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는 똑똑한 아이였다. 엄마와 아빠 모두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가방끈이 짧아 아이가 둘 중 누구를 닮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반에서 일등을 도맡아 하고 종종 전교 일등도 하니 아무튼 똑똑한 아이인 점은 사실일 것이었다.
민지는 자잘한 일을 깜빡하거나 미루는 면이 있긴 해도 대체로 성실한 편이었다. 빠듯한 살림에 조금이나마 보태보려고 항상 바쁜 탓에 살뜰히 챙겨주지 못했는데, 학교에 처음 보낸 8살때부터 자기 가방을 스스로 챙겼다. 제 몫으로 주어진 책장을 간수하는 걸 보면 살림에는 소질도 취미도 없는 엄마보다도 더 꼼꼼하고 야무진 것 같았다. 민지는 잘못한 일을 꾸중하고 벌을 세우면 얼굴이 벌개져 땀을 뻘뻘 흘리고 끝내 눈물을 쏟으면서도 정해준 만큼을 버티곤 했다. 아마 학교에서도 그랬던 모양이었다. 민지 엄마는 민지의 담임선생님이 보낸 편지를 한번 더 읽었다. 아무리 다시 읽어도, 민지가 숙제를 해 오지 않아 벌을 세운지 벌써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매일같이 숙제를 해 오지 않으니 어머님께서 조금 더 살펴봐주십사 하는 내용은 변함이 없었다. 그날 배운 범위의 수학 연습문제를 몇 개쯤 푼다든지 짧은 글짓기를 하거나, 한자 몇 자를 열번씩 써 가는 일 따위는 똑똑한 민지에게 그리 어렵거나 고된 일은 아닐 것이었다. 알림장은 잘 쓰고 준비물도 대부분 챙겨간다고 하니 잊어버렸을 것 같지도 않았다. 사춘기의 반항 같은걸 잠시 떠올려봤지만, 민지는 아직 아빠 품에 답싹 잘도 안기는 고분고분한 아이였다. 티비 앞에 앉아 야구중계와 신문 정치면을 번갈아 들여다보던 민지가 슬쩍 엄마 눈치를 봤다. 선생님이 써준 편지를 전달은 했으되 그 내용이 뭔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이상한 구석에서 고지식한 아이였다. “민지야 오늘 숙제 없어?” “아 맞다, 있어요. 이따가 이거 야구만 다 보고 할게요, 안 많아요.” 민지가 짧은 안타에 홈으로 달려드는 주자를 눈으로 좇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캐스터가 흥분한 목소리로 누군가가 무슨 기록을 새로 세웠다고 떠들고 있었다. 민지는 옆에서 치대는 동생에게 기사 내용에 대해 자기 생각을 설명해주다가, 캐스터가 목소리를 높일때마다 한마디씩 종알거렸다. 어차피 지금 뭐라고 타일러봤자 귓등으로도 안 들을 것 같아 보였다. 나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쟤는 누굴 닮아 저렇게 말도 많고 시끄러울까. 역시 덤벙거리는데다 툭하면 사장과 싸우고 새 직장을 찾는 민지 아빠를 닮은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민지 엄마는 편지를 잘 갈무리해 책상 서랍에 넣고 저녁을 준비하러 부엌으로 나갔다.
그날 밤 민지가 잠자리에 들 때까지, 민지의 숙제에 대해 떠올린 사람은 없었다.
*픽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