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하교하고 귀가하니, 엄마가 이비인후과에 가자고 했다. 갑자기 웬 이비인후과? 이유는 이러했다. 옆 반의 담임 선생이자 국어 선생이 우리집으로 전화를 해서, "어머니, 라이프를 이비인후과에 한 번 데려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가끔 말을 잘못 알아듣는데 걱정이 됩니다"라고 권했다는 것이다. 내 담임도 아닌 분이 부러 전화까지 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닌가 싶어 곧장 이비인후과에 가서 청력 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냥 너는 가는귀가 먹어서(=어두워서) 그래. 네 아빠 닮아서." 병원을 나서며 엄마가 말했다. 이 말은 '가는귀가 먹었다'는 믿음을 한층 강화했고, 말을 잘못 알아듣고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상대에게 다시 한 번 말해줄 것을 부탁할 때마다 멋쩍게 웃으며 "미안, 내가 가는귀가 먹어서"라는 말을 덧붙이게 했다.
물론 이런 말과 행동은 회사에서 할 수 없었다. 회사에서 "이해도 못하면서 왜 이해한 척하냐" "상황 모면하려고 대답만 잘한 거 아니냐" "내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듣기는 한 거냐"는 등의 꾸지람을 듣는 일이 있었다. 그때마다 '저는 당신의 말을 경청했답니다. 이해하려고 최대한 노력했고요. 그런데 어떤 단어는 묵음처럼 들리지 않거나 잘못 들려요. 당신이 번거로울까 봐, 내가 성가신 존재가 될까 봐 차마 되묻지 못한 때도 있었을 뿐이에요'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사무치게 억울하기도 했다.
내가 ADHD는 아닌지 강하게 의심한 그날, ADHD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ADHD는 청각주의력이 약하다'는 걸 알게 됐다. 청력에는 문제가 전혀 없지만 청각주의력이 약하니 상대방의 말을 잘못 듣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을.
약을 복용한 지 4개월째인 지금, 청각주의력이 좋아졌냐고 묻는다면, 글쎄. 콘서타를 먹을 때는 '조금이나마 개선됐다'고 느꼈으나(불안이 심할 때는 복용 이전보다 오히려 말을 잘못 알아듣는 일이 잦았다) , 아토목세틴으로 변경한 후에는 변화를 체감하지 못했다. 특정 인물의 말은 여전히 잘못 알아듣거나 일부가 들리지 않는 걸로 봐서, 그 분의 목소리 크기 때문이거나 '내가 가야할 길이 아직 멀다'는 반증일지도.
앞으로도 나는 사람들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되물을 것이다. 바라는 게 있다면, 내 대답이 '고요속의 외침' 게임을 하는 사람처럼 웃음을 줄 수 있기를. 또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되물어볼 수 있는 요령이 생기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