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그 메뉴가 따로 있는 걸 알게 되어서, 제 글을 블로그에 기록하고싶어서 자유게시판에 썼던 글을 같은 내용으로 또 올리게 되었습니다 *
어릴 때 제가 정말 산만하고 어디 튈 지를 몰라서 유치원 선생님들이 꽤나 고생을 많이하셨어요. 전달수첩에다가 "00이를 보면 열 명의 아이를 보는 것 같아요"라고 적으실 정도면 선생님들의 노고가 얼마나 크셨을 지 살짝 감이 와요. 그랬던 제가 자라서 어린이집 선생님이 되었는데, 아직까지는 '열 명의 아이를 보는 것 같'은 저같은 아이는 만나지 못했어요ㅋㅋㅋ...
제가 성인 adhd 환자라는 걸 인지할 때부터 알고 있던 에이앱이지만 그간 귀찮다는 이유로 가입하기를 미뤘었는데, 해야 할 서류를 남산만큼이나 미뤄둔 오늘 갑자기 에이앱이 생각나서 가입하고 글을 쓰게 됐어요. 오늘 약을 적게 먹어서인지 계속 미루고 있네요ㅠㅠ...
다음 날 준비물을 까먹어서 못 챙기기, 제출시간 3시간 전에 부랴부랴 과제해서 결국 30분 넘겨 제출하기, 학교/알바/직장/약속 시간보다 3~5분정도 지각해버리기, 늦잠자기, 내 상황도 파악 못하고 다른 사람의 부탁은 덥석 받아주기, 수업시간에 뒤 돌아서 다른 친구랑 수다떨기, 해야 할 서류를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다가 결국 걸려서 상사에게 혼나기, 그렇게 혼나도 계속 미루기 등등 남들은 일평생을 살면서 한 번 해볼까말까한 일들을 저는 매일했어요ㅋㅋㅋㅋㅋ 주변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부모님도 진절머리내면서 화내고 다그치고 도와주고 다 해봤지만 아직도 고쳐지질 않아요. 누가봐도 adhd라고 의심할 법한 행동이고, 저희 엄마는 어릴 때부터 저더러 adhd같다고 혼내셨어요. 그치만 병원에 데려가질 않으셨어요. TV 속 adhd 아동들의 모습이 과격하고 폭력적으로 나오는데 반해서 저는 과격하지 않아서일까 싶어요. 만약에 진정으로 adhd를 의심하고 병원에 일찍 갔다면 이런 제 버릇들이 일찍 고쳐졌을까요? 병원에서 지능검사를 해보니 지능은 낮지 않다던데, 일찍 공부에 집중해서 서울 명문대에 입학하는 엘리트의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어차피 살아온 인생이고 남들보다 느리다고 오만가지 욕을 다 쳐먹긴해도 결국엔 퀄리티 높게 일을 해내는 저인 걸 아니까, 이제는 비난에 달관해서 자괴감도 우울감도 얕아져서인지 오히려 통통 튀는 제가 너무 좋아요ㅋㅋㅋ
저는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친구들과의 관계에 크고 작은 갈등이 숱하게 많았어요. 울기도 많이 울었고 부모님들의 스트레스도 막심하셨을 거예요. 대안학교까지 생각해봤었는데 가정형편상 그건 어려워서 고등학교까지 그냥 쭉 일반학교로 다니게 되었어요. 왜 친구들과의 갈등이 많았는 지는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어요. 아마도 또래들 간의 분위기, 눈치싸움, 파벌(?) 이런 걸 제가 전혀 몰랐고 딱히 욕심도 없었기 때문에 또래들 틈에서 밀려났던 게 아닐까 싶어요. 어릴 때의 기억 중에는 책을 많이 읽고, 색종이를 접거나 피아노를 치는 걸 무척 좋아해서 종일 그것만 했던 기억이 있어요. 또, 다섯살쯤에는 나도 어른들처럼 풍선껌을 불어보고 싶어서 한 시간동안 식탁 의자에 앉아서 풍선껌을 불어보던 기억도 나요. 일곱살에는 피아노 곡을 치고 싶은데 악보를 못 구해서, 옆에서 들리는 피아노 소리만을 듣고 피아노를 치면서 곡을 외웠던 기억도 있어요. 아직도 그 곡을 칠 줄 알구요. 평소에는 그렇게나 산만하면서 좋아하는 것에 꽂히면 그게 해소될 때까지 몇 시간이고 한 자리에서 주변 사람들의 소리도 못 듣고 몰두해있었대요. 이제보니 이런 게 다 adhd 증상이었겠거니 생각해요. 저희 엄마는 제가 가끔 보여주는 이런 집중의 순간들 때문에 정말 adhd일 거라고는 확신하지 못하셨을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 지각을 워낙 많이 해서 담임선생님과 면담을 가지기도 하고, 취직한 딸이 아침마다 늦잠을 자서 아침마다 회사로 데려다주시면서, 막상 제가 병원에 가보겠다고 말했을 때 엄마는 "니가 adhd면 세상 사람들 다 adhd겠다!"하면서 말리셨어요. 이제보니 세상 사람들이 다 adhd일 수도 있겠어요ㅋㅋㅋ 엄마는 무의식 중에도 본인의 딸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셨었어요.
대학에서 아동을 전공하면서 adhd아동들의 특성을 배우고 그들을 위한 수업활동에 대해 배우게 됐어요. 그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정말 adhd인 건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됐고, 강의가 끝날 때에는 제가 adhd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하지만 정신건강관련 병원의 상담과 진료비용, 약값이 비싸다는 생각에 못 가고 있다가 취직하고 나서 월급도 있겠다 가봤어요. 첫 상담 때 의사선생님을 보자마자 "저 adhd인 것 같아요."하고 말했고, 의사선생님이 하시는 질문에 모두 "예"라고 대답해서 5분만에 빠른 진단을 받았어요ㅋㅋㅋㅋ 우울증 검사에서 우울은 굉장히 옅게 나와서 의사선생님이 살짝 갸우뚱하시더라구요. 대학생 때 에세이 과제에서도 쓴 거지만, 저는 산만하고 혼란한 제 정신을 가진 제가 너무 좋거든요. 기억력이 뛰어나지 못해서 평소에 인간관계에 미련이 없는 편이고, 새로운 걸 좋아해서 항상 열정적으로 뛰어드는 편이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인지 처음에 콘서타를 복용했을 때 머릿속이 하얘지고 정돈되는 느낌이 드니까 살짝 아쉽기도 했어요.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거 나름대로 좋지만요ㅋㅋㅋㅋ
콘서타를 복용하지 않았을 때나 약 효과가 떨어지고 났을 때의 느낌은, 시꺼먼 우주공간에서 온갖 별과 인공위성들이 떠다니는 것처럼 복잡한 것 같아요. 밤 하늘을 보면 반짝반짝 밝게 빛나는 별들이 수억개잖아요? 저는 제 머릿속이 딱 그런 느낌이었어요. 우주(머리) 속에 있는 수많은 행성(생각)들이 모두 다 반짝반짝 빛을 내서, 도무지 어떤 게 진짜로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는 느낌이요. 그래서 이 별을 쳐다보다가도 옆에 떠다니는 다른 별을 보기 시작하면, 보고 있던 별은 어느새 멀찍이 떨어져있고 새로운 별을 보고 있는 그런 산만한 상황이 매일이었어요. 다른 분들은 어떤 느낌이셨을 지 궁금해요. 콘서타를 복용하고나서는, 그 우주들이 싸악 다 밀려나서 하얀 도화지에다가 제가 원하는 색깔과 질감의 도구로 원하는 것을 그리는 느낌이 들어요. 일반 사람들은 이런 느낌으로 평생을 살아왔을 걸 생각하니 왠지 신기하면서도 안타깝더라고요ㅋㅋㅋ 제가 워낙 산만한 제 정신을 좋아해서인가봐요ㅋㅋㅋ
콘서타를 먹어야 머릿속이 정돈되고 미래를 생각할 수 있으니 아침에 늦잠자고 그로 인해 지각하는 버릇은 여전히 그대로지만, 일할 때 더 빠르고 정확하고 한 번에 여러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어서 기뻐요. 예전에는 열심히 무언가를 해도 그게 남들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작고 별 것아닌 일인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남들이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의 크고 중요한 일에 집중해서 할 수 있더라고요. 눈치가 생긴건지 일머리가 생긴건지, 이게 큰 변화가 아닌가 싶어요.
adhd인 다른 분들께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유용한 글은 아니지만 그냥 제가 예전부터 저에 대한 글을 남겨보고 싶어서 이렇게 긴 글을 쓰게 됐어요. 자신의 일도 아니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닌 긴 글을 여기까지 읽어주실지는 모르겠지만, 제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스로도 자신이 답답하거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게 되는 속상한 순간들은 앞으로도 있을 거예요. 가뜩이나 나도 내가 내 마음대로 안되어서 갑갑한데 내 속도 모르고 "왜 그것도 못해?하며 다그치거나 "나라면 그렇게 안 해~"하는 속편한 소리만 해대겠죠. 그렇지만 그런 일들은 다 내가 귀여워서 그런 거니까 귀여운 우리가 봐줍시다.
adhd를 가진 우리 모두에게 행복한 일들만 있으셨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