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견이 가득)
@진단을 받았거나 @적인 특성이 짙은 사람(@형인간이라 통칭) 에게서 전형적으로 보이는 증상이 무기력증이다. 분명 해야 되는데, 왜 시작을 못하겠는지...
무기력증에 극심한 좌절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떤 대상에 과몰입하게 되는 경우를 보고 그냥 스스로가 못난 사람이라고 치부하지 않는가. 흔하게 게임에 빠진다든지, 시험기간에 드라마를 한번 켰는데 정주행을 해버렸다든지. 하면 안 되는데 하고 있는, 그것을 심리학에서 '인지부조화', 생각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것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인지부조화'라는 용어를 알게 된 후로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뭔가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하고 있는 나를 보며 '내가 단순히 의식적으로 조절 가능하지 않은 내가 존재한다' 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널리 알려진 구분은 이성-본능이 아닐까.
다행스럽게도 연구를 통해 무기력증의 기전이 밝혀진 것은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적정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하고, @형인간은 그 균형이 깨져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시작이 힘들다. 그리고 널뛰는 도파민을 위해 충동적인 선택을 한다.
도파민이라는 화학물질은 실제로 얻는 것이 없더라도 무언가가 주어질 것이라는 기대에 반응한다고 한다. 매력적인 이성을 봤을 때 실제로 그 사람과 좋은 관계가 된다는 게 확정적이지 않음에도 도파민은 분비된다. (선천적 동기라고 부르겠다.)
한편으로는 별 기대 없이 시작한 일에서 매력을 느껴서 실천이 지속된다. 소위 말하는 보상의 수레바퀴이다. (이하 후천적 동기)
도파민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인간의 이성과 본능이 다르게 움직이는 것은 유전자의 적응에 비해 기술과 문화의 진보가 너무 빨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종의 '적응지체' 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인지부조화는 이성의 거짓말에 따르지 않는 본능의 목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먹으면 좋고, 드라마를 볼 때 너무 즐겁다는 것은 본능의 입장에선 합리적이다. 경제학에서의 주체는 모두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가정한다는 것을 빌려온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하고 그저 '하라면 해!' 라고 외치니 우리 스스로가 그 강압에 저항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마감의 임박이라는 '체벌'에 못 이겨 일을 겨우 시작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간의 기억들과 서적들을 통해 얻은 지식과 @형인간의 특성을 고려하여 일을 시작하고 유지하는 사례들을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1. 선천적 동기 O - 후천적 동기 O * 프로그래밍에 빠졌다. 하다 보니 코드에 대한 이해도 잘 되고, 만들어진 걸 볼 때마다 성취감이 든다. * 새로 오신 국어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다. 좀 어렵지만 칭찬받고 싶다. 좋은 성적이 나와서 선생님께 칭찬받았다. 내 주력과목이다. *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 근데 만나다보니 의외의 점이 너무 매력적이다.
2. 선천적 동기 X - 후천적 동기 O * 엄마가 억지로 시켜서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막상 쳐보니 재미도 있고, 소질도 있는 것 같다. 상도 타고 입시도 하고... * 친구가 다운받으래서 깔은 폰게임. 한 번 켰더니 끊을 수가 없다. 저놈이 나보다 순위가 높다고? 어림없지! * 남들 학원 다니니까 뭐 일단 다닌다. 안 가면 엄마한테 맞으니까. 근데 제법 문제도 풀리고, 성적이 잘 나와 친구들을 이겨먹는 느낌도 있어서 좋다.
3. 선천적 동기 O - 후천적 동기 X * 오늘부턴 운동 열심히 해야지. 근데 또 하루 빼먹었다. 어차피 낼도 안 나갈건데. 딱히 몸이 변하는 것 같지도 않고. 이번 생은 무리다. * 학창생활 땐 공부 해본 적 없지만 이번엔 목숨 걸고 할 거야! 근데 뭐라 하는지 하나도 이해가 안 된다. 역시 내 적성이 아닌가봐.
4. 선천적 동기 X - 후천적 동기 X * 가기 싫은 약속에 NO를 외치지 못했다. 약속시간이 다 되서야 허겁지겁 나가는데 언제나처럼 지각. 내가 싫다. * 남들 하니까 해야겠는데, 해야 되는 건 아는데 너무 하기 싫다. * 야식 끊어야 되는데...(솔직히 왜 끊어야 하나 회의감들고 괴로워) 못 끊겠어!!!
1번이 제일 좋은 경우이고, 2번은 환경이나 주변의 도움(@의 경우는 약물 포함)을 받는다면 가능하겠다. 문제가 되는 건 3, 4번. 특히 그 중에서도 3번이라 생각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주는 건 있는데 받는 게 없다' 같은 말이 떠오른다.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신념은 생각보다 벗어나기 힘든 거라서... 3번이 반복되면 4번이 될 것이다.
자신이 어느 단계에 있는가에 따라서 생각해볼 부분이 달라진다. 어느 단계이든 스스로가 과거에 성공한 경험과 그 계기를 찾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사소한 것도 좋다. 별 생각없이 한 자소설용 자기분석이 도움이 될 줄이야....
선천적 동기를 얻으려면 : 어떻게든 해야 할 이유를 만들고 그 이유가 나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시험을 예로 들자면 목표하는 시험을 보는 이유, 붙었을 때의 기대이익, 수험기간이 가치가 있을 것인지. 하나 덧붙이자면 과목에 대한 동기도 있는 편이 낫겠다. 한국사 영어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음... 맞는 말이긴 한데 역사이야기가 좋아서 한국사를 공부하는 사람과 외국어에 흥미가 있는 사람과의 효율 차이는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직접적인 쓸모가 없다는 건 인정합니다) 모임약속이 나가기 싫다. 근데 나가야 한다. 왜 나가야 할까. 거절하지 못해서. 나가면 어떤 점이 싫은가 혹은 좋은가. 오랜만에 보는 거니까 한번만 참아야지. 싫은 점을 감수하지 못한다면 다음엔 약속을 거절하는 편이...? 여러 사람들이 글로 쓰거나 사진 등을 붙여놓고 하는데,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후천적 동기가 부족하다면 : 일단 시작했는데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 왜 그러는지 파악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눈에 보이는 성과가 제일 좋겠지만 최소한 성취감 내지는 '몰랐던 것을 알아간다는 기분' 이 필수인데 이런 보상이 부족하다면 아마 두 가지 상황이 아닐까 한다.
첫째는 기대되는 성과의 표출이 너무 장기적이어서 눈에 바로 보이지 않는 경우. 이런 경우 매일매일 성과를 갈구하면 오히려 실망하게 될 수 있다. 그 점을 '인지'하는 것이 우선이고, 다음은 평가기간을 너무 좁게 잡지 않는 것이다. 중량운동(근력 위주)라면 정해진 루틴 (예를 들면 12주)까지는 최대근력 평가를 하면 안 된다. 수험생이라면 1순환 전에는 순환이 끝나고 일정한 기간을 둬서 하는 것이 좋겠다. 시험이 가까워질 수록 2달 주기에서 1달 주기, 직전에는 매주 시험을 칠 수 있겠다. 그 동안 만들 수 있는 성과는 '기록' 이다. 하루에 목표한 계획 달성 시간이나 분량 등으로 실적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덤으로 예상 가능치보다 목표를 약간 낮게 잡아서 초과수행도 노려보자. 성취감이 오르고 또한 갑작스런 컨디션 저하에 대비할 수 있다.
둘째는 예상보다 목표치가 너무 높아서 꺾이게 되는 경우이다. 운동 한 번도 안해 본 사람이 '남자라면 자기 체중 정도야' 했다가 좌절한다든지, 의자에 앉아있어본 적 없는 사람이 시작부터 하루 10시간, 200페이지를 목표로 한다면 설령 해내더라도 다음날이 문제일 것이다. 목표를 적절히 잡고, 높으면 과감히 낮춘다.
시험을 예로 들면 I like eating pizza. What Locke means is a right to enjoy exclusive control over and enjoyment of certain external goods.
두 문장은 알아야 할 단어의 범위도 다르고 문장의 구조에 대한 이해의 필요수준도 다르다. 중학 문법을 마치지 않은 사람이 소위 1타강사의 커리큘럼을 따라간다면 많은 부하가 걸릴 것이다.
이는 한국어로 쓰인 문장도 마찬가지다. 가분채권의 일부에 대한 이행청구의 소를 제기하면서 나머지를 유보하고 일부만을 청구한다는 취지를 명시하지 아니한 이상~ 알고 보면 정말 쉬운 말이지만 모르는 사람은 어려운 말이다. 용어를 알지 못하면 읽었어도 이해한 것이 아니다. 애매한 두 단어의 차이를 알지 못하면 이해한 것이 아니다. 외워서 맞추기 쉬운 케이스이지만 응용형이 나오면 끝장이다. 본 적이 없으니...
이해는 잘 하는데 시험때면 맨날 실수해서 기분이 안 좋다. 우선 이해와 시험기술을 분리하여 스스로를 폄하하지 않도록 한다. 그리고 시험기술을 다진다. 일단 지문에 옳은 것엔 동그라미, 틀린 것엔 엑스를 먼저 쳐서 시각화한다. 각 지문은 o, x로 표시 혹은 부가정보를 적는다. 체크 전 다시 문항을 보고 정오 확인을 한다. 낙서를 하면 안 되는 기출문제집엔 별도의 연습장에 풀고, 해설쪽에 틀린 이유를 표시한다. 시험 전에는 틀린 부분을 반드시 본다.
맨날 늦잠을 자서 늦게 일어난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어나면 머리가 흐려서 그냥 잔다. 그리고 밤새 뒤척이면서 내일 일찍일어나야되는데.... 아무런 통제가 없는 상황에서 실현 가능할까? 늦게 자는 게 원인이라면 잠에 일찍 들거나 날을 새서 밤에 자거나 어떤 계기로 일찍 일어나있는 상태를 유지해서 일찍 잠들어야 할 것이고, 자기 전에 머리를 활성화시키는 모든 활동을 중지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하지 않다. 적어도 내 경우는 의지로는 불가능했다.
사회가 변했고 제도가 변해서 불리해진 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적응하기로 결심했다면 어떻게든 움직이게 만들어야 한다.
무기력증이 도졌다면 한 번쯤은 되물어보자.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게 맞아? 정말 이득이 되는 일이야? 하고 싶은데 안 된다면 달성가능한 목표를 세운 게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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