 관해 따로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데, 8개월 쯤 전에 성인ADHD에 관한 책과 마주쳤습니다. 단숨에 다 읽어버리고 심장이 엄청 두근거리고 죄였어요. 혹시 내가 ADHD인걸까? 여태 특이하다고 여겨지고 스스로도 정상은 아니라고 느꼈던 것들이 그 증상들일까? 많은 생각들로 며칠을 고민하다 정신과에 상담을 신청했어요. 그리고 상담가기 전까지 관련된 자료, 기사, 약물정보 등을 알아보느라 제대로 잠도 자지 않았습니다.ㅎㅎ


설문지 작성, 상담, CAT검사, 추가상담을 거쳐 ADHD 판정이 났습니다. 그것도 정도가 매우 심하게 나왔습니다. 저는 저대로,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놀랐죠. 

집중하기 까지가 힘들지 집중에 문제가 있지 않다고 생각했고, 남들과 템포가 좀 다르긴 하지만 그냥 성격이 급하다고 생각했고, 관심사가 매번 예측불허로 바뀌어도 어쨌든 하고싶은 건 다 해보곤 하니 제 팔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이 놀라셨던 건, 얘기할 때 다른 환자들과는 다르게 차분해보였다, 주제를 벗어나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등등이 이유였습니다. 

그 부분은 꽤 오래 사회생활을 해서, 여러 분야에서 일하면서 깨지고 배우고 스킬이 생겨서 라고 상담하며 결론내렸습니다. 

(겉으로는 관련 주제만 이야기 하지만 머리 속으로는 갖은 생각을 다 하고 있었고, 상담실에 들어오는 빛이 바뀌거나 뭔가가 켜지거나 하면 시선이 계속 옮겨다녔던 것도 솔직히 말씀드렸어요.ㅎㅎ )

제가 실제로 많이 힘들어했던 부분들이 검사결과에서 자세히 나왔고, 그것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다가 많이 힘들었겠다며 위로 받은 하루였습니다.


상담 후에 콘서타18미리 처방받았고, 복용하며 여러가지 심리적 신체적 변화와 감정상태, 수면, 복용시간, 활동량, 일어난 일에 관해 느낀 점, 궁금한 것 등을 적어 상담 때마다 가져갔어요. 그걸 참고로 약 종류나 용량을 2주마다 바꿔보며 현재 용량으로 정착했습니다.

그동안 복용했던 약을 참고로 적어놓을게요. 혹시 용량이나 부작용 등 궁금하신 게 있으면 답글 남겨주세요, 개인적으로 느낀 점 답변 드리겠습니다! 🙂

콘서타 18

콘서타 27

콘서타 36

콘서타 27 (감량 이유 : 부작용 - 불안, 심장 죄임) 

스트라테라 25mg (하루 2알) (약 변경 이유 : 콘서타 반감기에 텐션이 많이 떨어짐,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 반감기가 많이 불편)

콘서타 18, 18 (오전, 점심) (콘서타로 다시 변경한 이유 : 스트라테라 복용 시 감정기복, 짜증, 우울감 생김)

콘서타 27, 18 (오전, 점심)

콘서타 27, 27 (오전, 점심) (3개월 정도 복용 중)


수면제는 콘서타18미리 복용할 땐 먹지 않았고,

27미리 부터는 멜라토닌을 먹었지만 감정기복이 다시 생기고 우울감이 들어 졸피뎀으로 바꿨습니다. 보통 3,4일에 1알 정도 먹고 있어요.

에이앱에서 알게 된 책들 읽고 인지,행동치료도 같이 했었습니다. (그냥 생활과 머리를 정리하는 수준으로요. 거창하진 않습니다 ㅎㅎ 아 이렇게 생각하는 거구나, 아 이렇게 행동하고 이렇게 정리하는 거구나. 정도!)


ADHD 진단을 받고, 약 복용하고, 행동과 생각을 알아가고 조정하는 7개월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1. 가장 큰건 나 스스로와 대화하게 되었다. 입니다.

그 전엔 대화가 아닌, 명령 혹은 변명, 질타 등등 이었던 것 같아요. (매우 부정적이고 파괴적이었습니다. 스스로 상처주는 말들..ㅎ)

지금은 나를 이해해주려고 노력하고,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이 들면 조급하지 않게 하나씩 고민하고 행동하게 되었습니다.


2. 집안일 : 아예 미루지 않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심하게 어질러 있는 날이 줄었고, 어느정도 정리된 상태로 대부분 유지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3. 완벽을 추구하느라 아무것도 안하거나 피하던 행동이 줄었습니다. 독서, 금전관리, 운동, 인간관계, 가족과의 관계, 새로운 흥미 등 많은 것들에 완벽을 강요하고 있었더라구요.

이정도면 괜찮아.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거 같습니다 지금은.


4. 감정기복 : 기분이나 행동이 급상승/급하강 하는 날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무기력에 허덕이는 날도 며칠 없었고, 그걸 추스리는 기간도 짧았습니다! 

혹 다 추스리지 못했다 해도 일상생활을 조금씩은 해내가면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어요.


5. 과식, 폭식 : 도파민이 필요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혹은 어떤 감정에서 도피하고 싶었던거 같기도 합니다. 

지금도 간혹 필요하지 않은 만큼 먹기도 하지만, 몸과 마음이 괴로울 정도까진 가지 않습니다. 조절할 수 있다고 스스로 믿음 같은게 생긴 것도 같아요.


6. 인간관계 : 가장 피곤하다고 생각해서 아예 놔버린 적이 많은 분야(?)입니다. 

사람 만나는 걸 매우 좋아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지 쉽게 피로를 느끼고 사람을 멀리했던 것 같습니다. 취업이나 결혼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두고 있는 얘기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관심도 없어서 얘기하기 싫어졌던 것도 있습니다. 전공이나 직업을 여러분야로 옮겨다니면서 지내다보니 한 곳에 오래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게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구요. 어차피 내 얘기에 공감도 이해도 못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최근엔 내면이 안정되고 생활이 안정되고, 그러고나니 인간관계도 개선할 수 있다 생각이 들어 조금씩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타인에게 솔직하게 얘기하고, 애써 감추는 면 없이 지내니 신기하게 나와의 관계도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이성관계든 친구사이든 푹 빠져 지내고-식어버리고 하는 사이클을 반복하며 살다가, 지금은 정도를 맞추며 생활하고 있는데

적당히 맞춰 지내고는 있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ㅎㅎ 정도를 조절하되 외로워하지 않는 것은 노력이 필요한 일 같습니다.


7. 시간개념 : “멀리 보는 것”. 이건 거의 안될 정도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내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해본 적 없거나 대충 생각하는 척 하고 결론내린 일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렇게 대학을 여러번 그만뒀고, 시작만 하고 졸업하지 못한 학과만 여러개..

약 먹고는 미래에 관한 개념(?)이 생겼는데, 몇 번 시도해 보았지만 이 과정이 설명이 안됩니다ㅜ 

예전엔 과거와 현재 밖에 없었다면 지금은 “미래”라는 개념도 인지하게 되었는데,

‘인생은 길고 지금만 있는 게 아니니까, 지금 당장 하고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적당한 시기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 지금은 이것에 집중할 때야.’

이런 식의 자기대화가 가능해졌다고 밖에 설명이 안되네요 ㅎㅎ;


8. 금전관리 : 시간개념이 생기고 나니 금전적으로도 내 행동을 장기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단기로 해결하며 살아내는 게 아니라, 실제로 계획을 세워 부채를 청산하거나 지출을 관리하는 것 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많은 부분이 미숙하고, 무언가 완성된 느낌 같은걸 아직도 원하지만

그런대로 적응하고 인지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ADHD 진단이 나고 사실 기분이 좋았습니다. 위로 받은 기분도 들었습니다.

내가 뭔가를 잘못한 게 아니고, 이런 상태론 어쩔 수 없었다. 식으로 생각하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은 것 같아 혼란스럽기도 했는데, 그 시기에 에이앱을 알게 되었어요.

많은 분들의 생활, 복용, 고민, 개선 후기들을 찾아 읽고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위로도 받고, 안심도 했어요.

그러다 막상 저 스스로 적응하고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니 방문이 뜸해지게 되었네요.


커뮤니티에 계신 분들께 함께 있어주어 감사하다는 말 꼭 하고 싶었고,

제 변화를 기록해둠으로써 누군가가 참고할 수 있는 하나의 사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남긴 메세지에 더 진심으로 답장해주신 분께 덕분에 하루 내내 기뻤다고 남기고 싶어 처음으로 글 남깁니다 🙂


피드백이나 궁금하신 점은 쪽지나 답글 남겨주세요.

모두 화이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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