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너의 생각만큼 무르지 않고, 서로 큰 영향을 주고 받지 않는다.
이번 일년을 지내면서 내린 결론이다. 첫 발령을 받아 신규교사로 생활하면서 여러 어려움에 부딪혔고, 그 때마다 크게 흔들렸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별 일 아니었다. 이렇게 성장하나보다.
1. 내가 학년에서 적응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8명이나 되는 동학년 선생님들을 끊임 없이 움직이게 했던 부장님. 나를 위해 부장님이 희생하시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다 지나고 나서 보니 그냥 원래 부장님은 다같이 무언가를 함께하는걸 즐기시는 열정적인 분이셨다.
올해 다른 학년이 되면서 부장님이 계시는 학년만 함께 회의하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꾸리시는 걸 보며 알게되었다. 학급경영으로 쩔쩔 매는 내가 좋은 활동 하며 반 분위기를 좋게 하라고 학년 전체를 불러모아 갑자기 새 프로젝트를 꾸리셨던 부장님. 나 때문에 고생하신다고 마음이 불편했고 감사했고 죄송했다.
그냥 그게 부장님의 방식이었다. 도움을 주고 싶고 베풀고 싶을 때 쓰는 방식. 나를 위해서 뿐 만이 아니라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었다.
2. 내가 너무나도 숨기고 싶어 하는 일들을 깊숙히 물어봐 괴롭게 했던 동료교사. 나를 싫어해서 일부러 그렇게 행동하는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책을 쓰느라 신규교사의 좌충우돌 성장일기를 수집하던 중이셨었다. 나에게 선물해준 당신이 쓴 책을 보니 알겠더라. 그냥 본인 일이었던 것이다. 그 때 예민해서 피해의식이 생겼었나 보다. 병가가 다 끝나고 따뜻하게 맞이해주시고 신경써주시는 선생님을 보며 내가 혼자 착각했음을 깨달았다.
3. 다른 나라에서 살다가 우리반으로 와서 적응을 하기 어려워했던 우리반 아이. 2학기 초 그 아이가 그린 그림에는 우울과 슬픔이 잔뜩 묻어있었다. 이 아이가 갑자기 왜이러지. 나 때문인가? 그 일 이후로 나는 많이 무너져내렸다. 다른 선생님 덕에 그 아이는 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내가 병가를 다녀온 두달이 지나자 눈에 띄게 좋아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루하루 너무 좋아졌다. 아이와 대화를 하며 우연히 그 아이의 아픈 가정사를, 아이의 스트레스를 알게되었고 아이의 마음이 아팠던건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을 내 교육방식이 잘못되어 그런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동안 혹시 나 때문인가 맘 졸이고 혼자 동굴속에서 곪을 필요가 없었다.
병가 마지막날 부장님께 전화를 드렸었다. “부장님 그동안 저 엄청 챙겨주시고 도와주셨는데 제가 그에 대한 감사함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것 같아 그게 마음에 걸렸어요. 정말 죄송하고. 너무 감사했습니다.” “ 아니에요 나는 그 마음 다 알고 있었고 마음을 받는건 제 마음이 하는 거예요. 이렇게 전화 해줘서 너무 고맙고 반가워요.‘ 힘들었던 그때 이 말을 들어 너무 행복했고 후련했다. 그렇다 받는건 그 사람 마음이다. 난 이렇게 표현 했어도 그 사람은 다르게 느낄 수 있는거다.
그리고 사람들은 내가 생각 하는 것 보다 단단하고, 내가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지 않다. 어쩌면 난 스치는 인연일 뿐 이고 그 인연이 하는 말과 행동만으로 그 사람의 마음상태가 크게 좌지우지 되지 않는다. 내가 맘 졸이는 것 만큼 사람들은 나에의해 상처 받거나 괴로워 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를 아무 이유 없이 미워하지 않는다. 미워하는것 만큼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도 없으며 그렇게 까지 나에게 열정을 쏟을 것도 없는 것이다.
너무 깊은 관계를 맺을까봐 , 내가 다른 사람에게 혹시라도 영향을 줄까 마음을졸이는 , 아직 인간 관계가 어렵고 버거운 나에게 이런 깨달음은 큰 기쁨이었다.
다른 사회는 어떨 지 몰라도 적어도 내가 속한 사회는 이렇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베풀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 도움은 그 사람이 부담을 느끼면서 , 혹은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주는 도움과 배려가 아니다.자신이 여유로울 때. 스스로의 마음이 단단히 서있을 때 내 마음에 남는 에너지를 베푸는것이다. 그러니까 남이 베푸는 배려와 도움에 과도한 불편함을 느낄 필요 없다. 따뜻함과 감사함이면 충분하다. 베푸는 사람도 나의 건강한 감사함을 바랄 것이다.
나를 생각해주고, 내 옆에 있어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내 마음이 더 성장한 만큼 올해는 건강한 일년을 보낼 수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