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 봄 ADHD로 진단을 받고 일주일에 한번씩 내원을 하며 수험생 생활을 하고있다. 나는 유전적으로 다양한 정신장애 관련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마치 아웃백에서 파는 수퍼샘플러 같다. 수퍼샘플러는 이름처럼 인기 메뉴를 조금씩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메뉴이다. 무언가 강력한 한가지 몰빵이 아닌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럭저럭 노력해서 사회적으로는 티를 안내고 살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다. 아마도 예술쪽 진로를 선택했어서 그냥 좀 독특한 애- 라는 컨셉으로 적당히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메틸페니데이트만 먹는다. 그런데 최근에 경조증으로 의심되는 증상이 나타나 기분의 변화를 잘 지켜보고있는 중이다.
일주일에 한번가는 병원 상담에서 콘서타 증량을 왜 안해주냐고 따지다가 새로운 병명을 추가로 얻게 된 것이다. 난 그냥 컨디션이 얼마나 좋은지, 내가 상담과 약의 도움을 받아 얼마나 잘 해나가고 있는지를 자랑스럽게 브리핑하고싶었는데 갑자기 조울증 환자가 되었다.
여하튼 증량을 안한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약을 아주 조심스럽게 사용하시는 의사선생님 덕분이다. 감정적으로는 이점, 불만이지만, 이성적으로는 감사하고있다.
지난주에 엄청 잘 지냈다는 나의 말에 의사선생님은 경계하신다. 그럭저럭 잘 지내는 건 괜찮지만, 엄청 잘지내는건 안된다. 너무 뜨는 것을 주의해야한다. 떠오른 높이만큼 더 깊은 구덩이가 나를 기다리고있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하지만 난 이유 없이 기분이 치솟고 떨어지고하지는 않는다. 내 기분의 변화는 항상 근거가 있다. 조울증은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내 기분은 누군가와의 관계로 인해 치고 올라가고 떨어지고를 반복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누구나 대인관계욕구가 채워지고 아니고에 따라 어느정도씩 기분이 오락가락 할것이다. 하지만 어릴때 건강한 애착형성에 문제가 있었던 나는 사람에 대해 과하게 들뜨고 과하게 실망한다.
이나이 되도록 애정결핍이라는 단어에 매어있을줄은 몰랐다. 지금쯤이면 과거에 내가 받지 못한 사랑에 하소연하는 것을 멈추고 대신 사랑을 줄수있는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어 살고있을 줄 알았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혈기왕성한 젊음으로 이성도 만나고 그들에게 투사하여 잠시나마라도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사랑도 주었고, 불안도 주었고 나를 천국에도 데려갔고 지옥에도 데려갔다. 돌이켜보면 그건 낭비였다. 사랑이 사람을 성장시킨다는건 허구같다.
어쨌든 이제 난 혼자다. 나이를 먹어 평범한 루트로 이성을 만날 시기도 지났고 덩그러니 찌질한 어린이의 영혼에 육신만 늙어버린 체 홀로 남았다.
늘 관심을 갈구하지만, 살아오며 주눅든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현실과 이상에서 늘 부딪힌다.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오면 나는 무척 행복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지속적으로 잡아둘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이지는 않은가보다. 그래서 늘 기대했다가 늘 실망한다. 난 내가 밝은 성격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칙칙하고 눅눅한 곰팡내나는 습도가 나를 따라다닌다는 것을 결국 인정하고만다.
수험생활 1년 8개월차. 인간관계에 대한 기대와 실망의 반복이 없는 시간을 보냈다. 사회생활 없이, 절친한 친구들에게도 양해를 구하고 연락을 끊은 상태이다. 공부는 힘든 것이지만 은둔자의 삶이 준 편안함이 분명히 있다.
최근에 오프라인 스터디를 하면서 아주 외향적인 스터디원들과 함께 공부를 하고있는데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나니 재밌기도하고, 나만 겉도는 느낌에 외롭기도하고, 지금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닌데, 나름 사회생활이라는 것의 긴장도를 오랜만에 경험하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주저리를 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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