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와는 그로부터 1년 후, 그러니깐 2020년에 언젠가 정식으로 화해를 하며 잘 풀었다. 언니는 그 때, 자신이 너무 지나치게 몰아세우며 대했던것 같다며 사과했다. 나또한 열심히 하지 않은것, 더 잘하지 못한것에 대해 사과했다. 언니의 사과를 받으며 마음한켠이풀리는 느낌도 들었다. 이런 시행착오들을 거치며 앞으로는 함께 더 잘 해낼것 같은 희망도 잠시 생겼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언니를 전처럼 거리낌 없고 편하게 대하지 못한다. 아직까지도 무서운 선생님으로 인식이 되고, 그 앞에 서면 내 의사표현을 제대로 잘 못하는 상태이다. 그냥, 무언가 물어볼 때에도 내 말투가 기분 나쁘지 않을까 눈치보며 신경써가며 최대한 친절하게 말하게 된다. 쇼핑을 가서 이거 어때? 나한테 이뻐? 나랑 같이 이거 살래? 라며 물어볼때에도 별로 내스타일아닌데~ 아니~ 같은 부정표현을 쓰지 못한다. 그럴땐 그냥 으음.. 하며 말을 흐리거나 입을 다무는 것 같다. 가장 슬픈건, 가장 친한 친구였던 관계가 갑자기 수직관계도 아닌 뭔가 이상한 관계로 나 혼자 변질되어 그사람이 나 혼자 불편해 진 것이다. 이렇게 (내 개인적으로)비뚤어진 관계로 계속 언니, 그리고 다른 극단 친구들과 해마다 한편씩은 작품을 만들어왔고, 그 때마다 크고 작은 트러블들이 있어왔다. 트러블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내 어떤 언행때문에 상대가 참아오던걸 터뜨리며 얘기하는 식이였고, 내 기준 갑자기 화를 내는 그들에게 당황한 내가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는 형태가 대부분이였다. 그리고 대부분 그들이 얘기하는것들을 난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 내 모습에 사람들은 더 열분이 터져했다. 잘못한 일이 생겨서 사과를 하면 한동안은 조심하고다니는듯 하다가 어느샌가 느슨해 져서 또 다른, 혹은 비슷한 실수를 했다. 나는 미안하다고 앞으론 안그러겠다며 매번 고개숙여 사과하는게 서서히 지쳐갔다. 매번 미안할 일을 만드는 나 자신에게도 지쳐갔고, 매번 사과를 해야 하는 이 집단에도 지쳐갔다. 그러다 2021 작년 여름, 영화촬영을할때였다. 언니는 나와함께 배우를 하며 조연출도 겸하여 일하고 있었다. 새벽일찍 촬영 준비하던중, 언니가 함께 촬영을 하는 다른 여배우에게 머리 세팅 도와줄게 하며 고데기를 켜길래 나도 머리 해줄수있겠냐 물어봤다가 뒤에서 크게 혼이 났다. '자기가 뭘 하고있는지 너는 관심없이 너만 생각하고 행동하면 다냐. 그 상황에서 자기는 아침에일어나 촬영 전까지 준비할게 태산같았는데, 내가 무슨 그냥 너 머리 만져주는 사람으로 보이냐' 등. 내가 상황과 장소와 시간에 맞지 않는 태도로 그 사람을 대해서 화가 난듯 했다. 하지만 당시 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온전히 이해되지 않았지만 화를 내길래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때 당시 대화를 가볍게 복기해서 적어본다면 이랬다. ____________________ a: 친한 언니 (조연출도 하며 배우도 함) b: 처음 같이 작품하는 여배우 c: 나(배우) A: b야 너 머리 한거야? B: 아뇨, 아직 못했어ㅠㅠ A: 얼른 다른거 먼저 해봐 나 준비 빨리 하고 너 머리 빨리 해주고 나갈게. 나 지금 위에 올라가서 얼른 촬영할거 세팅 해놔야 되서. B: 아 언니 고마워~! C: 언니 혹시 나도 머리좀 해주면 안될까? 이 뒷머리가 계속 안펴져서ㅠㅠ A: 그정도는 너 혼자 해봐. 지금 괜찮은데? ______________________ 내 딴에는 조심스럽게 부탁을 한거였는데 내 말투며 행동거지가 당연스럽게 요구하는 느낌이 들고, 자신의 상황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느낌에 기분이 매우 나빴다고 한다. 함께 처음 하는 친구라 더 챙겨주려 했던건데 자신을 도와서 같이 챙길 생각은 못하고 눈치없이 자기도 해달라고 하는 나에게 실망했던 것이다. 덧붙이며 같이 하는 다른 스텝도(마찬가지로 매우 가까운 극단오빠) 이 생각을 하고 있고 이미 나한테 조금 화가 나있다고 전했다. 정확히 어떤 일인지 말을 해주지는 않았지만 방금사건과 비슷하게 같이 만드는 작품에서 내가 뭔가 당연하게 그들을 부려먹는 느낌을 받아서 기분이 상했다고 한다. 난 그렇게 생각하거나 그렇게 행동한적이 없었는데, 이런 말을 들으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이들을 기분 나쁘게 만들고 있었구나. 왜 난 항상 다른 사람들이 나때문에 기분이 상하는걸 알지 못할까? 왜이렇게 생각이나 행동이 어리고 단순할까. 모든 불화는 나때문에 시작되는것 같았다. 그냥다 때려치고 집에 가고 싶었다. 나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항상 가까운 사람들을 내가 상처준다. 아빠가 늘 나에게 했던 말이다. “너는 너무 이기적인애야. 너가 힘들고 아프면, 할머니가 멀리서 오셔도 웃으며 반겨주지 않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던 말을 스스로 느끼게 되며 몰아치는 감정의 폭풍은 이루 말하지 못하게 괴로웠다. 몇년째 같은 문제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매번 모르는채 저지르고, 누군가 참지 못해 화를 내면 그제서야 아 또 같은 문제구나 깨닫고 후회하는 스스로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최대한 조심한건데, 왜 나한테만 다들 뭐라고 하는거지?
너네가 나한테만 너무 예민한거 아니야? 어쩌라고. 라는 반발심이 그와 비례하게 크게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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