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HD진단을 받았을 때 느끼는 감정은 사람마다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기뻤다고 하고, 누군가는 절망했다고 말해요.
저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해 볼게요.
저는 직장은 몇번 옮겼지만 현재 마케팅 업계에서 7년차 근무 중인 30대 초반이며, 2019년 5월에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2020년 4월에 성인ADHD 진단을 받았습니다. 본래 알레르기가 있어 알레르기성 피부염, 천식, 비염 등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릴때부터 좀 남다르고 독특한 아이였다고 느낍니다. 저는 같은 나이의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그것이 늘 저의 부모님과 담임선생님의 고민거리 중 하나였어요. 그런 한편 어른들이나 나이가 더 많은 언니오빠들, 또는 더 어린 동생들하고는 오히려 잘 노는 아이였습니다. 공부를 시키면 금방금방 이해하는게 특별히 뭘 어려워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구몬이나 기탄 같은 수학 학습지나 문제집을 풀라고 하면 한시간 두시간이 걸리도록 한 페이지를 못넘겼어요. 엄마가 너무 답답해서, 혹시 푸는 법을 모르나 싶어 옆에 앉아 5+6이 뭐야? 처럼 물어보면 또 대답은 바로 11, 하고 했다며 엄마가 그럼 모르는게 아니라 그냥 이 문제들에 답을 써넣는게 싫어서 안하는 거구나 깨닫고 좀 어처구니 없었다고도 합니다.
편식도 심했고, 초등학교 입학 전 어린 나이일 때에는 밥을 입에 넣고 집안을 한참 돌아다니며 배회하면서 씹고 겨우 삼키고 와서 또 한숟갈 먹는 식이라 엄마는 답답했다고 해요. 먹는걸 저렇게 먹으니 아빠나 다른 어른들도 함께 하는 식사 자리에서는 또 얼마나 혼이 났는지 모릅니다. 중학생쯤 되어서는 내가 좋아하는걸 일단 충분히 해야 공부도 할 생각이 든다는 말을 하면서 공부에 집중 못하고 자꾸 딴짓하는 스스로의 행동에 변명을 더하기도 했어요. 나이 먹어 떠올려 보니, 그 말을 들은 저희 엄마는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요. 유치원 때와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목소리가 큰 편이고 친구들과 놀던 중 곧잘 빼액 소리를 지르곤 해서 '빽빽이'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좀더 자란 청소년기에도 친구들과 있을 때 종종 갑자기 화를 낸다거나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여서 분위기를 무안하게 만들기도 했어요.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성인이 되며 점차 사라지고 약해졌습니다. 하면 안된다는걸 배우며 자라고, 직장을 다니며 사회생활을 하면 조금 굽히는 방법도 배우게 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마우스를 쿵 내리친다거나 키보드를 탁탁탁 큰 소리나게 누른다거나 하는 행동이 튀어나와 직장 동료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스물 후반에 그냥 독립할게! 하며 집에서 나와 아는 동생과 룸메이트가 되어 자취를 시작했는데, 그 당시에도 룸메이트가 제가 한번씩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게 힘들었다고 나중에 말하더라구요. 네, 많이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경향은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직장 생활이 길어지고, 연차가 쌓이고 직급도 올라가자 업무에서도 조금씩 문제가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잘 안되고, 지루해지고, 그러니 미뤄두고, 그렇게 업무가 늘어지면 야근할 양이 도저히 아닌데도 야근을 하고. 그 상태로 업무 자체가 좀 힘든 회사를 1년 다니니 결국, 그렇게 튼튼하던 제 멘탈도 금이 가고 찌그러지덥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우울증을 생각하며 정신과를 찾았습니다. 원래 제 멘탈이 탄성이 좋은 편이었기 때문일까요? 사실 꽤 오래 묵혀진 우울증이었는데도 다행히 금방 잘 나아지더군요.
단 하나, 집중력이나 주의력이 상당히 부족하거나 업무에서의 실수나 누락이 자꾸만 발생하는 것, 안절부절 우왕좌왕하는 증상만은 나아지질 않았죠. 불안이라고 생각해서 항불안제, 신경안정제도 꽤 먹었지만 효과는 미미하고 늘 같았습니다. 상대방과 바로 앞에 마주보고 대화를 해도 상대방이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되묻고, 소음이 심한 곳에선 더욱 제대로 들리지 않아서 심히 불편했습니다. 청년기 난청을 먼저 의심해서 청력검사까지 해보고 아무 이상 없다고 나왔어요. 하지만 항우울제나 항불안제가 그런 현상을 어느정도 가라앉혀 주는 기분은 들어서, 결국 정신과에 가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생님이 성인ADHD를 의심하고, 문진과 검사를 권한 것이 그 때였어요.
결과는 ADHD가 맞았습니다. 솔직히, 기뻤습니다. 이제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저의 어떠한 부분을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게 되었고, 해결할 방법을 찾기가 더 수월해졌으니까요. 증상이 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그랬고, 우울증 치료가 충분히 마무리 되면 이쪽으로 넘어가보자 제안 받았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이제 항우울제는 빼고 지켜봐도 되겠는데요?' 라고 말씀하시던 그 날에, 바로 그럼 이제 ADHD 치료를 해보고 싶다 밝혔습니다. 개인적으로 많이 찾아보고 다른 사람들의 사례, 외국의 사례들도 뒤적이고 들어보며 ADHD에 대한 공부도 이것저것 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1년이 조금 넘도록 복약을 이어가고 있고, 신기하게도 직장에서의 퍼포먼스도 조금씩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언제나 긍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뭘 해도 업무가 안되고, 충분히 하고도 남을 것도 제대로 못하고, 밀리고, 실수하고, 빠뜨리고, 잊어버리고, 그래서 호되게 혼나기도 합니다.
머릿속 생각이 통제되지 않는다는 증상은 생각보다 더 많이 발목을 잡곤 합니다. 계속 이래야만 하나 고민하고, 그렇다면 나는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다 생각이 들기도 해요. 정말로 그렇게 좌절했던 적도 제법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성인ADHD임을 알기 때문에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어' 하고 생각하며 달래곤 합니다.
물론 그렇게만 이야기하면 성인ADHD라는 저의 특성은 그냥 변명이 되고 말겠죠. 그러던 중, 최근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에 ADHD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생각이 통제되지 않는만큼, 머릿속에는 항상 각종 생각이 혼재하는 것이 제 ADHD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대부분은 쓸 곳이 없는 잡생각이기 때문에 집중에 방해가 될 뿐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어요. 쓸수 있는 생각들은 따로 건져내어 아이디어로 적어두면 재산이 되더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것이, 제가 흥미가 동하고 재미있을 것 같다고 느껴지면, 그리고 거기에 함께 해 주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더더욱 그렇더라구요.
네, 저의 ADHD는 저의 일상과 학업이나 업무, 인간관계 등을 지금껏 꾸준히 방해해 왔지만, 서른이 된 지금 저에게 자립의 실마리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확실하게 드는 생각은 만약 제가 ADHD가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에요. ADHD라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건져낼 수 있고, 흥미가 동하면 몇배의 추진력을 내며 프로젝트를 주도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그렇게 느껴지고 있어요.
저는 성인ADHD인 저를 긍정합니다. 겉으로 말하거나 소개할 때에도 병이나 장애라고 말하지 않고, "내가 타고난 기질적 특성"이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각자 다른 특성, 개성을 가지고 있으니, 그 중 저는 ADHD라는 특성을 가졌을 뿐이라고요. 일상에 불편하고 지장을 주기 때문에 약을 먹고 있지만, 약을 먹으면서 그 ADHD라는 특성의 단점을 줄이고 장점을 올려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처음부터 찾아간 병원과 의사도 좋았고, 주변에서 이해하고 도와주는 사람들도 많은, 운이 좋은 케이스이기에 긍정할 수 있는 걸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특성을 굳이 버리거나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어차피 따라올거라면 손잡고 같이 가자, 내가 너를 잘 써먹어주겠다 생각했어요.
다가오는 2022년에는 제가 긍정하는 이 ADHD라는 특성을 좀 더 잘 컨트롤하면서, 인생에 걸친 무언가의 성과를 내는 것을 목표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