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3 | 파멸하거나 진화하거나, 중독되거나 성취하거나
| 충동 성향과 체중의 연관성 |
그렇다면 반대 경우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도파민 통제회로가 맥을 못 추는 사이에 욕망회로가 날뛰는 경우 말이다. 이 사람들은 이런저런 충동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탓에 고난이도 과제에 집중하지 못한다. 이런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목격된다. 바로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환자들이다. 산만하고 매사에 충동적이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많아 자립이 어려워진다. 게다가 ADHD 환자는 세세한 부분을 잘 놓치고 일을 두서없이 벌려 해결은커녕 더 힘들게 만든다. 요금 고지서들을 정리하다가 갑자기 일어나 빨래를 시작하고 또 돌연 전구를 갈겠다고 나서는 식이다. 그러고는 난장판이 된 거실 바닥에서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앉아있다. 대화할 때도 다른 곳에 주의를 팔기 일쑤고 상대가 하는 얘기를 잘 듣지 않는다. 시간 개념도 없어서 걸핏하면 약속에 늦는다. 자동차 키, 휴대전화, 여권 등 온갖 물건을 흘리고 다니는 건 일상이다.
ADHD 환자의 대부분은 어린아이다. 도파민 통제회로의 본거지인 전두엽이 뇌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마지막에 발달하는 부위이기 때문이다. 전두엽은 성인기에 접어들어야만 비로소 다른 뇌 영역들과 완전히 연결된다. 전두엽에 자리한 도파민 통제회로의 주된 역할은 욕망회로를 견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ADHD 환자는 견제가 미약해 충동 조절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도파민 통제회로가 제 기능을 못할 때 사람들은 초래할 결과와 상관없이 무조건 지금 꼴리는 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ADHD를 앓는 아이들은 눈에 띄는 대로 장난감을 집어 들고 새치기를 한다. 성인 ADHD 환자들은 충동구매를 하고 사람들 얘기에 아무 때나 끼어든다. - < 도파민형 인간, 대니얼Z.리버먼,마이클E.롱 지음, 최가영 옮김 > 중에서
ADHD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치료제는 리탈린과 암페타민인데, 둘 다 뇌의 도파민 활성을 높이는 각성제다. 이 치료제들을 ADHD 치료용으로 복용할 때는 내성이 쉽게 발생하지 않는다. 살을 빼기 위해 혹은 약발로 일에 집중하기 위해 남용할 때와는 다르다. 하지만 원래 모든 각성제에는 어느 정도 중독성이 있는 게 사실이다. 미국 FDA가 리탈린과 암페타민을 모르핀이나 옥시코돈과 똑같이 오피오이드 류 마약으로 엄중하게 분류한 것이 그 때문이다. ADHD 환자들은 다른 이들보다 쉽게 중독에 빠진다. 특히 전두엽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청소년기에는 위험성이 배로 증가한다. ADHD가 요즘처럼 활발히 연구되기 전에는 의사와 부모들이 귀한 내 자녀를 리탈린이나 암페타민처럼 중독 우려가 있는 약으로 오염시킨다는 데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그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안 그래도 중독에 빠지기 쉬운 아이를 굳이 위험에 노출시키지 말자는 것이니까. 하지만 믿을 만한 연구 자료들을 종합해보면, 이런 각성제로 약물치료를 받은 청소년 ADHD 환자들이 실제로 약물중독에 빠질 확률은 낮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입증된다. 오히려 약물치료를 일찍, 그것도 높은 용량으로 시작할수록 남용 문제를 피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어째서일까? 도파민 통제회로에 힘이 생기면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가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효과적인 치료를 미루면 도파민 통제회로는 쇠약한 상태로 방치된다. 그러는 동안 대항마가 없는 욕망회로는 활개를 펴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미래의 중독자 명단 1순위에 내 이름을 올려놓게 되는 것이다. - < 도파민형 인간, 대니얼Z.리버먼,마이클E.롱 지음, 최가영 옮김 > 중에서
그런데 ADHD 환자와 가족들이 걱정해야 할 것은 약물중독만이 아니다. 집중력이 부족하거나 충동을 참지 못하는 ADHD 아동들은 환경에서 자원을 추출하는 능력도 떨어진다. 당연히 학업 성적은 바닥을 긴다. 문제는 형편없는 성적표가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ADHD를 앓는 소아청소년에게 친구를 사귀는 것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말을 싹뚝 잘라먹고 물건을 막 빼앗으면서 자기 순서를 기다리지 못하는 아이와 누가 같이 놀려고 하겠는가? ADHD 아동은 알림장을 열댓 번은 반복해서 읽어줘야만 숙제의 내용을 겨우 이해한다. 그러나 알림장을 열댓 번 읽고 있기에는 아이의 레이더에 잡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30분이면 끝낼 숙제를 몇 시간 동안 붙들고 있으니 당연히 동아리 같은 방과 후 활동은 꿈도 못 꾼다. 그런 까닭에 어릴 때 치료하지 않고 방치된 ADHD 아동은 잘하는 것 하나 없는 외톨이가 된다. 건강한 오락 활동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이 아이들이 건강하지 않은 취미를 위안 삼으려는 건 당연하다.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더 쉽게 약물중독에 빠지는 것은 그래서이기도 하다. 과잉성욕과 과식 역시 소아 ADHD의 중요한 부작용이다. 특히 이 아이들이 달고 사는 음식이 짜고, 달고, 기름진 것들뿐이라 걱정이 크다. - < 도파민형 인간, 대니얼Z.리버먼,마이클E.롱 지음, 최가영 옮김 > 중에서
소아와 성인 70만 명을 대상으로 생활습관과 비만의 연관성을 조사한 대규모 역학 연구가 있다. 조사 대상 중 ADHD 환자는 4만 8,000명이었다. 분석 결과, ADHD를 앓는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비만의 비율이 소아 집단에서는 40%, 성인 집단에서는 70%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비만 경향이 더 높다고 해서 ADHD가 비만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과체중 상태가 뇌 생리학을 교란해 ADHD를 유발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과학 연구에서 드물지 않은 이 상황을 학계에서는 ‘상관관계가 반드시 인과관계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라고 표현한다. 2가지가 동시에 목격되었다고 해서 늘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이다. 만약 저들이 비대해지기 전에 ADHD가 먼저 발병했음을 증명해 보일 수 있다면 어떨까? 실제로 이것을 증명하기 위한 연구를 실행했던 과학자들이 있다. 시카고 대학교와 피츠버그 대학교는 의기투합해 여아 2,500명을 피시험자로 모집했다. 목적은 체중과 충동 성향 간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었다.
연구결과는 예상을 적중했다. 10세 여아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똑같이 6년 동안 관찰했더니 처음에 충동 조절과 계획 수립 능력이 떨어지던 아이들 쪽의 체중이 확연히 큰 폭으로 늘었던 것이다. 연구진은 체중 증가의 가장 큰 요인을 폭식으로 꼽았다. 폭식은 음식을 먹는다기보다 자제하지 못해 마구 밀어 넣는 행위에 가깝다. 비슷한 이유로 과체중인 아이들은 길을 건너다 차에 치일 확률도 상대적으로 높다고 한다. 걸음이 느려서가 아니다. 충동적으로 도로에 확 뛰어드는 경우가 정상체중인 아이들보다 빈번하기 때문이다. - < 도파민형 인간, 대니얼Z.리버먼,마이클E.롱 지음, 최가영 옮김 > 중에서
그러나 타고난 생물학이 인간의 운명을 영구히 결정짓지는 못한다. 도파민 회로가 어느 한 쪽으로 크게 기운 사람도 달라질 수 있다. ADHD 환자들은 대개 약물치료와 심리요법을 통해 극적인 개선을 보인다. 때로는 그저 시간이 약이 되기도 한다. 정반대의 문제로 고통을 겪은 버즈 올드린 역시 결국은 자신의 창의력을 단련하는 쪽으로 돌파구를 찾아냈다. 달에 다녀온 뒤 그는 12권의 책을 홀로, 또는 공동으로 집필했다. 그러는 한편 컴퓨터 전략 게임 제작에 참여하고 화성 유인탐사 계획에 자문위원으로도 활약했다. 그뿐만 아니다. 댄스 경연 프로 ‘스타와 춤을Dancing with the Stars’, 퀴즈쇼 ‘그 가격이 맞아요The Price Is Right’, 요리 토너먼트 프로 ‘탑 셰프Top Chef’, 시트콤 ‘빅뱅 이론The Big Bang Theory’에 출연하는 등 그는 방송 활동에도 열심이다. - < 도파민형 인간, 대니얼Z.리버먼,마이클E.롱 지음, 최가영 옮김 > 중에서
이 책은 도파민의 역할을 밝히면서 ADHD와 정반대의 경우(도파민이 과다 분비/수용되는 유형)에 대해 주로 다루는 책인데요, 이 부분만 소제목 하나가 전부 ADHD에 관한 내용입니다. 책에서 정의한 ‘도파민형 인간’의 반대편에 있는 ADHD 환자들은 어떤 증상을 보이는지 우리의 의지력 부족ㅠ이 어떤 생물학적 매커니즘으로 인한 결과인지를 소상히 밝혀줍니다.
이 부분뿐만 아니라 전체도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등 여러 호르몬들의 작용과 관련된 흥미로운 실험들을 많이 소개해줘서 재밌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