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는 이 내적 고민이 해결되지 않을것 같아 심란한 마음에 누군가 제3자에게 생각을 묻고 싶었다. 집에 돌아가서 동생에게 가볍게 이야기를해봤다. 동생은 이렇게 말했다. 이 일은 내가 들었을 때 누나가 명백히 잘못 한것이고, 누나가 그런 자기만 생각하는 태도를 고치지않는다면 앞으로 누나는 이중 하나가 될거다. 1번. 아*린처럼 잘 나가는 연예인이 된 후 결국 그 업보때문에 폭망한다. 2번. 아빠처럼 자기생각이 다 맞는 독선적인 사람이 된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갖게 되어 아무도 지적해주지 않고 그냥 떠나가서 그걸 본인만 모르는 외로운 사람이 된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면 책을 많이 읽어라. 그리고 지금 눈치를 보는것보다 10배이상 눈치를 보고 뭘 원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살피고 관찰해라. 그래야 남들이 하는만큼 할 수있게 될거다. 그만큼의 노력은 해야 고쳐질것이다. 이게 동생의 상담 결과였다. 얘기가 마무리 되고 목이 마르니음료수를 사달라는 동생에게 뭘 원해? 라고 물어보니 누나가 내가 좋아하는게 뭔지 생각해서 사와봐~ 라고 했고, 힌트로 탄산음료를 주었다. 난 의심의여지없이 코카콜라를 사갔다. 하지만, 동생은 웃으며 이거봐. 누나는 날 진짜몰라. 남에대해 관심이 없고 스스로만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증거가 이거야. 난 코카콜라보다 펩시를 좋아했었어. 라고 했다. 나는 아직도 이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정말 타인에대한 눈치나 관심이 남들보다 현저히 낮은가? 하는 의심이 그 어느때보다 강하게 들었다. 애써 아니라고 생각했던 많은것들이 동생에게까지 파헤쳐져 결국 사실이 된것이 너무 너무 슬펐다. 많이 울었다. 너무 속상했다. 남도아닌 동생한테 콜라같은 사소한걸로 이런 얘기까지 들어야 하나 싶으면서도 내가 이렇게까지형편없는 사람이였나 하는 마음이 날 너무 괴롭게 했다. 결국 상담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채 문제만 추가로 얻게 됐다.
조금 감정이 진정된 후 다시 생각해 봤을때에도 생각이 정리 되지는 않았다. 동생도 내 잘못이라고 얘기하는걸 보면 내 잘못이 맞긴 한것 같으면서, 그럼에도 왜 날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나 싶으면서, 스스로에대한 자괴감도 들면서, 정말 다른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과하게 신경을 쓰고 살아간단 말이야? 정말 내가 비정상인건가? 싶으면서, 마음이 정말 무슨 폭풍속 돛단배처럼 엎어지고 뒤집어졌다. 사실 이런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이나 회의감이 든 적은 20대 중반 이후로 셀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거나 그래. 내가 더 고치면 되겠지. 내가 좀 더 노력하면 되겠지. 하고 넘어갔었다. 20대에 더 성숙하게 성장하기 위한 성장통 정도로 가볍게 여겼다. 남들도 다 이러고 살려니 싶었다. 하지만 내가 더 노력하려 해도 고쳐보려해도 늘 도돌이 표였다.
서른이 가까워져도 계속 이런 일들이 생겼고, 가까운 사람이 나에게 늘 비슷한 문제로 기분이 상했고, 그 문제가 언제나 나로 인해 벌어졌고, 아무리 애써도 변화하는것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집단 내에서 나는 눈치없고 배려없는 공주같은 애가 되어 있었다. 이 극단이 나에겐 거의 유일한 사회인데, 이곳에서 나는 당당하게 설 곳이 없어졌다. '잘못 살아왔다' 라는 의심이 점점 확신이 됐다.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사라져 갔다.
잠에서 깨기 힘들어진게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회피가 습관인 사람이다. 결론내리기 힘든 문제나 해결이 안되는 문제들을 맞딱드렸을 때 그냥 아무 생각을하지 않아버린다. 그게 당장 편하니까. 좋은 방법으로 유튜브가 있었다. 하루 종일 핸드폰만 했다. 아무 의미 없는것부터 게임방송, 먹방, 애니메이션, 드라마 가리지 않고 보았다. 보는 동안엔 아무 생각이 없이 있을 수 있어서. 그러다 수채화 그리기영상을 보고 혼자 하루종일 그림놀이를 한 날도 많다. 하루종일 핸드폰만 하다가 새벽이되어 졸면서 핸드폰을 떨어뜨리며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 1시가 되어서 일어나면 일부러 더 자려했다. 깨어있기 싫었다. 그러다 보니 개운하게 깨거나 활동한적이 별로 없었던 것같다. 작년 여름(8-9월)의 그 문제가 내 안에서는 명확히 해결되지 않은채 영화 촬영이 끝나고 거의바로 다른 공연연습에 들어갔다. 10월부터 준비해 11월 말즘 공연을 올렸다. 그동안에도 난 참 많은 실수들을 했더랬다. 내 소품 문제를 공연일주일전까지 해결하지 못해서 혼이 난적도 있었고, 공연 당일에는 귀걸이 소품을 깜빡잊고와서 급한대로 다른 귀걸이를 사서 쓴적도 있었다. 그밖에도 내가 기억못하는 실수들이 아주 많겠지. 공연은 잘 끝났다. 관객들 평가도 매우 좋았고, 연출 언니도 나를 많이 칭찬했다. 열심히 해줘서 고맙고 그래서 너무 보기좋았다고. 더 열심해 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배우들에게 많은 영감을 받아서 이렇게 좋은 공연이 나올 수있었던것 같다고도 했다. 칭찬이 곧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뭘 잘했나 싶었다. 다같이 웃고떠드는 뒷풀이 자리가 불편했다.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슬프지만, 내게 가장 가까운 그 사람들이 나는.. 불편해서 빨리 자리를 뜨고 싶었다. 내가 그들을 솔직하게 대하지 못하니 늘 불편함이 따라다녔다. 사회적가면을 쓰고 괜찮은척, 성공적으로 공연을 끝내 행복한척, 웃어야 하는 그 자리가 힘들었다. 우울한 마음은 계속 됐다. 모든게 무기력했고 살아가는 이유가 없게 느껴졌다. 동생의 말한마디. 언니의 말한마디. 아빠의 말한마디가 잊혀지고 무뎌지지 않고 계속 아팠다. 모든게 내가 잘못인것 같았고. 내 존재 자체가 잘못인것 같았다. 내가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개선될것 같지 않았다. 뭐가 문제인지 생각하기도 힘들었다. 정신과는 심신이 약한 사람들만 가는 곳이라고 생각한 내가, 마치 응급실에 가듯 그렇게 12월 말 병원을 찾았다.
처음엔 우울증 약을 먹었다. 우울한 마음이 나아지는 느낌은 딱히 받지 못했던것 같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자 극단 사람들을 한동안 보지 않게 되었고 자연스레 우울함도 사라졌다. 그렇게 또 별일 아닌거로 내가 병원에 다 찾아갔구나.. 에이 한심해. 생각하며 병원에 가지 않았다. 다시 병원을 찾은건 그때 당시 의사쌤이 ADHD가 의심된다며 권유해서 해봤던 CAT검사의 결과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였다. 아닐거라 생각하며 단순한 호기심에 찾은 병원에선 확진판정을 내렸다. 그렇게 나는 ADHD가 됐다.
아직도 종종하는 생각중 하나가 ‘직접 죽을 용기가 나에겐 없으니 길가다 우연히 사고로 차에 치여서 죽었으면 좋겠다’ 이다. 그 운전자에겐 정말 너무 미안하겠지만, 고맙기도 할것 같다. 남겨질 가족들에게도 너무 미안하겠지만, 스스로 죽는것 보단 그래도 내 죽음을 탓할 상대가 있게 죽는게 덜 미안할것 같다.
약을 복용하며 공연준비를 하고있는 지금도 조금만 깊게 생각을 하다보면 살아가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는 일상이다. 의미도 동기도 원동력도 목표도 재미도 이유도 없다. 그냥. 하기로 했으니까, 해야 하니까 공연 준비를 하는거고. 또다시 누군가 나에게 화나거나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더 열심히 맡은 일을 해보는거고. 시원하지 않은 결말이라 내 마음도 찝찝하지만,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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