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ADHD라고 하면 유년기, 청소년기에 무언가 하나에 집중하지 못 하고 얌전히 있지 못 하는 천방지축인 아이들을 떠올리곤 한다. 마치 성인에게는 있을 수 없는 병인 것 같은 취급을 받는다. 불과 몇 년전만 하더라도 성인이 된 이후에 ADHD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을 때는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 하고, 상당한 금액을 약값으로 지출해야만 했었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도 지금은 보험이 적용되기 때문에 약값 자체는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 처음 의심을 하게 된 건, 인터넷에 떠도는 ADHD에 대한 증상을 접하게 된 후 스스로 에게도 적용되는 부분이 많아서 한 번 검사를 받아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첫 방문했던 병원에서는 성인이 무슨 ADHD냐는 이야기를 들었고, 두 번째 방문했던 곳에서는 제대로 된 검사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서 결국 세 번째 병원을 방문했다. CAT 검사를 하였고, 과거에 호기심으로 봤던 웩슬러지능검사 결과지를 제출했다. CAT는 꽤 상위권으로 나왔으며, 사실 웩슬러도 평균보다 높은 수치 였지만 증상들을 하나 둘씩 나열하며 의사선생님에게 겪고있는 불편함에 대해 잘 말씀 드렸다. 그렇게 2021년 1월부터 ADHD 증상완화를 위한 투약을 시작했다. 난 정리를 굉장히 잘 하는편이다. 비단 집정리 뿐 아니라 그 외적인 부분에서도, 언제나 간결함과 깔끔함을 유지하는 것이 일종의 버릇이었다. 단, 내 머리속만 제외하고. 난 빠른 편이다. 걸음걸이, 발화의 속도, 인간관계가 마무리 되어지는 과정 까지도. 억압스러운 환경은 언제나 날 긴장하게 만들었고, 그 긴장감은 잊고자 애써 조급함 속으로 날 밀어 넣는다. 당연히 실수가 잦았다. 가장 아픈 실수는 아마 배설에 가까웠던 말실수들이 아니었을까 무기력함은 사회적으로 많은 화두가 된 다. 그 것의 탈피를 담은 서적은 언제나 베스트 셀러이며, 그 것을 훔치고 싶어하는 패션러들 까지 등장해 SNS는 온통 우울증 천지다. 과기력은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고, 언사 난 정말 괴로운데, 사람들은 이 것에 대해 왜 관심을 주지 않을까? 산만한 사람이 좋은 아이디어로 성공을 거머 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나도 산만한데, 저 사람을 향한 환호소리에 나같은 사람들이 내는 신음소리가 묻히는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28년을 살았다. 초등학생 때는 부모님이 같이 등교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주 불려 오셨고, 중학생 때는 350명 중 340 ~ 348등을 오고갔다, 아쉽게도 꼴찌는 못 해봤다. 고등학교는 2주 다니고, 도저히 다니지 못 할 것 같아, 계획도 없이 자퇴를 했다. 내가 1시간 이상 집중할 수 있는건 게임과 친구 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피아노는 7시간을 집중할 수 있더라. 그래서 계속 쳤다, 시간이 빨리가는 게 좋았다. 그렇게 29살이 됐다. 5일 전 난 난생처음 ADHD 약을 먹었고, 내가 걸어온 발자국을 되돌아 본다. 열심히 살았구나, 악착같이 눈에 핏대 세워가며 작업하느라 시력은 1.5 에서 0.7로 선명함을 잃고, 청력은 24시간 이명이 속삭이는 소리로 고요함을 잃었다. '이 약을 내가 2년만 빨리 먹었으면 선명함과 고요함을 아직도 품고 있었을까?' 첫 날은 마치 다른 세상을 거니는 것 같았다. 약효과가 마무리 된 직후 살포시 엄습하는 감각들이 두려웠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니, 첫 날에는 약효가 굉장히 강하게 느껴진다고 하더라. 그 말이 맞긴한지 둘 째날 부터 부작용은 거의 없었고, 3일차 되는날에는 부작용은 커녕 약기운이 빠지는 시점부터 상쾌함이 느껴졌다. 5일차 되는 날까지 매일 비슷한 시간에 약을 복용하고, 최대한 감정과 사고의 변화를 세밀하게 관찰했다. 겨우 5일 동안에 난 정말 많은 것들을 잃었다. '망상', '혼잣말', '같은 가게에서 매일 같은 음료 사먹기', '특정규칙으로 숫자 세기', '말겹침', '공격성' '시간낭비', '스마트폰', '인터넷서핑', '다리떨기', '이갈기' 그리고 고작 몇 가지를 얻었다. '차분함', '안정성', '전달력', '매력', '음감' 내가 마주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가지고 있는 저 '고작' 들을 얻기위해 이렇게 큰 용기가 필요했다는 게 참 아이러니 하다. 약을 먹으면서 내가 평소에 즐겼던 많은 것들도 함께 무감 해지는 걸 느꼈다. 가령 예를 들어서 지인과 약속을 잡을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며칠 전부터 기대감에 붕 뜨느라 온 신경이 그 약속에 집중되곤 했다. 당연히 잔실수는 반복 되면서. 허나 약을 먹은뒤에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난 내가 '사랑'을 잃은 로봇이 된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허나 신기하게도 누군가를 만나는 기대감은 줄었지만, 막상 만나게 됐을 때 집중도와 행복도는 훨씬 더 커졌다. 난 '사랑' 을 잃은게 아니라 '현재' 를 얻은 듯 하다. 항상 기대감 혹은 그에 반대되는 지나간 감정들에 집착하느라 현상을 살지 못 했던 것뿐이지.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를 향한 애정은 여전히 날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된 다.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고, 마치 냉탕에서 열탕으로 갑작스럽게 뛰어든 것 같은 온도변화가 아직 다 적응도 되지 않은 시점이다. 지금 관찰하고, 지금 사유하자.
삐뚤빼뚤 했던 발자국을 뒤로한 채 지금 변화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