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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회상
Level 8   조회수 172
2021-03-15 23:24:07

20대 극초반과 극 후반, 총 2년가량은 제법 행복했다. 


나머지는 불에 타 죽을 때 이럴까 싶은 고통.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시간이었다. 15살 무렵부터 시작된 외로움이 살을 에는 듯했고 (사회적 고립이 사람에게 거의 물리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고통을 줄 수 있나?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렇다.), 유학은 거친 길을 내달리는 25톤 트럭 뒤에 밧줄 하나로 매여서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금세 살갗이 파이고, 피가 터지고, 뼈가 드러난다. 왜 이런 고통이 나를 죽이지 못하는지 궁금했었다. 


나는 어딘가에 내리쳐지는 잔혹한 채찍 같았고, 그로 인해 내 피부는 온통 벌건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채찍질에 맞은 사람도 있었다. 내 의도는 아니었지만 다치게 됐고, 견디다 못해 나를 떠났다.) 


이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지 생각에 생각을 반복했다. 생각이라는 것을 지독하게도 앓았더랬다. 벌겋게 드러난 속살로, 발버둥을 치고 또 쳤다. 결과는 고통뿐이었다. 


기숙사 앞 마트라도 가려고 몸을 일으키면 목 위로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뇌가 내 주먹 두 개 만한, 물먹은 휴지뭉치가 된 것 같다. 숨을 들이마시는 것이 5킬로짜리 아령을 들어 올리는 것과 같은 힘이 든다. 이미 죽어있는 것도 같은데, 왜 이리 괴로우며, 어떻게 여전히 살아있는 걸까? 


     "비가 올 때는, 그리고 우산도 그 비슷한 뭣도 없을 때에는, 비를 맞는 수밖에 없다." 


그때 한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눈 뜰 새 없이 퍼붓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뼛속까지 빗물에 찌든 채 아직 끊어지지 않은 숨을 망연히 바라보며 지냈다.






***


작년 10월 경에 쓰고 방금 약간 수정한, 약 10년 가량의 세월을 고통이라는 테마로 되짚어본 글입니다. 미완성에 가깝지만 그럴싸한 마무리가 떠오르지 않아 부득이 이대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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