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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는 선천성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전제한 상태에서 이 글을 써내려 가려고 한다. 어릴 적부터 평소 성격은 조용하고 낯을 가리며 눈에 띄지 않는 전형적인 내성적 인간이었다. 숙제나 시험 공부 따위의 정해진 틀 안에 있는 것은 언제나 몰아쳐서 벼락치기로, 적당히 해내는 수준이었다.
초등~중학교 때 기억은 쥐어짜내야 조금씩 나는 정도이다. 일반적으로 얌전하고 시키는 것을 적정수준에서 해내는 아이는 칭찬받으며 무난하게 생활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ADHD라는 의심조차 못받았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1. 게으르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어딜가던 (예를 들면 학원)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안한다, 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2. 넘어지거나, 부딫히거나, 아는 것을 틀리거나, 음식을 자주 흘리고,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는 등 부주의했다.
3. 무기력한 편이었다.
4. 공상에 자주 빠지곤 했다. 혹은 멍을 때리거나.
5. 책을 많이 읽었지만 정독이 불가능 했으며, 읽지 않고 넘기는 부분도 많았다.
6. 감정기복이 심하며, 성질이 급했다.
7. 자기 주장이 강하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며, 고집이 셌다.
8. 성격, 태도, 성적, 외적인 모든 면에서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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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위의 사항들이 모두 해당되고 점점 심해진 편이다. 고등학생 때는 우울감과 무기력이 정점에 이르렀다. 학교는 낮잠자는 곳이었고 수업은 전혀 듣지 않았다.
다행히도 나는 시험 보는 요령이 꽤나 있었던 것 같다. 아, 그리고 옆에서 채찍질해주고 정서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좋은 친구들을 만난 덕도 있다.
그들로부터 동기부여를 받아 맨 뒷자리에 앉아 기출문제만 주구장창 풀었다. 그래서 길진 않았지만 막바지에 꽤나 절실하게 공부해서 서울의 중위권 대학에 진학했다.
기대와 노력 이하의 성적을 받았지만 말이다 - 때문에 이후 나의 행적들은 온전히 '불만족스러운 진학 결과에 따른 불성실'로 치부되었다.
대학생 때 나는
1. 게으름, 무기력, 불규칙적 생활
- 할 수 있는 것이나 해야 하는 것도 하지 않았다.
- 모든 일은 데드라인에 임박해서야 시작했다.
- 수업에 지각하지 않은 날을 세는 것이 훨씬 빠를 것이다.
- 약속시간에 자주 늦기도 했다.
2. 일의 체계화, 계획 짜기, 비즈니스적 소통의 어려움
- 동아리 활동에서 팀장을 맡았던 적이 있는데, 일이 진전이 되지 않았고, 계획과 시간, 사람을 관리하고 소통하는데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다. 욕도 엄청 먹었다.
- 공부하는 경우, 책장 넘기자 마자 전 장의 내용이 기억 나지 않아서 책을 꽤나 뒤적거렸다.
- 그래서 그런지 내용을 구조화하고 서로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게 전혀 안되었다.
3. 충동성
- 성인이 되고 경제적, 법적으로 자유로워진 후 더 심해졌다.
- 저렴한 비행기표를 발견하는 등의 이유로, 당일 통보 후 여행을 자주 갔다.
- 하고 싶은 것, 꽂힌 것은 무조건 해야 직성이 풀리며, 그 전까지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장기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일, 주변 사람과 나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되는 일들을 그 자리에서 무턱대고 결정하곤 했다.
- 여러 일들을 벌여 놓고 포기하거나, 마무리하지 못하곤 했다.
4. 일을 시작하고 끝맺는데 어려움
-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발표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하.나.도 준비를 하지 않아서 대망신을 당했다.
-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었다. 잠도 자지 않으며 무언가 하기는 했다.
- 새학기마다 애매한 계획과 거창한 목표를 세워놓고 이뤄낸 적이 없다.
- 인터넷강의는 계속 되감아 듣는 것이 일상이었고 끝까지 듣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 책상에는 시작하지도 않거나, 보다 만 책이 널부러져 있었다.
- 어떤 일을 뭐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하나 책상에 앉아 멍하니 오랜시간을 허비했다.
5. 과도한 잡생각과, 산만함
- 10분 이상 집중하는게 어려웠다.
- 그 이상은 애를 써야하는 정도. 동공이 자주 풀린다.
- 공부는 나름 흥미로운 일이었지만 잡생각과 앉아 있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
- 앉아 있는 시간 대비 공부량이 매우 적었다. - 5분집중-잡생각-다시 5분 집중-잡생각-과도한 잡생각-머리 아픔-쉬는 시간, 이 순환의 연속이었다.
- 생각이 정리가 안되고 난잡하다 보니, 글이나 에세이를 쓰는 경우 끝까지 마무리 못 짓고 제출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며, 한 문장도 고치고 다시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 수업에 집중하고 싶어도 어느새 딴 생각하다가 졸고 있는 내 모습
6. 기타
- 알바도 많이 했는데, 단순 업무가 대부분이었고 시키는 것만 적당히 하면 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실수가 있긴 했지만, 잔실수여서 아주 치명적이진 않았다
- 관심 밖이거나, 시끄럽거나, 피곤하거나, 배고프거나,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서 거의 귀머거리가 된다. 소통 및 대화 불가.
- 인간관계는 좁고 깊은 편이다. 거의 방구석 외톨이에 가까웠는데, 동아리와 알바에서 막내역할하며 욕먹고 구박당하면서 학습된 사회 경험으로 무난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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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일들이 반복되다보니 실패, 성취감 저하에서 오는 무력감, 우울증, 불안 등이 생겼다. 이를 처음에 알지 못했고 그저 느끼는 것은 난독증상이 더더욱 심해졌고 학습능력도 저하되었다는 점이었다.
안타깝게도 심각성을 인지하는데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일부 사실은 스스로 부정하기도 했다. 그 이유는 책에서 읽은 문구로 정리하면 좋을 것 같다.
"자명하되, 그 자명성을 언어화하기 힘들다." 그러나 나는 실패한 이전의 일보다도 앞으로 해야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았다. 더이상 나 자신을 깎아내리고 싶지도, 더는 그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전부터 의심되어 온 바는 있었으나 학생으로서 관련 비용이 부담스러웠고, ADHD로 살아가는 것이 두려웠으며, 의지부족, 게으름 탓이라고 생각해서 진단받기를 꺼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앱에서 사람들의 경험 공유로부터 용기를 얻어 병원에 방문하였으며, ADHD와 더불어 장기적으로 방치된 우울증+무기력증+불안장애 진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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