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처음으로 그간 살며 겪은, 그리고 지금도 겪고 있는 나의 정신상태에 대해 정리를 하게 됐다. 글로. 구구절절 참 길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 6년 전 처음 만난 가벼운 우울증 - 4년 전 꽤나 심각했던 우울증 재발 - 2020년 봄, 성인 ADHD 판정.
#1. 벌써 5월이 열흘이나 지나간다. 난 3월부터 ADHD 치료를 시작했고 예상보다 꽤 높은 점수가 나왔길래 의아했다. 어린시절에 어땠냐는 질문에 나는 거의 하나도 포함되는 현상이 없었다. 실제로 난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로 단 한번도 선생님들께 혼이 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산만함 말고 충동성이라는 게 문제에 포함된다는 것을 듣곤 기억이 났다.
나는 어렸을 때 짜증이 많았고 화가 나면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댔다. 오롯이 집에서만. 그래서 부모님께 혼이나도 나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날뛰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음악을 전공했는데 소리를 지르는건 전공으로 선택한 후 스스로 고치게 됐다.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서가 아니라 목이 아픈 게 더 중요해져서. 어쩌면 나는 모범적인 학생이 아니라 어른들이 좋아하는 학생의 상을 잘 알았기에 그냥 그대로 따라했을 확률이 높구나 생각했다.
의사는 나의 얘기를 다 듣고나선 차분히, 살면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참 많았을 거라고 했다. 힘들었을 거라고.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꾸밈이었건 노력이었건 내가 생각한 나의 어른의 모습은 적어도 이런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순간 너무 멀리왔나 하는 겁도 났다.
그리고 ADHD 환자 중 예체능에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이 꽤나 많다는 의사의 말도 놀라웠다. 이제 와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만약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음악을 선택했을 당시 내가 느꼈던 사랑과 행복감을 어쩌면 다른 곳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걸까 살짝, 생각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러나 저러나 나는 성인 ADHD가 맞았다. 내겐 주의력 결핍과 또 하나 가장 큰, 실행기능에 문제가 있었다. 집중이 안된다, 그것도 물론 문제지만 첫째로는, 뭐라도 시작을 해야 집중을 붙여서 유지를 할 수 있지 않겠나- 나는 그 시작이 참 안 되는 사람이다.
의사는 집중력은 약으로 잡을 수 있겠지만 실행기능장애는 약물치료로 잘 고쳐지지 않는다 했다. 아무리 좋은 약인들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 수는 없겠지 그래서 내게 인지행동 치료를 같이 받을 것을 권했다. 치료북을 건네곤 아주아주 힘든 싸움이 될 거라고 하셨는데 처음엔 재밌을 것 같았다. 어려운 것도 아니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진 짜 힘들구나- 그 힘듦은 어렵다는게 아니라 실행기능에 문제가 있는 사람에겐 무엇이든 시작하는 것이 오래 걸린 다는 걸, 그러니까 그것도 엄청 노력해야 한다는거였다. 나는 자꾸 내 상태를 얕본다.
#2. 그래서 요즘 난 스스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다 커서 만나 친구가 된, 또는 친구가 되려는 사람들 중 간혹 내게 꿈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근 몇년 간 잘 모르겠는데 굳이 말하자면 우울증에 다신 걸리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올 때마다 너무 비참했다. 살며 선택한 모든 게 물거품이 된 느낌. 어쩌면 사실이라..
지금도 꿈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까지 우울증을 두번이나 겪고 이제는 ADHD 치료까지 하는 게 정말 괜찮냐 묻는다면 괜찮다고 크게 단언할 수 있다. 내 뇌엔 도파민이 안 나온다는데 달리 방법이 없고, 또 어쩌면 더 좋아진 점도 있다. 며칠에 한번씩 의사를 보니까 자연스럽게 꾸준한 상담이 되는 것도 다행스럽고 이렇게 야금야금 나에대해 알아간다는 것에 위안을 얻으려 한다. 그리고 정신건강을 관리 할 수 있다는것도 세상이 좋아졌으니 가능하다 다독인다. 무슨약을 먹냐고 물어볼 정도로 가깝진 않은 사람들의 궁금한 눈빛을 볼때마다 만약 묻는다면 뭐라 대답할까 좀 고민되긴 하지만.
지금은 이르고 좀 더 나중에 내가 날 설명할 때가 되면 우울증에 다신 걸리지 않는 것에 더해 ADHD 치료를 시작으로 모든 과정이, 아무것도 몰랐던 전보다 훨씬 더 나를 살게 했다고 그래서 뭔가를 해낼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내가 생각하는 어른에 조금은 더 가까워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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