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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적인 유럽여행
Level 2   조회수 137
2019-11-11 23: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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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1월 포르투에서 찍은 사진        


난생 처음 홀로 떠난 유럽여행에서 그만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도둑맞은 것도 아니다. 그냥 파리에서 맞은 새해에 들떠 잔뜩 술을 마시고 병이 나버려서 정신이 없는 사이 택시에 두고 내린 것이다.

나는 한달이나 남은 유럽여행을 핸드폰 없이 여행해야만 했다. 동네 가게에서 싸구려 손목시계를 사서 오직 그 시계에 한달의 여행을 맡겼다.

다행히 기차도, 비행기도 단 한번 놓치는 일이 없었다. 

스페인의 게스트하우스에 어느 한국인 여행자가 버리고 간 가이드북에만 의지해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했다. 

나의 스페인어가 현지에서 통하는 기쁨을 맛보았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을 만난다는 일이 이렇게 즐거운 줄 몰랐다. 나는 완전 들떴다.  

들뜬 나머지 이것저것 사대느라 돈이 모자랐고, 부모님과 연락을 하기 위해 이곳저곳 다니며 컴퓨터를 쓸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맸다.

친절한 스페인 사람들 덕에 내가 묵지도 않는 호텔에서 손님용 컴퓨터를 쓸 수 있었고, 부모님으로부터 송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돈 개념이 없는지 흥청망청 쓰다가 한번 더 송금을 받았다. 

부모님은 내게 무슨 일이 생긴줄 알고 스페인에 있는 변호사에게 연락해 내가 묵고있는 여관으로 전화까지 했다.

부모님한테는 내가 국제미아가 되어서 어디 납치라도 당한 줄 아셨다보다. 그럴만도 했다.

40일 정도 되는 여행을 끝마치고 집에 오는 길은 참으로 두려웠다.

정말 꿈같은 여행이었고, 현실로 돌아오니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녔는지 서서히 체감되었다.

나는 혼자서 여행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한심했던 적이 있었던가.

내 가방에는 무려 40개가 넘는 냉장고 자석이 들어있었고, 왜 그렇게 많이 샀는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부모님은 40일 동안 사고만 치다 돌아온 딸을 반겼고 나는 그냥 다녀왔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여행을 좋아해서 매년 어딘가로 떠나곤 했는데 이제는 혼자 떠나는게 두렵다.

처음 혼자 떠나는 여행이 이랬으니, 망설여지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저때는 내가 ADHD라는 사실을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너무 ADHD적인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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