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한지 9개월이 지났다. 숨이 막혀 도망치듯 나왔고, 그곳만 빠져나온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트리거가 되는 대상을 치우니 우울감은 많이 좋아졌지만, 불안감이라는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불투명한 나의 미래와 수많은 자책들, 또 번복할 것 같은 실수와 오판에 대한 걱정들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부정적인 감정에 좀 먹히며 나는 또다시 회피를 선택했다. 스스로를 방안에 가두고, 할 일을 미루고, 멍하니 스크롤을 내리며 공허한 나의 일상을 남의 이야기로 가득 채웠다. 무언가 결핍되는 느낌이 싫어 물건을 사들이고, 끊임없이 음식을 위장에 꾸겨 넣고, 그 포만감에 잠을 청했다. 그러다 가끔 나 스스로를 돌아봤다. 혐오스러웠다.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눈을 돌려버렸다. 도망치는 게 제일 쉬웠으니까. 꽤 오래 이렇게 살았고, 부질없는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시간들이 의미 없었진 않았다. 그동안 일기를 꾸준히 썼다. 욕과 한탄, 자기혐오와 같은 글로 감정을 쏟아냈다. 몇 달을 쏟아내니 기분이 약간 가벼워졌다. 마음에 아주 작은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이때 타인의 눈치를 보던 시선을 나에게로 옮기고,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 후 일기에는 나의 생각과 감상들로 가득 찼다. 만약 내가 옛날과 같은 삶을 계속 살고 있었다면, 그래서 아무런 고통 없이 시계추 같은 하루를 보냈다면 과연 나는 나 스스로를 돌아봤을까?
누군가는 나의 지금 시간이 밑바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 순간을 더 높은 곳으로의 도약 위해 바닥을 딛는 과정이라고 감히 말할 것이다. 나는 많이 회복했고, 나의 취향과 강점을 알아가고 있다 내 마음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할 수 있다. 나의 아픔, 부족함을 회피하지 않고 인정한다. 고쳐야 할 부분이 아직 많지만 예전처럼 비관하지 않는다. 느릴지라도 나아질 것을 안다. 이제서야 나는 나를 알게 되었다. 이제서야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타인에게서 들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을 그만두었다. 나는 타인에게 해주었던 다정한 공감과 조언을 나 스스로에게 해줄 것이다. “잘하고 있어. 난 너를 믿고, 언제나 너의 편이야. 넌 정말 소중하고 사람이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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