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에 의하면 난 대학 졸업 후 서울로 가면서 부터 애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볼 땐, 대학 졸업까지는 답이 정해져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만 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대학 까지는 내가 돈을 주고 다니는 곳이 아닌가?
특유의 ADHD 부산스러움으로 인해 나의 이미지는 항상 밝고 활기찬 아이였고, 뭘 해도 이해를 못하고 덜렁댄다는 얘길 많이 들으니 더 노력을 할 수 밖에 없었기에, 일단 열심히 하는 친구였다.
근데 취업을 하고나니 내가 돈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아닌가? 그들이 나를 내칠 수 있다는 옵션이 생겼다.
회사의 목표에 맞게, 아주 성실히, 열심히했다. 동기들에 비래 머리가 떨어지는 것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러려니 다녔다. 근데 내 눈에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 실수가, 남들 눈에는 그렇게 잘 보이는 거다. 그렇게 나의 과장된 행동에 놀림까지 당하며 첫 회사가 끝이 났다.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우울증에 걸렸던 것 같다. 그땐 어려서 병원을 갈 생각도 못하고 1년을 집에만 있었다. 취업을 해야한다는 것만 알지, 문제점 분석도 못하고 어디에 무슨일을 해야하는 지도 모르겠었다. 그 산업도 무섭고, 그 일도 다시 하려니 무서웠기 때문이다.
ADHD의 미친 실행력으로 갑자기 취업박람회에 가자마자 다른 산업, 다른 직무에 합격을 했다. 곧장 갖고 있던 전세집을 버리고 회사 근처의 월세집으로 이사를 갔다. 월세집이 예뻐보였던 충동적 선택이었다. 또 엄청 열심히 했다. 근데 너무 실수가 많다는 거다. 나는 5번은 보고 주는데, 너무 덜렁댄다고 했다. 기획안이 지금 5개씩 올라와야 하는데 없다는거다. 기획안 어떻게 쓰는건데.
대인기피가 생겼다. 당시 난 영업을 했는데, 사람을 보기가 무서워졌다. 다행인 건 이때부터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1년이 지났다. ADHD의 최대 단점은 충동적이라 자기 파괴적인 결정을 할 떄가 많다는거다.
경력이 아까워 첫 회사의 산업의 직무로 다시 취업을 했다. 당연히 또 이사 갔다. 주임님으로 들어갔는데, 주임님 아까 그거 기억 못하시냐 했다. 점점 쭈그러 들었다. 상태가 심해졌다. 회사 문 앞에서 들어가질 못하겠는 거다. 그대로 집에 돌아와서 울다가 근처 병원을 찾아서 1년간 치료를 받았다.
그때는 그래도 일을 쉬면 안된단 생각은 했는지, 아르바이트를 미친듯이 했다. 아르바이트는 2주를 넘기지 못했다. 상담 선생님은 내가 약을 꼬박꼬박 먹는 것외에는 나아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이런 환자는 본인도 힘들다고.
이제 병원도 안가게 됬다.
다행인 건 아르바이트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헤드헌터가 연락이 왔다. 집 근처 회사의 면접을 봤다. 붙었다. 3년째 매출이 감소하는거다. 안간다 했다. 연봉 올려줄 테니 오라했다. 간다했다.
그리고 반년을 회사에서 눈물을 쏟았고, 팀장은 니 눈물 값이 월급 값이니 그만 하라 했다.
또 관뒀다.
저 당시는 마음만 아픈게 아니라 몸도 아팠다. 내가 adhd 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맹목적으로 계속 도전할 수 있었을까, 정상이었다면 고향 벌써 내려갔겠지.
6개월 쉬었나, 친구가 외국계에 지원해 보라 했다. 지원했다. 붙었다. 파견계약직이었다. 2년을 다녔다. 전환이 안됬다.
다음은 꼭 정규직을 가리라. 실업급여 받으면서 꼭 정규직 가서 오래 다녀야지 했는데,
헤드헌터가 연락이 왔다. 자체계약직 1년 후 정규직 전환이라 했다. 마음이 흔들렸다. 좋은 조건 같았다. 또 쉬게 될 까 무서웠다. ahhd 적 판단을 내렸다. 간다했다. 충동적이었다. 저 내면의 나는 가지말라고 정규직 갈거라 하지않았냐 했는데, 불안했다. 또 놀게 될 까 무서워서 간다 했다.
일주일 다녀보니 영 이상하다. 참았다. 6개월 참았다. 나간다 했다. 나 또 무직이다.
이제 진짜 내가 이상한 것 같아서 검색해보니 adhd 같았다. 에이앱에 가입하고 병원에 찾아갔다. 뇌파가 0%에 스트레스 지수가 3%였다. 대부분의 테스트에서 저하가 나왔다. 우울증이 있으면 이럴 수 있다, 대신 이런분들은 약효가 좋다 했다. 진짜 약효가 좋다.
보통 사람들은 원래 이렇게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니 그래서 회사에서 너같이 밝은애 없고 너같은애 처음본다는 말을 들었구나. 다들 나에게 무슨일이 있냐했다 차분하다고.
나는 내 서울 살이가 adhd적인 버티기였다고 칭찬해주기로 했다. 가족도 친구도 서울가서 돈 모은것도 없이 전전할 바에야 고향 내려오는게 낫지 않냐 하지만, adhd적 막무가내로 나는 버텼다. 모든 회사에서 좋게 말하면 예쁨, 나쁘게 말하면 놀림을 받았다. 그럼에도 나는 꾸준히 경제 활동을 하려고 했다.
나는 이제 adhd 약을 36mg 까지 올렸고, 급박한 일정에 포기하지 않고 서류를 쓰러 새벽부터 일어나는 의지가 생겼다. 나도 이제 근속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나의 버팀이, 누가 뭐래도 나 스스로는 칭찬해주기로. 주변 모든이에게 내가 adhd라 이직이 많았던 것이라 하나하나 설명할 순 없지만, 그 정신없음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 이해시키고 싶지 않기에 미래의 잘 사는 나로 확인 시켜주기로 했다.
내가 adhd 가 아니었다면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었겠는가 이 상황에도 종종 즐겁게 살 수 있게 도와주었던 내 전두엽을 토닥 거려주고 싶다. 이제 일 좀 잘 해 보라고. 나 좀 살려주라고.
나와 모든 에이앱 친구 들을 응원한다. 여러분 여기에서 나의 글을 읽어주고, 여기에 여러분의 글을 쓰고 있다면 살아줘서 고맙다고. 이제 같이 잘 살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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