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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힘들게 했던 자기중심성
Level 3   조회수 230
2023-08-01 23:38:30

안녕하세요, 지금 이 글을 쓰는 밤에도 온도가 28도나 될 정도로 날이 더워졌네요. 

@를 진단받은 지 약 8개월이 지났고 제 삶은 내면적으로 많이 변했습니다. 

먼저 스스로의 삶에서 이해되지 않던 과거의 사건들이 이해되었으며, 왜 특정 방식으로 결정하고 선택하는지, 그리고 감정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제가 뭘 원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자기중심성'에 대한 글을 적어보려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제가 살아온 삶에 대한 반성이자, 같은 질환 혹은 @라는 특성을 갖고 계신 에이앱 분들과 제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하고자 함입니다.

제 경험과 생각들이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어떤 형태로든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스스로 @라는 것을 몰랐을 때 제 삶은 투쟁적이었고 위태로웠고 늘 불안했습니다.

금이 간 유리발판을 밟고서 간신히 추락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든 생명을 이어나가기 위한 한 생명체의 발악이라고 생각하니, 좀 안쓰럽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미안하기도 합니다.

극단적 방법으로 스스로를 옭아매고 몰아붙이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았고,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늘 극약처방으로 피곤하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저를 힘들게 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자기중심성'이었습니다. 

제 머릿속은 항상 복잡했고 통제되지 않았으며 부정적 시나리오가 경고 사이렌을 울리는 것처럼 계속 나쁜 미래를 보여주곤 했습니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당장 뭘 해야 하는지, 내가 살아남으려면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렇게 준비하지 않으면 과거에 지독하게 아프고 수치스러운 경험을 했던 것처럼, 똑같은 재앙을 겪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가벼운 예로는 학창시절 발표를 할 때 너무 땀을 많이 흘려서 내용과 발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다가 결국 흐름이 꼬이고 팀 과제를 망쳐서 팀원의 원망을 듣는 등)


그래서 늘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했고, 다음 할 일은 무엇인지를 생각했고, 최종적으로는 어떤 것을 준비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고민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전략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래서 전략팀에 입사했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여기에 '우리'는 없었고 저는 늘 '혼자'였습니다. 남들이 쉬거나 놀 때 저는 다음을 준비해야 했으니까요. 

연습하지 않으면 일반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거나 말하는 게 불가능했고, 그래서 저는 여유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특유의 단점과 제 개인적인 삶의 어려움이 겹쳐, 제 머릿속엔 항상 제 생각밖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저를 외롭게 만들었고, 주변에 사람이 없게끔 만든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나' 중심이었고 '우리'가 같이 할 수 있는 무언가에는 관심이 없었고 흥미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모든 일들이 저한테는 고역이었고, 노동이었고, 생존이었기 때문입니다.


약을 먹은 이후로 집중력을 회복한 것뿐 아니라 제 내면은 많이 변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더 이상 어떤 상황에서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스스로를 온전히 믿고 그냥 상황에 내던질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요?

더 이상 모든 일을 결과중심적으로 사고해서, 과정의 의미를 생략하고 오직 생존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방식을 버렸습니다.

저는 결과와 상관없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시 흘러가는 법을 배우게 되었어요.


이 같은 여유가 생기니, 지금까지 나 중심으로만 사고해왔던 인지 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타인이 제가 한 말과 행동으로 어떤 영향을 받을지 어떤 감정을 느낄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건 사실 매우 당연한 사회성의 한 요소이지만 과거에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생각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상대의 반응을 예상하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누군가의 생각이나 감정까지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젠 어떤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 타인의 입장을 생각해보게 된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사고의 범위가 넓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에서 마침내 어른으로 도약한 순간처럼요.


저는 나이를 먹는 게 늘 두려웠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두렵지가 않게 되었습니다.

자기중심성을 내려놓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니, 그저 끝없는 평온만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결과를 떠나서 어떤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저라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기적 같은 일들이 제 삶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저는 순수하게 어떤 행위를 즐길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이 '논다'라고 표현하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를 비로소 경험적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생각을 멈추는' 것은 단 1초도 불가능했기에 이제서야 그 이해에 도달한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행복'이라는 것을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돈이 많아서, 잘생기거나 예뻐서, 혹은 누가 봐도 번듯한 직장 커리어를 갖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저는 객관적 상황만 놓고 보면 지독하게 불행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 순간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멈추면 과정에 집중할 수 있게 되고, 과정에 집중하면 결과를 떠나서 그 자체로 순수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니, 생각만 했을 때보다 더 많은 결과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제가 쓰는 글들도 항상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한 탐구적 글들뿐이었는데, 이젠 인생에서 처음으로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제가 스스로를 이해하게 됐고, 여유를 찾았고, 가장 중요하게는 불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향정신성 약물의 호르몬 작용 때문에 이렇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평생을 이해하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한 숙제가 풀려서, 이제서야 '이해'에 도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과거의 미숙했던 제가 살아오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미친 모든 부정적 영향과 상처들에 대해 반성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제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증오심 대신 기쁨을 줄 수 있길 조용히 바라봅니다.

#adhd# 자기중심성# 마음의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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