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터 내가 산만한 성격이고, 싫어하는 건 집중 잘 못하고, 금방 질리고, 사람 말 끝까지 잘 못 듣고 등등 그런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사회적 관계도 더 좋아져서 그저 내가 어렸을 때보다 행동 양식이 더 나아졌다고만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iq도 높게 나왔던 터라 좋아하는 과목은 학업 성취도 무척 좋아서 선생님한테 왜 너는 노력을 안 하냐 교무실에 불려가기도 했지만... 나는 이것마저 @와 관련 있다고 전혀 상상을 못했다. 부모님도 그러셨다.
부모님 역시 사춘기가 심했던 아이, 산만하고 금방 질리는 아이 정도로 생각했지 좋아하는 걸 집중에서 확 노력하면 성과가 나오니까 그냥 좀 유별난 아이로 생각하셨다. "너 왜 항상 일을 벌려 놓고 마무리를 잘 안해! "라고 말씀하셨던 적이 없으셨고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주시고, 그냥 그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한 거를 칭찬해주셔서 나도 모르게 학생 때는 마무리 못한 건 생각 못하고... 오만한 생각도 좀 있었다.
엄마가 말씀하시길 "너는 터치하지 않고, 냅두면 알아서 잘하더라, 자기가 하고 싶은 거 알아서 적극적으로 찾아가더라" 얘기해주셨는데 @ 성향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잘 해석 해주신 거 같다.
그러다 대학도 싫어하는 과목도 열심히 하니 재밌고 좋아져서 어찌저찌 잘 가게 되고, 지적호기심도 많고 새로운 분야를 깊게 생각하지 않아 앞 길을 무서워하지 않는 @의 충동성 덕분에 오히려 첫 회사도 잘 입사했다. 그 당시에는 좀 더 고연봉을 받을 수 있지 않나 아쉬워했던 거 같은데, 지금 돌이켜보면 첫 회사는 @가 있기에 좋은 곳이라서, 운이 좋았던 거 같다.
왜냐하면 전 직장은 업무 강도가 낮아서 딴 짓을 하면서 해도 다른 사람들도 딴 짓을 하니까 티가 안 났다.
다만 '내가 다른 사람보다 산만하긴 하구나..' 이런 생각을 스스로 자주 하긴 했던 거 같다. 신입사원 때에는 긴장도 되고, 커리어에 대한 열망이 있긴 하니까 집중이 됐는데 퇴사 시점에는 일이 재미 없으니까 집중을 굉장히 못했다. 그나마 근무 강도가 낮고, 딴 짓 하기가 좋아서 @임에도 길게 다닌 거 같다.
퇴사를 몇 달 간 고민했지만 이직 준비는 따로 하지 않다가 퇴직금 믿고 코로나임에도 충동적으로 몇 시간 만에 퇴사를 결정하고, 가족들에게도 통보를 했다. 막상 퇴사하고는 백수 기간 길어지는 거 아닌가 불안과 걱정이 엄습하긴 했지만... 그걸 원동력 삼아서 더 집중해서 노력했고 운 좋게 이직을 빨리 하게 되었다.
이직 후 새로운 분야를 배우니까 재밌고 호기심이 들어서 열심히 일을 하다가 코로나가 심해져서 긴 재택을 하게 되었다. 내가 잘 풀리는 일을 할 때는 결과가 나와 신나니까, 재택이지만 생산성이 좋았다.
그러다 어려운 업무를 맡게 되고, 자꾸 좌절되니까 집중이 안되고 초시계로 집중 시간을 재고 플래너를 쓰고.. 별 거를 다해봐도 죽도록 집중이 안 되는 거다. 나는 남들도 다 이런 줄 알았는데...
그러다 요즘 성인 adhd가 화두 되면서 유튜브 알고리즘에 자주 뜨게 되었다. 처음엔...당연히 난 스스로 @라고 전혀 생각을 못했으니까, @에 대한 얕은 지적 호기심 수준으로 심드렁하게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나하나 다 내 얘기인 거다... 그래서 검색을 해보니 인터넷에 내 얘기들이 가득했다 ㅠㅠ
정신과는 나랑 거리가 무척 멀다고 이제까지 생각해온 나였기에, 긴 입덕부정기(?)를 겪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성인 adhd 인 분이 쓴 책을 읽었다. 하나하나 너무 공감이 되서 내가 @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더 이상 들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적어도 경계선이겠거니 인정을 하게 되었다.
가장 놀란 건..이렇게 까지 정신과 예약이 힘든 건지 몰랐다는 거... 한 달 뒤에 초진을 하고 나는 고지능 add 판정을 받게 되었다. 요즘 나처럼 재택을 하다가 성인 adhd 를 발견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 전에는 사무실에 보는 눈이 많으니까 그나마 집중을 하는데 재택을 하면서 나처럼 아무리 노력을 해도 집중이 안되니까 찾아 온다는 것이다.
진단을 받고 나니 이제까지 인생에서 든 나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나도 나 스스로를 좀 유별난 애로 생각했는데, 약을 먹고 차분해지고 어떤 상황에서도 집중을 잘하고, 남의 말이 끝까지 잘 들리는 나를 보며 '이제까지 나 참 애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나도 모르게 남들보다 더 노력하는 부분이 있었다니 기특하다.
약을 먹으니까 집중하는 게 너무 쉬워서, 맘 속으로 집중 해야 해!! 그만 생각 해! 되내이지 않아도 되어서 편하다. 재택 덕분에 발견 한 나의 @는,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거 같고 나는 어찌보면 코로나에게 고마워해야 할 거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