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적으로 글.- 형설지공 조회수 47 2019-07-16 20:37:08 |
나는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지금 상황이 최악임을 알려주는 단서가 널려있음에도, 그것을 바탕으로 최악임을 짐작할 수 있음에도, 자꾸만 도망치려고만 한다.
내가 도망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시간이 흘러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이미 그 때가 되어서는 매우 늦었음을 깨닫고는 하릴없이 다음을 기약한다.
우울증은 '3무'의 감정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한다. 무기력, 무감각, 무가치함.
나의 치부를 드러내려고 한다. (남들은 자신의 치부를 숨기고 싶어하는데, 난 별 감흥도 없다. 넌 동정이 받고 싶은게야.) 흥청망청 돈을 썼다. 방학이니 폐인처럼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밖에 나가서 밥을 사먹거나 내가 지어먹어야 하는데 만사가 귀찮은 나로써는 배달 음식만큼 편한게 어디있으랴. 저번 달에 배달한 횟수를 달력에 표시했다. 그것도 빨간 색으로. 달력이 온통 빨란 색으로 물들었다. 정상인이라면 자신의 돈 낭비에 반성을 하고 알바를 찾을 것이다. 그러나 난 그마저도 안하려한다. 밥에 간장 비벼먹고 수돗물을 끓여 먹으면서도 비참함으로부터 오는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내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이젠 모르겠다.
사람 만나는 것이 그렇게 유쾌하지 않다. 게으름으로 채운 나의 불어터진 몸과(특히 나의 뱃살) 후줄근한 옷을 입고 강의를 들으러 가는 나의 모습. 찐따라는 말 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번에 신청한 특강에서도 제대로 수료를 못할 예정이다. 결석도 수차례 했고 과제와 퀴즈도 나름 했지만, 통과는 영원히 어려울듯 하다.
말초적인 쾌락을 찾다가 결국 마약에 중독된 사람의 모습이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자주 생각해본다. 기본적인 욕구를 제외하고 나의 모든 활동 중에 1%라도 의미가 있는 것이 존재했던가?
많이 읽고 많이 쓰던 나의 '유일했던' 꾸준함도 사라졌다. 그 때는 나름 철학적이라고 우쭐하던 순간이었지. 그러나 그저 실체가 없는 허상일 뿐. 진실에 접근하면 그저 허위로 쌓아올린 모래성인 것을.
이미 무너졌고 성의 모습조차 잊어버린 상황이다. 과거의 내 모습에 비추어 본다면 나는 미련이 남아 주변에서 그 모래를 만지고 있겠지만 지금은 그저 동공이 풀린채로 바라보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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