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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적인 생활
Level 1   조회수 155
2020-08-08 20:13:09

오늘 하루는 정말 절망적인 하루였다. 어제 예기치 못한 어머니의 전화 시도로 갑자기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마냥 안좋아졌고, 집에 돌아 온 저녁 때부터 오늘 오전까지 극단의 우울과 분노에 시달려야 했다. 어쨌든, 오늘 오후에 이런저런 생각을 가다듬고 나니 좀 나아졌다.

한번씩 정신적으로 힘든 일을 겪으면 이렇게 긴 루프에 빠져서 몸과 마음이 너무 상처받고 괴롭다. 그래서 아직 힘들지만, 과거의 나를 생각해보면 지금의 내 모습이 훨씬 낫다는 데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유년기 매우 어린시절 부터 불안에 하루하루 시달려왔다. 정확히는 갓난아기 때부터 제대로 잠을 못 이루고 깨어있어 부모를 괴롭게 했다고 하며, 청소년이 되어서는 걷잡을 수 없이 더욱 심해졌다. 중고등학교 내내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함은 물론이고, 난독증으로 책 마저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수업시간 내내 공상만 하며 학창시절을 모두 허비했고, 만족스럽지 못한 입시 성적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20살의 나이에 도망치듯 군 입대를 선택했다.

군 생활을 포함해서 20대 후반의 시기까지 내 삶에 큰 변화는 없었다. 기적적으로 목숨을 저버리지 않고 군 복무를 마친 이후에는, 수년간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만을 전전할 뿐이었다. 이 동안 모은 돈마저 담배와 술로 다 허비했고, 그 사이 어렵사리 대학에 진학했지만 역시 성적 관리와 인간관계의 어려움으로 고통의 나날은 지속되었다.


그러다 정말 우연찮은 기회로 ADHD 질환에 대해 알게되었다. 혹시 내가 ADHD를 갖고 있는건 아닐까 생각되어 지역의 신경정신과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고, 약물치료는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30년 가까이 허송세월로 보낸 내 인생이 가엾을 정도로 치료 이후 내 모습은 믿을 수 없이 정상인에 가깝게 바뀌어갔고, 치료를 시작한 바로 그 해에 어느 누구나 부러워할 직장에 공채 사원으로 입사하여 지금까지 사회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물론, 첫 복용을 시작한 이래로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새로 발견한 숙제들을 해결하는데 다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일 먼저 나의 경우 성인기에 ADHD 질환을 발견하였고, 그렇기에 평생동안 안고 가야 할 '장애'가 되었다는 점을 인정하는게 너무 힘들었다. 나의 뇌가 정상인의 뇌처럼 동작하는 시간은 하루 중에 약효가 지속되는 반나절 뿐만에 불과하다. 약효가 끝나면서 도파민 수치가 떨어지는 시점에 찾아오는 불안과 이따금씩 맞닥뜨려야 하고, 기저질환 중 하나인 하지불안증후군(RLS)은 매일 밤 찾아와 깊은 잠을 못 이루게 괴롭히곤 한다. 꼬박꼬박 규칙적인 생활을 잠깐이라도 놓치면, 그 다음 몇 주간은 생활 패턴을 회복하는데 큰 에너지를 다시 소모해야 한다. 그럼에도 치료를 시작한 이전에 비하면 나 자신은 비교가 불가능할만큼 나아졌다. 떠안고 가야 하는 숙제들 또한 갑자기 생겨난게 아니고, 약물치료를 통해 개선된 내가 원래 있던 문제를 발견한 것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Reddit의 ADHD 서브레딧에 있는 글들을 살펴보며 다시금 깨달은 건 바로 규칙적인 생활 루틴을 지키는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 ADHD를 다스리는데 있어서 많은 약물과 인지행동치료가 수반될 수 있겠지만, 어떠한 방법이던 일상생활 속 루틴을 유지하는게 기본이 되어야 그 효과 또한 빠르게 나타나고 오래간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가끔은 새벽녘에 무언가에 몰두해서 잠을 미루고 싶기도 하고, 퇴근 후에 지친 몸 그대로 침대에 뛰어들고픈 생각도 든다. 쉽지는 않지만, 억지로라도 이러한 충동을 마음 속에서 억누르고자 더욱 노력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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