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타 36mg>처방을 받고 복용한 지도 2개월 차에 들어섰다. 코로나 백신 접종 후유증이 약하지만 오래가는 바람에 콘서타 복용 시 부작용이 크게 나타나서, 2차례 1주일 가량 휴약하기도 했다. 그래도 습관적으로 아침에 <콘서타>, 잠들기 전 <우울증 약(에스시탈로프람15 mg)>을 복용하면서 알게 모르게 내가 가지고 있던 불안이 많이 옅어진 듯 하다.
내 불안은 꽤 오래 전부터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부터는 항상 뒤쳐지는 것 같았고, 실제로도 뒤떨어져 나갔다.(공부/외모/성격...)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점점 더 도전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적인 나이가 점차 증가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잉여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상당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내 나이부터 떠오르고, 달라진 것 없이 마주한 보잘 것 없는 내일이 현실이 되어버렸을 때, 너무나 공포스러웠다. 그러면서 바보같이 똑같은 오늘을 보냈다. 내가 머무는 하루하루가 점점 더 짧아져갔다. 내일이 너무 빨리 다가오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올해 8월 미루던 정신과의원에 방문했고, 약을 처방받고 복용하면서, 내가 느꼈던 불안들이 조금 얌전해진 듯하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내가 어떤 일을 할 지 결정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또 다시 게임이나, 스마트폰, 인터넷에 중독되는 나날이 늘어간다는 것이었다. <콘서타 36mg>의 효력도 아직 있는 상태이면서 부작용이 많이 줄어 익숙해져 갔지만, 내 습관이 고쳐지지 않는 듯 했다. 하고 싶은 일을 떠올려도, 현재의 나와, 그것을 이룬 나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아득하게 느껴졌다. 사실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게 된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없는 사람이야"라고 스스로 규정 짓는 나쁜 습관이 잘 떨쳐지지 않았다.
지난 번 의사 선생님께서 의기소침해있는 내 모습에 단호히 대하셨을 때가 기억이 나서 인지, 매주 약 처방을 받으러 진료를 받을 때마다 내 시선은 허공을 향했고, 간단한 질문에 대답을 끝내면 시선을 밑으로 둔 채, 약 처방만 받고 나갈 준비를 했다. 약 복용으로 도움까지 받고 있는데 변하지 않는 내 모습을 들키는 게 너무 부끄러웠다. 인간은 자신의 시선에서만 보이지 않는다면, 상대방도 내가 보이지 않을 것이란 착각을 한다는 데, 내가 그 꼴이었다. 그렇게 나만 모른 척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3주 전부터, <콘서타 36mg> 부작용이 많이 줄어든 시점부터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 한 주간 생활을 물어보셨다. 우선은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고, 지속하려고 한다는 말로 얼버무렸지만, 그 다음 주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어오셨다.
의사 선생님 "무얼 하고 싶어요? 하고 싶은 게 뭐예요?" "...... 하고 싶은 것이 있다기 보다 당장 취업 준비가 급한 것 같습니다."
의사 선생님 "그럼 취업 준비를 해야겠네요? 당장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음 자격증을 취득하는 게 먼저인 것 같습니다."
의사 선생님 "어떤 자격증이요?" "...... 잘 모르겠습니다.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의사 선생님 "일단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세요. 약을 먹고 좋아지고 있으니까 전보다는 훨씬 성과가 좋을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물어오시고, 내가 뭘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 지 힌트를 주려고 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다음 주까지 나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에 무색하게 별다른 행동을 실천하지 않았다.
두려웠던 것 같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또 포기 하지 않을까?......" 그리곤 게임이나 스마트폰에 몰입했고, 내 걱정과 불안을 애써 모른 척 했다. 그것이 가장 손쉬운 '불안 퇴치법'이었다. 하지만 잠자리에 누워 고요함을 맞이할 때, 해소하지 못한 불안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것도 덩치가 커져서 말이다. "이렇게 또 내일이 오겠지? 나 왜 사는거지?" 하지만 또 다시 마주한 내일, 나는 똑같이 잉여인간이었다. 쓸모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날 너무 힘들게 했다.
그 다음 코로나 백신 후유증으로 1주간 휴약을 하고 2주 만에 정신과 의원에 방문했다.
의사 선생님 "2주 만에 오셨네요." "(혼날 것 같았다....) 네... 백신 후유증이 조금 길게 가서 1주 정도 휴약했습니다."
의사 선생님 "네, 그러실 수 있어요. 어떠셨어요? 집중력이라던가 기분은" "네, 조금 적응되어가는 것 같긴 한데, 아직까지 기분이 나아지는 효력은 느끼고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 "뭐 하면서 보내셨어요?" "최근 새벽에 단기 아르바이트 하면서 같은 시간에 일어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네 일단, 같은 시간에 일어나야 하니까,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이쯤에서 간단한 진료가 끝나고, 약 처방만 받고 가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질문을 바로 던지셨다.)
의사 선생님 "취업 준비 활동 뭐 하신 거 있으세요?" "사실, 구체적으로 한 건 없고.... 책 읽고, 따라 쓰기도 하고, 글도 끄적여 보고, 운동하고 일단 할 수 있는 거부터 하고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 "그래요.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게 중요해요. 근데 뭘 하는 게 잘 안되세요? 시작하는 게 안되세요?" "......음, 사실 취업 준비가 급한데, 두렵습니다. 취업할 수 있을 지 모르겠고 일을 잘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손쉽게 성과(쾌감)를 느끼는 것에 몰두하는 것 같습니다."
막상 물어오시니, 민망해하면서도 속마음을 터놓게 되었다. 도움을 받고 싶었나보다..... 도움을 받아도 되는 존재라고 허락을 받은 기분이랄까?
의사 선생님 "약의 효력은 분명히 있어요. 그리고 이전까지 꽤 많은 성취를 해오셨으니까, 두렵더라도 다시 도전하면 좋은 성과 있을 거예요. 이건 제가 정말로 장담합니다!" "......(끄덕)"
의사 선생님 "약 효력은 있지만, 약을 먹는다고 바로 좋아지는 게 아니예요. 이제 그 습관을 만들어 가는 단계니까...... 실패하더라도 시도하세요. 지금 너무 자신감이 없고, 의기소침해있어요." "......네 알겠습니다."
의사 선생님 "지금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필요한 자격증 공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의사 선생님 "그럼 책을 사세요. 아님 우선 책을 살펴보고 아 '이거 내가 해도 되겠다. 내가 할 게 아닌데?' 판단하세요.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겁니다." "(끄덕)"
의사 선생님 "시도하셔야 해요. 약을 먹기만 하고, 고쳐지지 않으면 안돼요." "죄송합니다...."
의사 선생님 "잘 안되는 게 어쩌면 당연해요. 습관을 바꿔서 새로 만들어 가야하니까.... 계획을 세워보세요. 못 지키더라도 하시면 도움 될 겁니다. 그럼 다음 주에 어떻게 보내셨는지 이야기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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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1차례 진료 내용이 더 있고, 조금 더 이야기 나눈 부분이 있는데, 너무 길어질까 조금 각색(?)해서 의사 선생님께서 해주신 메세지만 적어봤습니다. (개인적인 제 이야기를 뺐습니다.)
그리고 의원을 나선 뒤, 곧바로 근처 서점에 들러 책을 보러 갔고, 집 근처 서점에도 들러 자격증 수험서를 뒤적여봤습니다. 그렇게 해보니 제가 어떤 공부를 , 어느 정도 기간에, 언제까지 공부를 하면 좋을지 고민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이 공부가 내게 필요한지, 시간/돈 투자 대비 효용이 어느 정도인지, 조금 더 구체적인 고민을 해봤습니다. 물론 갑자기 불타오르진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잡은 것 같았습니다. 아직도 고민이 많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 직장 경험은 없고, 사실 하고 싶은 분야가 있는데, 진입장벽 높기도 하면서 처우 현실이 좋지 않다는 정보를 접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불안을 잠재우려고... 또 게임을 해버렸습니다.....(정말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언급하진 않았지만, 제가 자신감이 없고, 의기소침해있으니 우울증 약을 조금 더 올려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진료를 봐주시면서, 부족한 시간에도 조금 이나마 조언을 해주시려는 의사 선생님의 메세지를 공유해보고자 글을 남겨봅니다. 제 문제는 결국 제가 해결할 일이니까요...... 생각의 방향을 조금 바꾸도록 스스로 단호해져야겠습니다.
"불완전할 수 있는 용기(courage to be Imperfect)" '과거의 경험이 우리를 결정짓는다'는 프로이트(Sigmund Freud) 심리학 대신, '불완전한 것을 받아들이고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아들러 심리학(Alfred Adler)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부디 우리의 ADHD가 스스로의 한계를 정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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