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희망차게 떠들었던게 창피할만큼 빠르게 발밑이 훅 꺼졌다. 내 감정 사이클이 완만한 경사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게 아니라 최고조에서 수직하락한다는 사실을 이젠 기억할 때도 됬지 싶다.
하루 종일 붙들고있던 과제를 끝내지 못했다. 제대로 하지 못할거면 그만둬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이 상황을 해결할 능력이 없는데 해야 할 일은 계속해서 쌓이고있었다. 도망쳐봤자 다시 이 지점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도 알고있었다. 꼼짝도 못하게 된 것 같아서 더 불안해졌다.
일요일 자정이 다 되어서야, 더이상 붙잡고있어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내가 또 실제상황보다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다시 약을 받으러 병원에 가기로 했다.
다음날, 강의가 시작되자마자 교수님께서 과제를 제출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뿐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 애써 누르고있던 불안이 터져나왔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이 가쁜것이 아무래도 공황발작이 올 것 같았다. 결국 그날 오후 스케줄을 포기했다.
복용하던 항우울제 대신 인데놀을 처방받았다. 불안은 많이 누그러졌지만 딱 누그러지기만 했다는 느낌이다. 가슴 한켠이 서늘한것이 언제든지 뛰쳐나와주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며칠 지났는데도 아직 일을 수행할만한 상태가 아닌건지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 놓이는게 두려운건지 글을 쓰는 과제에는 손도 못대고 있다. 그래도 무언가 쓰지 않으면 글쓰는게 무서워질 것 같아서 이 글을 적고있다.
급한 일을 미뤄두고 딴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면 자괴감이 들지만
얼마 전까진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있었던 주제에 바라는것도 참 많다싶고. 대신 청소나 다른 생활부분은 차근차근 좋아지는 중이다.
우선순위는 엉망이지만 해야할 일 중 무언가는 해낼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단계로 훌쩍 뛰어넘어가진 못했지만, 퇴보하지도 않았다고 스스로에게 알려주려고. 앞으로 몇 번이나 이 과정을 반복해야할지 몰라도 언젠가 끝이 나겠지요.
최근 눈에 띄게 느낀 변화도 기록하자면, 항우울제 복용을 중단하면서 몸이 매우 가벼워졌다. 간단한 외출도 힘겨워서 집에 돌아오면 쓰러져있는게 일상이었는데 외출을 하고 나서도 돌아오는 길이 힘들지 않은건 근 몇년간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이었다. 막연히 체력부족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부작용이었던 모양이다. (체력이 부족한것도 맞겠지만) 인데놀을 복용하면서 다시 무기력, 몸이 늘어지는 느낌을 받긴 하는데 전처럼 아무것도 못할만큼 심하지는 않은 듯.
그리고 최근 1~2주정도? 자고 일어나는데 어려움이 줄었다. 잠이 안와서 몇시간을 뒤척이거나, 눈을 못떠서 열몇시간 자버리는 일이 없어졌다. 흐린날에는 좀처럼 못일어나는데 오늘은 어째 잘 일어난 것 같다. 에이앱에서 비타민을 먹어보라는 말을 듣고 먹기 시작했는데 비타민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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