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조울증약을 복용하며 간헐적 사회생활을 했고, 좋지 않은 퇴사를 반복하며 살아왔다. 사교성은 있었지만, 사회성은 부족했다.
완벽주의 성향 탓에 잘하지 못할 바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미루다 겨우 하거나 하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잘하지 못하니, 단순한 일을 열심히 했다.
자신 없는 부분을 다른 것으로 덮어가며 살았다. 타인의 인정을 바라보며 살다 보니 인정을 못 받으면 한없이 초라해지거나, 의기소침해졌다. 남들에게 '너 때문에 다른 사람들 힘들잖아.' 이런 말을 들어도 나아지려 노력하는 게 힘들었던 것 같다.
나는 열정적인 편이었고,한번 꽂히면 멀티플레이가 안 돼서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못했다. 여러 번 지적도 받았다. 그때의 나는 착하지만 일을 잘하지는 못하는 사람이었다.
힘들었다. 내가 다른 사람과 같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3~4배는 노력해야 하는 걸 알았지만 자신이 없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을 마시고 과소비를 하며 그 시간을 버텨왔다.
도저히 버틸 수 없음을 알고 퇴사를 했다. 퇴사를 할 때 버티다 버티다 도저히 안될 때 바로 퇴사를 했던 것 같다. 특히 나의 이런 힘든 감정을 얘기할 때 많이 힘들어 눈물이나왔다.
어릴 때부터 감정 표현 중 슬픔, 힘들다는 표현을 하는 게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이별, 퇴사 등의 이유로 나는 자주 동굴에 들어갔다. 그때마다 소수의 친구들은 기다려주었지만, 대부분은 떠나갔다.
인간관계의 폭은 줄어들고, 이사와 결혼 등의 이유로 친구와의 만남은 연례행사처럼 치뤘다.
동굴로 들어가는 순간은 내가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기분이었다. 힘들 때마다 그렇게 된다는 건 그게 가장 편하고 익숙하기 때문이었을까.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게 힘들면서도 새벽 내내 핸드폰을 만지며 자고 먹고 눕고 간신히 사는 것. 사는 것 같지 않았다. 내 마음의 행복이 없는 삶이었다.
마음이 힘드니 몸도 안 좋아졌고, 조울증으로 10여 년 약을 먹었지만 사회생활이 힘들 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ADHD 간단한 검사지를 체크한 후 콘서타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약은 나에게 강했는지 가슴이 두근거렸고 속도 울렁이는 느낌이었다. 약 복용을 끊고 나를 힘든 상태로 세상과 고립시키며 살았다.
약 복용을 끊고 영양제를 챙겨 먹고, 명상도 하고, 달리기도 했다. 명상을 하며 나는 스트레스나 힘들면 가슴이 답답하고 불편해지는구나. 그리고 얕은 숨을 쉬고 있구나 알게 되었다. 30분만 달려도 큰 성취감을 주는 아주 좋은 운동이 달리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시 세상으로 나오는데는 2~3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힘든 시간을 버틸 때 한 친구가 늘 내 옆에 있었다.
죽고 싶다고 소리도 치고, 살고 싶지 않아 멍하게 있어도 내 옆에 늘 있어주었다. 내가 뛰면 같이 뛰어주고 그냥 옆에 있어주었다. 나를 무조건적으로 믿어주는 사람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뭐라도 할 용기가 났던 것 같다.
나의 예민한 몸과 정신을 어떻게 하면 보통 사람과 비슷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살았다. 명상은 이제 한 지 3년 차, 달리기도 그 정도 되는 것 같다.
어느 정도 생체 리듬이 돌아오니 다시 무언가 재도전해보고 싶어졌다. 우선 ADHD가 아닌지, 맞는지 알고 싶어졌다. 병원에서 뇌파 검사 등을 하며 결과를 알려줬다. 경미한 ADHD라고. 청각, 시각 기억이 낮고 즉각 반응이 하위 6%라고 했다.
그래서 누군가 말하면 잘 듣지 못하고 눈으로 본 것도 여러 번 해봐야 알 줄 아는구나를 알게 되었다. ADHD가 아니길 바라기도 했다. 더딘 인간인 건 알지만 또 새로운 병명으로 내가 적응해가는 게 두려웠던 것 같다.
남들은 ADHD 약을 먹고 왜 이제 먹었을까 신세계라는 말들도 하길래, 나도 확 바뀔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었다.
첫 시작은 아토목세틴 18mg.
버라이어티하게 내 삶은 바뀌지 않았다.
단, 내가 미루던 일을 억지로 하고는 있었다.
할 일을 계속 찾았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