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있을 적, 나를 반년 동안 키워주다시피 함께 지냈던 언니가 한 명 있다. 오늘 이 언니의 결혼식이 진행 되었다. 절대 울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건만 카펫을 밟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오는데 왈칵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도 언니의 편안한 미소를 실제로 마주하고 나니 터져나올듯 했던 울음이 뚝 그쳐졌다. 다행이었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식장 위에 달려있는 커다란 샹들리에가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커다랗고 높은 공간을 샹들리에 하나가 훨씬 아름답고 빛나보이게 만들었다. 저런 샹들리에가 내 집에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보니 정말 별로였고 안 어울렸다. 아무리 아름답고 고급진 샹들리에도 크기와 모양 따라서 어떤 공간에는 전혀 안 어울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자체로 돋보이기 위해서는 '어울리는 공간' , '맞는 자리', '위치' 에 가있어야 한다. 맞지 않는 공간에 있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샹들리에라도 무용지물이고, 값어치를 발휘할 수가 없다. 이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조화로움' 을 추구하고, 사랑한다. 이 사실이 내겐 참으로 큰 위로가 되었다. 나의 어린 시절을 위로 받는 기분이 들었다. 과거의 나는 마치 작은 집에 있는 커다란 샹들리에 같았다.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무척 튀고, 유별나고 바보 같았고, 이상했다. 나를 보통 또래 아이들과는 다르게 보는 분들도 있었다. 사소한 행동들을 보며 여자애가 어떻게 이런 것도 못하냐, 행동이 왜 그러냐, 남자아이 같다, 더럽다, 눈치가 왜 그렇게 없냐, 어른들과 주변 친구들 심지어는 가까운 사촌들로부터도 너 좀 이상해.. 하며 나중에는 대놓고 따돌림 받으니 늘 슬프고 괴로웠다. 내가 이상한 아이이구나.. 내가 좀 유별나기 때문에 나의 행동들을 다 고쳐야하는구나 생각하고 모든 행동들을 강박적으로 신경쓰기 시작했다. 나의 세상과 다른 사람들의 세상은 다르게 느껴졌다. 단절되고, 고립된 느낌. 누구보다도 가장 나와 가까이 있는 가족들에게조차 나는 이해할 수 없다며 욕먹기 일쑤였기 때문에. 나에게 이 세상은 너무 무섭고 험난했다. 내 본모습으로는 어디에서도 사랑받은 기억이 없다. 적어도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에서는. 유일하게 나를 그 자체로 받아들여주고 이해해주었던건 교회에서 말씀을 들으며 알게 된 예수님과 하나님 뿐이었다. 그렇게 대부분의 시간들을 나의 작은 행동들도 눈에 튈까, 이상할까봐 매사에 마음을 조리며 살아왔다.
하지만 오늘 예식장에서 본 샹들리에는 자신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아 사랑을 받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사랑을 주고 받고 있었다. 홀로 있어도 공간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예쁘고 아름다웠다. 나도 내가 잘 담길 수 있는 공간으로 가면 저렇게 예쁘게 살 수 있을까. 행복한 상상에 젖었다. 내가 잘 담길 수 있는 환경에서는 나도 샹들리에처럼 주변을 빛내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나를 받아들일 수 없는 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힘들었던 것일지도 몰라. 하지만 분명 이 세상 어딘가에는 나에게 꼭 맞는 자리가 있을거야. 내가 있는 공간에서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나를 설명해야 한다면, 설득시켜야 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지 않을까. 어쩌면 내게 맞지 않는 공간이어서이지 않을까. 어릴 적의 너는 잘못된 것이 아니었어. 그저 너와는 다른 환경에 있었던 것일 뿐이야.
돌이켜보면 나의 가족들을 포함해서 이 세상에서는 나의 내면적 울타리가 되어주는 곳은 없었다. 기대할 수도 없었고. 결국 모든 기대를 내려놓고 사람들과 소통 하지 않고, 투명인간처럼 지냈다. 마음문을 잘 열지 않았다. 관심은 늘 받고 싶어했지만 시선과 판단이 두려웠던 만큼 평범하고 바른 학생이 되기 위한 강박 속에 갇혀 집착하며 살아왔다.
- 나에게 쓰는 편지 - 00아, 어릴 적의 너는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아름다웠고 예뻤어. 티 없이 해맑았던 너의 모습이 나는 때때로 그리워. 작은 것들에도 기뻐 반응하며 호들갑을 부렸던 너가, 좀 많이 활발했던 너가, 좀 오버 리액션 했던 너가 이상한게 아니야. 철 없이 굴었던 것도, 눈치가 없었던 것도 너의 잘못이 아니야. 이제는 부디 너를 놓아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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