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같은 시간이 있었다. 다 부숴버리고 싶다. 망가뜨리고 싶다. 나로 인해 불행해지길 바라며 온갖 상처주는 말을 쏟아내고 싶다. 관계를 파탄내고싶다. 충동적으로 받은 대출은 아무 영양가 없는 유흥과 무계획으로 전부 탕진했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이성의 끈을 붙잡아 세상을 향한 분노를 내게로 돌려놓기에 급급했다. 분노. 허망. 억울함. 불안. 내가 이런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에 억울했고, 그리 노력하며 마음 다잡아오던 시간이 허망하기만 했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내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몇주간 계속되었던 분노를 뒤로하고 오늘 하루 편안함으로 일과를 마무리하고 있자니 이건 단 하루 고요뿐인 폭풍의 눈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렴 어때.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평온, 나는 이 순간을 누릴 자격이 있는걸. 설령 오늘의 따스한 햇빛과 산들바람이 폭풍의 눈 속 찰나일지라도 오늘을 기억하며 비바람이 걷히길 기다릴테다. 내게 흐린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