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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인생썰 (대유쾌마운틴)
Level 3   조회수 224
2022-04-13 13:10:54

1. 이등병 시절.

본좌는 중대 내 3대 폐급의 자리에 당당히 우뚝 솟아있었다.


화장실이 고장이 났는데 당번임에도 고치지 않았다는

(참고로 당번 아니었다)


지극히 오해에 기반한 근거에서 시작된 내 이미지는

본인의 실제 어리버리한 성격과 기막히게 매치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사회생활에 익숙치 않았던 본좌는

나날이 악명을 쌓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본좌는 이대로 가다가는 영영 외톨이가 될 거 같다는 생각에

한 차례 도박을 감행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대대전술훈련 때

영웅적인 행동을 하여 타의 귀감이 되고자 하는 것이었다


군대를 잘 알지 못하는 여성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대대전술훈련은 대충 남정네 100명 남짓이 모여서

대충 북한군이 침략했다는 상황을 가정하여

총기들고 뿌슝빠슝 빵야빵야를 하는 것이다.


그리하야 대대전술훈련 당일.


본좌는 본인의 기관총(이름하야 빨갱이 지우개)을 들고 작전지역에 투입되었다.


어떻게 해서든 선임에게 인정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치 소금을 만난 민달팽이처럼 미친듯이 굴렀다.


사실 이것은 미필의 시선으로 보면 정말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데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땐 웬 미치광이가 흙구덩이에 처박혀서 괴성을 지르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본좌는 진심이었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컸던 까닭이었다.


그러던 와중 정말 운이 좋게도 주임원서(대충 높은 사람)이 내 모습을 보기 되었고, 본좌를 향해 "참군인"이라는 칭찬을 내뱉었다.


본좌는 이 일로 말미암아

부대 내에서 호저(산미치광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그 명성으로 인하여 당분간 조용히 지내는 듯 했으나


그 다음 훈련 때 총기함 열쇠를 가지고 나가는 바람에

(참고로 이게 없으면 무장탈영의 가능성이 생긴다)

결국에는 빼도박도 못하고 말썽꾸러기가 되어버렸다.


2. 대학생 시절

Adhd였음에도 공부지능이 마냥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대충 본인이 살던 곳의 대학에 진학했던 본좌였다.


당시 본좌는 일종의 환상에 젖어

대학에 진학하면 내 인생의 배필을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하였고

그로 인해 내 인생도 점차 순탄해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본디 살아온 인생굴곡이 험난했던 본좌는

연애는 커녕 당장 사회생활 자체가 힘들었다.


본좌의 당시 상황에 대하여 조금 더 보태자면

당시 필자는 속칭 찐따룩을 즐겨 입는 그런 남자였으며

지극히 유교적인 사고방식을 밥상머리 앞에서 주입받은 상태였다

즉, 자기객관하게 지독히도 안되던 남자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남들 다 하는 연애 나도 해보자 싶어서

여러 여성(죄송합니다)에게 참으로 염치없는 대쉬를 하였는데


어느날.

내가 특별히 사모하던 여성 한 분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넌 남편으론 좋겠는데 남자론 안 보인다."


그 말을 들은 본좌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삼키며 도망쳤고

슬픔을 이기지 못한 본좌는 근처 노래방에서 발라드를 땡겼다.


그러나 자체콘서트를 마치고 나가던 길.

우연히 같은 과 여학우를 마주치게 되었고

그녀는 본좌의 보컬 실력에 감탄하여

어쿠스틱 통기타 동아리에 들어올 것을 제안한다.


그때의 내 기분이란 기쁨보다도 의심에 가까웠는데

그 이유는 내추럴 본 아싸인 본좌의 성격상 문제도 있거니와

당시의 시대적 환경 역시 좋지 않았다


당시는 새학기가 시작되던 와중이었으므로

캠퍼스 내에는 사이비(종교쟁이)가 돌아다녔던 것이다.


그럼에도 본좌는

"이왕 이렇게 된거 차라리 사이비에 입단하여 광명찾자"

라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냉큼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고

(사이비 아니었음)


그곳에서 본좌는 어째서인지

얼굴이 덜 굳은 지점토마냥 심하게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리드보컬이 되어 대중들 앞에서 공연을 두 탕 뛰게 되었다.


결국 그 후로도 여자친구는 사귀지 못했지만

다행히 뜻이 맞는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훗날 본좌의 보컬은 다시 한 번 축복을 가져다주었는데

일병 시절, 부대 내 장기자랑 대회에서 소대 대표 싱어로 활약하여

'일은 잘 못해도 어쨌든 호감'인 사람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나가는 데 크게 일조하였던 것이다.


물론 전역 후에도 본좌의 보컬만 믿고

여러 여자에게 대쉬했으나 일일이 차인 것은 또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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