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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하루
Level 4   조회수 136
2019-12-13 20:52:42

어제 저녁부터 징조가 좋지 않았다. 독서실에 앉아는 있었지만 카톡방에서 미친듯이 과잉행동을 하는 나를 막을 수가 없었다. 독서실이 계속 추워지는데도 나올 수가 없었다. 주의가 끊어지지 않았고 주의가 환기되지 않았다.


오늘 아침도 마찬가지였다. 늦게 일어났는데 어제 추위에 버틴 탓인지 혓바늘이랑 편도가 존재감을 과시해서 숨 쉬기가 어려웠다.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졌고, 분노와 슬픔 기쁨이 뒤죽박죽이었다. 나는 행동을 천천히 하면서 일부러 핸드폰과 아이패드도 챙기지 않고 병원으로 갔다. 어차피 공부 안 되는 날일 게 빤해서.


며칠 전에 에이앱에서 스토아 관련 댓글을 썼었다. 분노, 짜증 슬픔 억울함이 밀려올 때마다 그 댓글을 떠올리며 필연적인 사실들 그 모두는 그냥 그런 거지 그게 나쁘거나 좋거나 한 게 아니라고 되뇌었다. adhd는 다른 사람들보다 업무능력이 떨어진다. 나는 adhd 중에서도 업무능력이 안 좋은 편이라고 종종 생각한다. 그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고 그냥 그런 거다. 그냥 나는 그런 거다. 그래도 나는 adhd중의 최악도 아니다. adhd는 최악의 조건은 아니다.


지하철에서 어떤 사람이 "아니 근데~ ㅇㅇ이는 너무 느려~ 걔가 그렇게 자꾸 느리지 말았으면 좋겠어~"하고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곧바로 침울해졌다. 느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도 아니고 느리지 말았으면 좋겠다니. 않다는 본용언의 품사를 따라 형용사고 말다는 동사 보조용언이다. 내가 느린 것은 내가 그런 사람으로 형용될 수 있는 특질이지 내가 그렇게 나를 하는 것이 아니다. 동사로 말하면 금할 수가 있다. 달리지 마. 형용사는 사실 금하기 어렵다. 너 자꾸 아름답지 마. 내가 이런 사람인 것을 금지당하는 것은 참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한테 한 말도 아니지만.


약을 받고 돌아오는데 지하철이 붐볐다. 소리, 더위, 땀. 나는 눈을 감으면서 1,2,3을 세었다. 1 태조왕 2고국천왕 3고이왕 4내물왕 5 장수왕 6무령왕 7진평왕 무왕.. 세기 단위로 역사가 떠올랐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20까지 세었는데 21부터 세기가 어려웠다. 이제 고작 19년밖에 지나지 않아서 세기를 뭔가로 대표할 수가 없었다. 그냥 하나는 분명했다, 지금 이 지구에서 이 지역에서 이 나라에서 이 신분으로 있을 수 있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큰 특혜였다. 그리고 내 삶이래봐야 한 세기를 가거나 못 가거나인데 슬퍼하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럼에도 슬펐지만 조금 나아지기는 했다.


집으로 와서 영양제를 챙겨먹고 분리수거를 하고 조금이라도 공부를 해 볼까 하고 공부를 시작했다가 글을 쓴다, 우울은 현상이다. 우울은 특정 조건들 하의 패턴이라 우울의 원인을 깊이 생각해봐야 답이 없다. 추위, 변온, 우연히 들은 대화, 우연히 나의 일부였던 컨디션.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다만 내일을 위해서 공부를 계속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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