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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받기를 바라진 않지만 오해를 받고 싶지는 않다.
Level 3   조회수 183
2024-02-29 03:42:48

작년 8월쯤 진단을 받은 곧 마흔을 앞두고 있는 직장인입니다. 

30년 넘게 살면서 저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상태를 알게 되면서 하루하루가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한 게 알고보니 나만 그런 거였다는 걸 하나씩 깨달을 때마다 충격의 연속이었고요. 

그동안 게으르다, 일처리가 허술하다, 말귀를 못 알아 듣는다, 눈치가 없다, 배려가 없다, 인성이 못됐다, 

수도 없이 비난을 들으면서 정말로 내가 나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자책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제가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되었는지 자신을 객관화하면서 보기 시작했네요. 

이제와서 저의 행동이, 저의 본성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ADHD특성의 일부라는 걸 알기 시작했구요.

하지만 이걸 주변에서는 알 리가 없지요. 

그들에게 ADHD란 그저 교실에서 날뛰는 철부지 초등학생 남자아이의 특성 정도일 뿐이니까요.

그래서 제대로 된 이해를 할 생각 자체도 없이 무조건적인 비난을 하네요. 

더욱이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심한 사람일 경우엔 약을 복용하는 것으로도 조롱을 합니다. 

실수라도 하게 되면 '왜, 오늘은 약 안 먹었냐?'라는 식이죠. (쓰면서도 다시 상처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땐 가끔 에이앱에 들어옵니다. 

퇴근길에 터덜터덜.. 가뜩이나 느림보 걸음인데 더 느릿느릿 걸으면서 이런저런 글을 읽어요. 

모두가 삶의 방식은 천차만별이겠지만, 그래도 나랑 같은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은데.. 

다들 어디에 말도 못 하고 속으로 자책하고 비난받고 억울해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참 슬프고 씁쓸합니다.


처음 진단을 받은 뒤엔 주변에 엄청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이것도 ADHD를 가진 사람들의 증상 중 하나라고들 하더군요. 

그러나 몇몇 사람들에게 자의 또는 타의로 밝힌 후에 깨달았습니다. 이건 함부로 밝히면 안 되는 것이라는 걸요. 

처음엔 이 사실을 알면 내 상황을 이해해줄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 그런 식으로 다들 하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저의 반복된 실수에 대해 핑곗거리와 조롱거리밖에 안 되더라구요. 

아무리 인품이 좋은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직장 상사와 동료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 가족들 중에서도 정말로 이해해줄 수 있는 극소수에게만 알렸습니다. 

친구들 중에는 같은 증상으로 저에게 병원을 가보길 권해준 친구와 병원을 추천해준 친구, 

그리고 정말로 가까운 믿을만한 극소수의 친구들에게만 알렸구요. 

이야기를 했을 때의 반응은..  사실 어머니는 미안해 하시더군요. 

어릴 때도 네가 특이하고 남들과는 좀 다르구나 생각은 했지만 이런건 줄은 몰랐다고, 몰라서 미안하다구요. 

그 뒤로 ADHD라고만 하면 스마트폰도 잘 못 다루는 분이 여기저기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서 보시기도 하네요.

저와 같은 증상인 친구는 제가 병원에 다녀왔다는 말을 듣고 기뻐해줬습니다. 잘 버텨보자구요.  

저에게 병원을 추천해준 다른 친구는 아직도 종종 안부를 묻습니다. 좀 괜찮은지, 일은 할만한지 하구요. 

사실 본인도 우울증 앓고 있어서 힘들텐데도 병원은 안 빠뜨리고 가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이렇게 물어봐주네요. 

그래도 조금이나마 이해해줄 사람들이 있어서 감사하고 살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회사에서 강제로 알려지고 나서 너무 크게 데이고 상처를 받았습니다. 

지금도 현재 진행형에 스트레스로 우울증세와 수면장애가 와서 약효를 보지 못하고 있구요.

의사선생님께 사실 너무 불안해서 일주일 중 5일은 누워서 잠을 못 자고 책상에서 새우잠을 잔다고 했더니

콘서타 자체가 수면에 영향을 크게 받는 약물이라 반드시 잠을 푹 자야만 한다고 하셨습니다. 

6개월이나 복용해도 낮에 근무 중 졸지 않고 제정신으로 깨어있는 것 이외에 효과가 없던 이유를 이제 알았네요.

이를 알 리가 없는 직장 상사에게는 너는 약을 먹는다더니 대체 효과는 있냐, 도대체 나아지는 게 뭐냐, 

너때문에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다, 너만 잘 하면 회사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을 듣습니다. 


예. 오해받는 게 지겨워요. 너무 힘들어요. 

귓구멍 있는데도 말소리가 뇌로 안 들어가는 걸 어떡합니까. 근데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소릴 듣지요. 

정신이 한곳에 쏠리면 주변의 다른 감각이 다 차단되어버립니다. 근데 사람을 무시한다 소릴 듣지요. 

어떻게든 일을 끝내려고 아득바득 움직이지만 생각보다 오래 걸립니다. 근데 게으르단 소리밖에 못 듣지요. 

아무리 검토하고 확인해도 뭔가 하나씩 빠지고 기억이 안 납니다. 근데 책임감이 없다는 소리만 듣지요. 

당신들에겐 숨쉬듯이 당연하게 되는 일들이, 이렇게나 뼈를 깎는 고통으로 쥐어짜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지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영원히 맞닿지 않을 평행선같은 상황입니다. 


다들 어떻게들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는지, 아니 버텨내고 계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억울하기도 하구요. 

오해받는 일상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 오늘도 눈물 닦고 다시 힘을 내야겠네요. 

언젠가는 이해받기를 바라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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