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길고 우울합니다 강박 사고의 내용을 서술해서 무섭고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하 -하다체로 서술하겠습니다
나는 고3 때부터 강박 사고에 시달렸다 일상에서든 공부 중이든 비슷한 형체나 단어를 보거나 듣는 순간, 혹은 공상을 하는 순간, 혹은 그저 평범한 일상 속 어느 순간에 강박 사고가 불쑥 떠오르곤 했다
그것은 보통 귀신 등의 무서운 형상이나 이름, 크고 작았던 사건사고 등의 이름, 귀신 형상을 하고 있는 가족이나 지인들, 돌아가신 친지 어르신들의 모습이 주가 되었다 이렇게 떠오른 무서운 것들을 가리고자 억지로 즐거운 생각을 하는 등, 사고의 전환을 꾀해도 그 순간뿐이고 금방 원래의 공포스러운 형상이 다시 떠올랐다
무시하고 하던 일을 해도 됐겠지만, 어째선지 이 생각을 당장 치우지 않으면 나나 주변인들에게 안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이런 불길한 예감엔 과학적인 근거가 전혀 없으며 그저 내가 지금 불안해져서 그럴 뿐, 단순한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려 해봤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이렇듯 덮어도 계속 불쑥 튀어오르는 불쾌한 생각을 억지로 누르는 걸 반복하니, 뜻대로 잘 되지 않아서 그런가? 금방 머리가 아파오곤 했다 한편 이 짓거릴 반복할 때마다 이딴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어이없고, 내 할 일을 방해받으니 짜증나고, 괜한 사람을 귀신처럼 떠올려버리니 죄책감도 들고, 이런 복잡한 마음에 욱하거나 눈물이 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새로운 시험 준비에 앞서, 고3 때부터 고민했던 정신과에 내원했다 강박 사고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도 컸고, 전부터 ADHD를 의심했기에 맞는지 아닌지 확인해보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CAT 검사를 받았고 유독 더웠던 올해 여름, ADHD 진단을 받았다 검사 결과지를 보시고 내 증상을 들으신 의사 선생님께선, 심하진 않으나 약이 필요한 정도의 ADHD라고 하셨다
이 진단을 받기에 앞서, 나는 2년 전쯤 풀배터리 검사와 ATA 검사를 받았다 이때 수행한 ATA 검사에선 주의집중력이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나왔다 그래서 고3 때부터 줄곧 강박 사고에 시달렸으니, ADHD가 아니라면 강박 사고와 내 천성이 그릇된 것이 낮은 집중력을 유발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태 그렇게만 여기다가 ADHD 판정을 받으니 뭔가 기뻤다 오롯이 내가 잘못됐기 때문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으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약을 계속 먹는다해도 좋았다, 그냥 증상이 나아지기만 하면 아무래도 좋았다
기쁜데, 그렇다고 또 마냥 기쁘기만 하진 않았다 고3 때 그리 힘들어서 방황하면서도 진작에 병원에 가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때 갔어도 검사 결과는 비슷할 것 같은데, 괜히 몇 년이나 더 허송세월을 보내고 나서야 병원에 간 것이 몹시 후회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약을 받아먹으니 뭔가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뭔가 세상이 뚜렷해진 느낌이었다 콘서타를 증량하는 도중에 흉통이 찾아와서 인데놀을 같이 먹게 됐지만, 증량할수록 콘서타의 효과도 좋아져서 36mg까지 늘리게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콘서타는 강박 사고까지 제어해주진 못했다 결국 상담 끝에 플루옥세틴을 처방받았다 이 약은 양을 차츰 늘리다가 60mg을 먹게 되었다
처음 플루옥세틴을 60mg 먹은 날은 머릿속이 완전히 비어있는 느낌이었다 머릿속이 고요한 것이 어색했다 항상 내 머릿속엔 판타지 소설에서나 볼 법한 내용의 공상과 좋아하는 노래의 mp3 파일이 가득했는데 그날만큼은 이것들이 모두 사라진 것 같았다 이렇게 지금 머릿속이 텅 비었단 걸 의식하는 순간, 곧 생각들이 무섭게 들이닥치긴 했으나 그마저도 평소보다 덜하다고 좋아했다 물론 이 다음날부턴 이토록 극적인 효과까진 못 봤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운 효과가 유지됐다
이렇게 약효를 톡톡히 보다가 갑자기 속이 안 좋아져서 한동안 단약했다 그러다 속이 조금 나아진 최근에 다시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용량은 단약 이전과 동일하게 콘서타 36mg, 플루옥세틴 60mg이다
하지만 복약을 다시 시작하니, 단약했을 때보다 무기력감과 우울감이 훨씬 더 강하게 든다
평소에 즐겨하던 게임도 재미없어서 금방 끄게 되고, 전에 한참 즐겁게 하던 게임도 금방 질려서 삭제하기 일쑤다 인터넷에서 방송을 봐도 재미있단 생각은 영 들지 않는다 어렵고 힘든데 할 건 많아서 재미없는 공부에는 더더욱 손이 가질 않으니, 결국 책은 커녕 컴퓨터도 건드리지 않게 된다
밖에 나가려 해봐도 특별한 일이 있는 게 아닌 이상 곧 귀찮아서 그만두게 되니, 약을 먹고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늘어져만 있는 내 모습이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어떻게 몸을 일으켜서 조금씩 걸어봐도 한번 주저앉으면 몸과 정신에서 힘이 빠져나가버리는 것만 같다 도대체 내가 지금 뭘 해야 실행력과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는다 막연하게 밀려드는 우울감 속에서 넘어지지 않고 우뚝 서있고 싶지만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이렇게 콘서타와 플루옥세틴을 다시 복용하면서 이상하리만치 강하게 느껴지는 우울과 무기력함 속에서, 내가 ADHD가 아닌데 우울과 불안, 강박 사고로 인한 집중력 저하를 ADHD라고 느낀 것인지 고민됐다 하지만 이렇다고 하기엔 다른 환우분들이 말씀해주신 증상들과 내 평소 증상들이 너무나 비슷했다 그게 다 우울과 불안에서 비롯된 거라면 난 언제부터 그런 감정 속에서 살아온 건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한참 혼자서 고민하다가 풀배터리 검사지를 오랜만에 꺼내봤다 거기엔 별다른 이상은 없고, 그냥 내가 심리적 불안을 인지 기능 저하로 호소하는 것 같다고 적혀있었다 이것도 전문가분께서 해석하신 건데 그 문구를 보니 이게 맞는 건가?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어쩌면, 한동안 식도염 때문에 약을 먹지 않다가 갑자기 다시 먹기 시작하면서 부작용이 몰려오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게 문제라면 몸이 익숙해진다면 다시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다 약이 아직 꽤 남아있으니 더 먹어보면서 상황을 지켜봐야겠다 부디 이쪽이길 바라며, 오늘 글은 이만 줄여야겠다
길고 횡설수설한 얘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