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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사실 내가 ADHD 약을 꾸준히 먹기 시작한 시점은 2016년으로 생각해야 한다. 2015년은 규칙적으로 먹지 않은 날도 많다. 약을 먹었을 때의 효과는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느껴졌는데, 내가 콘서타를 먹고 난 뒤에 깨달은 점이 있다. 나는 물건을 제 자리에 두지 않는 습관이 있다는 것이다. 엄마가 항상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는다고 잔소리를 하곤 하셨는데 약 먹기 전에는 그게 나한텐 당연한 것이었으니 엄마의 말은 잔소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약을 먹고나니 물건을 어디에 둘 지 생각하게 되고, 물건을 두었던 위치가 기억에 나니 정리정돈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약을 먹기 전에는 온갖 잡생각으로 물건을 제 자리에 둔다는 현실적인 개념은 안중에도 없었는데, 약을 먹으니 필요한 쪽으로만 생각이 들어서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것에 주의력이 발휘되어 그런 듯 싶다. 2016년 학교에서 미약하게나마 성장한 점이 있었다. 약을 먹은 점과 학교 생활의 모든 일을 구조화할 수 있도록 하는 업무수첩을 작성한 것이다. 그전에도 업무 수첩은 사용하였지만, 모든 일들이 구조화되지 않는 두뇌 특성상 내 업무 수첩도 구조화하여 사용하지 못하고 여기 저기 산발적으로 사용하다가 유명무실하게 변하곤 하였다. 2016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업무 수첩은 나에게 필수적인 물건이 되었다. 모든 작업을 필요한 상황에 실행하도록 구조화한 스케줄 표가 없으면 지금도 나는 일의 순서가 일반적이지 않고 혼란스럽다. 또한 사소한 것도 기억을 못할 수 있으므로 포스트잇 쓰는 것을 생활화하는 습관을 그때부터 들였다. 학급 운영은 2015년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학급은 규칙과 틀이 없어서 엉망이었으나, 그래도 교실 붕괴상황은 오진 않았다. 여름방학 직전에 학급 아이가 레이저 포인터로 레이저 불빛을 친구들 눈에 쏘는 장난을 해서 내가 훈육을 하자, 아이가 그 말이 듣기 싫다고 내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는 일이 있었긴 하지만 말이다. (그 아이는 그 사건 이후로 다른 학교로 스스로 전학갔다.) 교실이 정신없었으니 담임도 짜증을 많이 냈고 아이들도 썩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ADHD 약이 효과가 있긴 하였으나 사람을 민감하게 만드는 것도 그 당시에는 잘 몰랐었다. 학교 다녀오면 누워서 불안해했던 것 같다. 사실 다양한 일정으로 가득한 학급 운영을, 기본적인 내용만이라도 1년동안 순서대로 실행하는 것이 나에겐 너무나 어려웠다. 콘서타 36mg을 먹고 정상적인 교사들 흉내를 내고 나면 퇴근 후엔 모든 기력이 빠지고 불안하고 아파서 매일 누워있었다. 불안이 엄청나게 심했고 신경성이 높아졌는데 나나 주변 사람들 누구도 이를 이해 못 했다. 이해받지 못하고 드러낼 수도 없으니 혼자서 괴로움이 심했다. ‘내가 자연스럽게 있으면 사람들이 날 싫어하고 떠나가며, 내 결함 때문에 내가 사회에 맞추어 들어가기 어렵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여기서 적응 못 하면 끝이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날 바꿔야 한다.’라는 생각이 스스로 강했고 이 시기에 나를 세상에 맞추려고 하나부터 열까지 강박적이었다. 2016년 여름부터 만나게 된 남자친구가 있었다. 곧 나는 엄청 의존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당시 내가 남자로 매력을 많이 느낄 만한 유형의 사람이었고, 내가 ADHD임을 말하고 난 뒤에도 날 떠나지 않았으며, 내 고민과 불안을 진지하게 들으면서도 나와의 관계를 끝까지 이어가려고 노력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독서와 글쓰기를 둘다 좋아하는 공통점도 컸다. 당시 그 사람도 날 많이 좋아했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좋아하는 마음 외에도 현실적인 것도 고려해보면 내가 ADHD라도 잘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사실 ADHD라고 해도 1:1로 만나서 연애할 때는 불안해하는 것 빼고 큰 문제는 없어 보였기 때문도 있었을 듯 하다. 그는 나랑 결혼하고 애기도 낳고 싶어 했으나 나는 내 자신이 결혼과 양육을 잘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고 결혼하면 서로 안 맞을 것 같았기 때문에 결혼은 싫다고 했다. 하지만 헤어지는 건 둘 다 생각 못 할 정도로 좋아했고, 남친은 나를 설득하면 결혼도 가능하지 않을까 속으로 판단한 듯했다. 내가 한참 힘들게 학교에 적응하던 시기에 3년 가까이 그와 연애하는 힘으로 겨우 생활했다. <2017년> 약 복용한지도 햇수로 3년이 되가던 시기였다. 이때부터 학급 운영에 노하우가 생기기 시작하는 시기기도 했다. 약효가 잘 느껴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학급에 짜임새가 생기고 아이들이 어느정도 내 말을 듣는 시기여서 의미가 있었다. 또 기억에 남는 것은 학급에 주의력결핍 우세형 ADHD 학생이 있었던 점이다. 그 학생은 10살 여학생이었는데, 아이는 조용하며 맑고 순수한 표정으로 해바라기 같이 나를 바라봐주어 나는 그 아이가 예뻤다. 나와 같은 병원을 다니는 공통점도 있었다. 학생은 1학년때부터 adhd 진료를 받기 시작하였는데 친구관계나 학교 생활에 자신감이 없는 상태였다. 학생의 어머니는 늦둥이 딸에 대해서 걱정이 매우 많았다. 눈치가 없어서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되거나 느리고 어색한 모습을 친구들이 놀리면 그 학생 어머니는 굉장히 가슴아파하셨다. 어머니께서는 아이의 학업이나 생활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를 하시면서도 많이 우울해하셨다. 그 아이에게 나는 마음이 많이 쓰였고 친구들이랑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에 도움을 주려고 했으나 쉽지않았다. 현실적으로는 애들이 그 아이를 놀리는 일만 못하게 했고, 친구들을 만들어주는 것은 어려웠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사진을 찍었었는데, 다른 아이들은 담임이 있거나 말거나 서로 노느라 분주한 모습이 담겼다. 그런데 그 여학생은 아이들 사이에서 끼지 못하고 어색하게 있다가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정말 반가운 표정으로 내게 달려오는 사진이 찍혔다. 지금도 그 사진을 떠올리면 가슴이 찡하다. 2018년이 되어서 그 아이가 2015년에 나와 충돌이 있었던 교무부장선생님 반의 학생이 되면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내 부족함을 절감할 수 밖에 없었다. 동료 교사들은 나와 협업과 소통을 하려고 하였으나 잘 되진 않았다. 애들이 있을떄는 눈코뜰 새 없이 바빠서 아예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애들이 가고 나면 그제서야 업무상으로 소통할까 싶어서 내 교실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마침 콘서타가 아침 8시쯤 복용하고 나면 오후 2시쯤 아이들이 하교할 때쯤이 되면 머리가 아파지는 시간이 된다. 그때부터는 사소한 소리에도 날카롭고 짜증이 많이 나곤 했다. 교실문을 노크하는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내가 편안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회식을 가서도 나는 머리가 아팠고 사람들과 이야기할 힘이 없었다. 그냥 조용히 머리를 쉬고 싶을 뿐이었다. 3년째 같은 학년이었던 선배 교사는 내 엄마뻘 되는 분이었는데 굉장히 열정이 많고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으며 사소한 것까지 섬세하게 계획하여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이었고 걱정이 많았다. 나랑 일할 때 서로 쉽지 않았다. 그녀는 나와 소통하려고 했으나 내가 일을 너무 느리게 하는 부분도 있었고, 업무상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마음같지 않은 부분도 있었으며, 약을 먹고 내가 날카로워지자 넌더리를 내며 물러났던 기억이 난다. 그해를 마지막으로 그녀는 다른 학교로 옮겼고, 송별회에서 나는 그녀에게 아무 말을 못하고 눈물을 꾹 참았던 기억이 있다. 어쨋든 미운 정 고운 정 든 사람이고 나와 같이 지내려고 애쓴 사람인데, 나는 내가 왜 그렇게 예민했는지 설명하고 싶어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녀도 날 보면서 눈물을 참고 서로 말없이 헤어졌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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