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L과 헤어지자마자 낯선 환경에서 접점 없는 이들과 새로운 걸 배워야 했다. 처음엔 정신을 차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사회성과 집중력, adhd 환자에게 가장 부족한 두 가지를 동시에 발휘해야 했으니까. 그것도 이별로 인해 정신이 반쯤 나가있는 상태에서. 친구 K가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그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올해 상반기를 마무리지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에 회의를 느끼던 때 동기 P는 다가왔다. L에 대한 그리움과 애증, 미움이 언어가 되어 뒤엉키던 때에 그녀는 말했다. "있잖아, 나는 오빠가 그 언니에 대한 감정을 나에 대한 생각으로 치환했으면 좋겠어." P가 올 해 하반기에는 새로운 꿈을 준비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라 얼마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녀로 인해 사랑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형, 제가 씨X 이 세상의 다른 모든 건 안 믿어도, 형이 존X 좋은 사람이라는 건 확신해요, 레알 내 롤 아이디를 걸고, 진짜. 그 일은 진짜 그 J 새X가 나쁜 거예요, 그니까 우울해 하지 마요." 전날 있었던 선배 J와의 갈등으로 인해 온갖 부정적 감정이 나를 휘감던 어느 새벽, 술에 만취한 동기 O는 내게 전화를 걸어 얘기했다. 그 술주정 한 문장이 없었다면 나는 또 기나긴 우울함에 빠졌을 것이다.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끝없이 고민하던 때, 직속 상사 H는 얘기했다. "원래 이쪽 일이 그래요, 100만큼 노력해도 10조차 못 보여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10만큼 노력해도 100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도 존재하죠. 근데 분명한 건, 노력이 무한정으로 수반된다면 그 격차는 분명 준다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보기에 당신의 노력에 대한 효율은 좋은 편이에요. 단지 이게 처음이라 헤매는 거지. 그러니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의사 손에 놓여진 메스가 살인마의 손으로 옮겨지면 그것은 흉기가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나는 조금은 늦게 깨닳은 것 같다.
그저 지금 내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에게 감사를 표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