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SNS에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이 네 미래라는 말들이 떠다녔다. 당연히 우스갯소리. 하지만 지난 몇년간 내가 상상하는 나의 미래와 그 당시의 내겐 암담하게도 현실이었다. ADHD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때 내게 찾아왔던 우울증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다. 인간은 아픔을 쉽게 망각한다고 하는데 어째서인지 그때의 내 모습을 떠올리자면 몸서리가 처진다. 그때의 잔상들이 싫은걸까 느낌이 싫은걸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명확한 건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 이후로 3년간 내 인생의 목표는 다시는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 것이었다. 누구보다 반짝거리는 나였는데 목표가 고작, 이라는 말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고 비참했다. 하지만 살고싶은 나의 최선이었다.
하루에 해야할 일이 열가지라고 쳤을 때, 열가지를 모두 완수하던 단 한 가지도 하지 못하던 내가 바라보는 내 모습과 기분과 안정적인 보상 같은 것들은 하나도 플러스나 마이너스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3년정도가 지났나보다. 나는그냥 그렇게 살아있을 뿐이었다. 난 물욕이 없다. 원래가 그렇기도 하지만 이 3,4년의 시간동안 난 하고싶은 것과 갖고싶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열망이 없었다고 해야 맞겠다.
인간에게 어떠한 욕구가 있지 않다는 건 스스로 생각하기에 죽은거나 다름없다 생각했다. 스스로가 이상했고 걱정스러웠지만 물건이란 물건일 뿐이어서 그 무엇도 나를 채워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또 사람이란 타인일 뿐이어서 아무리 가까워진다 한들 온전히 하나가 되진 못하니 이 역시도 뻔한 결과라 여겼다. 3년을 그렇게 지내다보니 시간이 흘러버렸다. 난 3년이 흘렀다고 느끼지 못한다 지금도. 우울증을 앓았던 내가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딛지 못했을 뿐이었고 용기를 내서 방 밖에 나왔는데 삼년이란 시간이 지나버린 기분. 정확히 이런 기분이었는데 세상에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다니. 기가 막혀서 나는 지나가버린 삼년에 무엇을 했나 종이에 적어봤다. 비슷한 일들이 반복이 되고 포기하고 시작하고 포기하고 매듭은 하나도 없었다. 난 또다시 자책을 했을까 하지만 이미 소용 없는 일이었다.
난 3년간 만난 사람들과 내가 행했던 비슷하게 반복된 일들을 또 적어나갔다. 닮고싶은 사람과 싫었던 사람들과 스스로 시작하고 포기한 것들이 연결고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목표가 생겼다. 내가 내게 주고싶은 선물들이 생겼다. 갖고싶은 것들과 필요한 것들과 내가 갖춰야 할 능력같은 것들이 보였다. 이 모든 것들은 아무도 내게 요구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3,4년을 지나는동안 부모님은 내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분들이 되셨다. 부담으로 시작된 우울증이라는 걸 아시곤 내려놓으셨는지 충격을 받으신건지, 하여간. 난 그조차 마음이 아파 나를 갉아먹었으니 서로 눈치만 보는 시간들이었다. 아, 모르겠다. 시간을 돌릴 수도 없고 자책만 할 수 없으니 나는 나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정한, 남들은 의아해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 하고, 궁금해하기도 하지만 나는 스스로 갖고싶은, 내게 주고싶은 일들을 하나씩 실천하기 시작했다. 난 모든 환경을 갖췄다. 하지만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우울증이 시작될 때 느껴지는 경미한 우울감은 아니었다. 몇시간씩 낮잠을 자고 한 문장을 몇번을 읽고, 사이클, 러닝, 웨이트같은 운동을 하루에 몇시간을 하고 밤새 술을 마시고 종종 몸이 다쳐도 기억을 하지 못하고, 몸에게 쉼을 주지 않고 결국 '집중과 쉼의 경계를 모르겠다.' 는 문장으로 정리되었을 때, ADHD병원을 찾았다. 치료 9개월차에 접어드는 지금의 나는 여전히 내가 갖고싶은 것들과 주고싶은 것들을 위해 산다. 해야할 일 열가지 중 하나를 했어도, 난 해 낸 거라는 의사의 말을 되새기며 힘있게 산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이 네 미래라는 우스갯소리는 내게도 이제 우스갯소리로 돌아올까? 사실 확인사살 받았던 글이라 쉽진 않겠지만 이제 더이상 내 미래가 어두컴컴하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해졌다. 얼마의 시간이 걸리던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괜찮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때 내가 전만큼 또는 전보다 얼마나 더 반짝이게 될 지 기대되는 것도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이다. 삶에서 기대할 것들이 있다는 것. 이만큼 사람을 살게 하는 게 또 있을까, 우울증 치료를 할 때 의사는 내게 힘들어도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하셨었는데 이젠 이렇게 내 삶의 의미를 조금은 찾아가는 것 같다. 희망과 기대가 있는 한 실패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고싶다. 사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또 우리에겐 희망이 있는 것이라고도 믿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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